서울에서 신안 증도까지는 버스 전용차선을 타면 4시간 반이면 도착할 수 있다. 영광을 지나 무수한 섬과 섬으로 이어진 신안의 바다 마을로 접어들면, 모든 풍경이 이국처럼 다가온다. 슬로우시티인 작은 섬마을 증도, 시간도 멈췄다 가도록 만든 휴양지가 이곳에 있다. 바로 엘도라도리조트다. 1987년 방송대 법학과를 1회로 졸업한 김흥중 동문이 이곳 회장이다. 지난 7월 방송대 발전후원의 밤 행사에서 1천만원을 기부하는 등 음으로 양으로 학교 발전을 도왔다. 9월 16일(토) 방송대 발전후원회(회장 박인주, 제니엘그룹 회장)의 공식 ‘후원의 집’ 현판식을 겸한 자리에서 김흥중 동문을 만나 그의 삶과 철학을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날이 흐렸다. 방송대 발전
후원회 박인주 회장 일행을 태운 15인승 솔라티 승합차가 목적지인 방송대 후원의 집 엘도라도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는 비구름이 제법 걷히고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보였다.
김흥중 회장은 먼저 달려온 류계석 전 광주·전남총동문회장과 함께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주말에 최소 1천여명 정도가 다녀간다는 휴양형 고급 리조트 프론트 입구에 ‘후원의 집’ 현판을 단 건 방송대 역사상 처음이다. 국민 누구나가 이용할 수 있는 동문 기업을 찾아내 동문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동문 기업엔 활성화를 제공하고, 이런 상생하는 모습을 통해 방송대가 국민 친화적인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발전후원회 박인주 회장의 지론인데, 여기에 화답한 이가 바로 엘도라도리조트의 김 회장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공부가 어렵죠. 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진심으로 즐기고자
마음 먹는다면,
이기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는 학문을 통해 좋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과는 다른 오직 방송대만의
철학과 이념으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전통의 명문을 향해
정진해주시기 바랍니다.
슬로시티 증도에서 꿈을 이루다
“이곳을 찾는 누구나 볼 수 있게 ‘후원의 집’ 현판을 입구에 내걸었죠. 이곳을 찾은 분들 가운데 현판을 보고 ‘나도 방송대인인데…’라며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방송대가 국민 속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죠.”
광주광역시 동구 내남동 출신인 김 회장은 보기에는 고생한 흔적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역시 파란만장한 삶의 길목을 지나왔다.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을 중퇴해야 했으니, 그 곤핍한 시절을 추측할 수 있겠다. 이후 중졸 검정고시를 거쳐 영등포고교(야간 3년)를 다녔는데, 2등으로 이곳을 졸업했다.
그는 남다른 고향사랑으로도 유명하다. 고향 내지에 마을회관을 건립해 기증했으며, 종친회 장학금을 대고 있다. 30년 역사를 지닌 ‘작은사랑우회’ 회장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광주·전남지역의 발전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엘도라도리조트 역시 지역 발전에 대한 관심의 결과다. 2006년 신안군 소재의 증도에 국내 최초로 섬 전체를 개발한 엘도라도리조트를 성공적으로 오픈했다.
엘도라도리조트가 자리한 증도는 서해안 특유의 다양한 천연자원들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간직하고 있다. 2007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우시티로 지정됐고, 증도에 위치한 태평염전 역시 2009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렇듯 소중하고 가치 있는 환경 속에서 엘도라도리조트는 자연과 건강을 위한 테마로 개발돼 현재 약 2만5천여 평의 부지에 총 30동 199개의 객실을 보유, 운영하고 있다.
“당시 리조트 붐이 불었죠. 호텔형 리조트가 대세였지만 제 마음에는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자연 속에서 정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휴양지를 생각했죠. 남도의 섬 곳곳을 샅샅이 뒤졌어요. 그러다가 이곳 증도를 만난 거죠. 비로소 이곳에서 제 꿈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당시 증도 리조트 개발의 최대 난제는 ‘바다’였고 ‘섬’이었다. 뭍과 섬을 잇는 다리가 없던 때라 리조트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모두 배에 싣고 옮겨와야 했다. 뚝심과 집념 앞에서는 바다쯤이야 조금도 걸릴 게 없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 꿈을 향한 노력
그는 자신의 방송대 선택을 두고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꿈의 실현이라는 목표, 경제적인 상황과 일을 병행해야 했던 현실 속에서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밤낮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1차는 합격했지만 2차에서 탈락하면서 경제적 부담을 느낀 김 회장은 청년 시절의 꿈을 접고, 사업에 눈을 돌렸다.
“당시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어요. 물론 모든 공부가 어렵죠. 하지만 어떤 어려움도 진심으로 즐기고자 마음 먹는다면, 이기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사법고시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법학 공부는 그에게 또 다른 자양분을 제공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원리원칙을 준수하고 모든 일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는 습관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습관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1992년 본격적으로 부동산 관련 사업에 진출했으며, ‘신용을 생명처럼’이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거듭된 성장을 계속했다. 그 결과 2001년 경기도 안양 지역에 새로운 개념의 도심휴양시설인 (주)훼미리월드를 설립, 오픈할 수 있었다. 회사의 이익보다는 지역민의 건강증진 및 편의를 위한 운영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현재 연 130만 명 이상의 고객이 다녀가는 안양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이런 성공은 훗날 리조트 사업에도 큰 영감을 줬다.
그의 경영철학은 사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성이 지극해 하늘이 감동한다’라는 뜻의 ‘감천(感天)’이다. 이 사훈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과 감동을 선사함과 동시에 직원들에게는 스스로 보람을 찾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국내 리조트문화의 새로운 혁신과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2007년 전라남도로부터 관광자원 우수개발 성공사례 표창, 2010년 한경주거문화대상, 2011년에는 리조트업계에서는 최초로 국토해양부장관으로부터 표창을 수여받는 등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책이 아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몸의 세계」시리즈를 추천하면서, 건강한 인생을 살기 위한 훌륭한 정보를 제공하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자연 속에서 충분한 휴양을 누리는 걸 강조하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방송대만의 차별화된 철학을
방송대를 졸업한 뒤 6년이 지나 김 회장은 전남대 행정대학원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에는 전남대로부터 명예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방송대 발전후원회 이사로도 활동하는 그가 발전기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김 회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발전후원기금의 참된 의미는 학생들의 뛰어난 능력과 기회를 발굴하는 데 있다고 봐요. 학교는 학문을 통해 좋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데 그 목적이 있겠죠. 과거로부터 이어온 정형화된 것들에서 벗어나 남들과는 다른 오직 방송대만의 철학과 이념으로 앞으로도 전통의 명문을 향해 정진해주시기 바랍니다.”
먹구름이 물러선 증도 위로 맑고 파란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김 회장은 임원진과 함께 비가 지나간 리조트 곳곳을 돌면서 다시 분주한 일정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