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저희 부부가 학교에서 꼭 붙어 다니는 걸 보면, ‘오! 부러워’하는 분들 반, ‘바퀴벌레 커플 저리 가!’ 하며 시샘하는 분들이 반인 거 같네요!”
아직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23년 차 부부 이문익·박동숙 학우(교육학과 4·1)가 터뜨린 함박웃음이 부산지역대학 캠퍼스에 퍼졌다.
공통점 많은 23년 차 부부
궁합도 안 본다는 네 살 차이 부부는 공통점이 많다. 재혼가정에서 자란 두 사람은 일찍 철이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점도 같다. 경기도 광주 출신인 남편 이문익 학우는 컴퓨터·IT관련 업체에서 네트워크와 제조, 판매, 유지, 보수까지 담당했다. 경기도 일대를 기반으로 전국을 누비며 사업을 확장했다. 부인 박동숙 학우는 고적대로 유명한 여상을 졸업하기도 전에 인천 한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둘 다 경기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비슷한 시기 광명시에서도 일했다. 부부는 “영화 「접속」의 한석규, 전도연처럼 아마 우리도 인천이나 광명시 어딘가에서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돌고 돌아 두 사람이 만난 건 부산이다. 한 교회 청년부 교사 겸 기자로 활동하던 박동숙 학우가 경기도에서 부산으로 온 청년 이문익을 인터뷰하면서 처음 만났다. 동료 한 명이 “두 분 왠지 친해질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정도로 두 사람은 주변에서 보기에도 잘 어울렸고, 2~3년의 연애 끝에 200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실 부부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부에 대한 열정도 비슷했다. 박동숙 학우는 취업 후 인천 한 전문대에서 면접을 보고 합격증도 받았지만, 일이 바빠 잠시 멈췄다, 이문익 학우는 결혼하자마자 미뤄뒀던 공부를 하겠다고 방송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역시 전국적으로 관리하는 사업 때문에 휴학해야 했다. 부부가 방송대를 다시 찾게 된 건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였다.
부부를 찾아온 시련들
시련은 먼저 남편을 찾아왔다. 2018년, 승승장구하면서 확장일로를 달렸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오랜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것. 쉽게 말하면 ‘사업실패’였다. 이 학우는 “그때가 제게는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아내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우울하고 힘들었던 시기였죠”라고 회고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단 심정이었다. 무언가 몰두하고 쏟아부을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2019년은 전환점이 됐다.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 화물운송종사자격증 등 대형면허 2개를 땄다. 숨통이 조금 트였다. 예전에 등록만 하고 중단했던 방송대가 떠올랐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지만,
그래서 생은 의미를 갖는다죠?
방송대는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면 더할 나위 없고요
“2015년쯤 버니스 매카시 교수의 ‘4MAT’ 교육이론을 접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사이클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교육 효율을 높이고 바른 조직문화를 구축하며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죠.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2020년에 교육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공통점이 많은 부부여서일까, 부인에게도 비슷한 시기에 시련이 닥쳤다. 사실 남편보다 이른 2017년이었다. 국가건강검진을 받았는데, 2차검진대상자로 판정됐다고 연락이 왔다. 가족력도 없고, 주변에 암환자 지인도 없는 데다, 회사도 바쁘니 차일피일 미뤘다. 대학병원 조직검사를 받았다. 암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담당했던 대학병원 의사가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정밀검사를 강권했다. 결국 심층조직검사에서 암진단을 확정받았다.
넓은 대학병원에서 암진단을 확정받는 순간 주저앉았다. 뼈를 스캔한다고 누웠는데 눈물만 흘렀다. 0기에서 발견된 것이 다행이니 걱정 말라는 주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진행속도는 일반암환자에 비해 대여섯 배 빨랐다. 수술을 마치고 바로 1기로 전환될 정도. 방사선치료에 주사를 맞으며 약을 달고 살았다. 머리가 멍해졌고 몸무게는 우울감과 비례해 늘어만 갔다. 항암치료 부작용 설문조사 24개 항목 전부에 해당했다. 5년 암투병 끝에 악화하진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끊고 다시 일상의 복귀를 준비했다.
그 무렵이었다. 먼저 방송대에 입학한 남편이 방송대 입학을 권유한 때가. 3년을 지켜본 남편은 많이 변해 있었다. 1학년 때부터 학생회 대표로 봉사하고 전국 지역대학을 다니면서 이문익 학우는 방송대에서 인생 후반기 진로 변경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남편은 찾은 비전을 아내와 나눴다.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가진 학우들이 한 해에 부산지역대학에서만 서른 명씩 배출되는데, 이들이 부산지역을 기반으로 평생교육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
공부는 변화이자 기회
암이라는 죽을 고비를 넘긴 때문일까. 예전에는 ‘저게 과연 될까’라며 소극적으로 생각했던 아내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에서 부부로 같은 곳을 보며 걷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아내는 2023년 교육학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부부의 ‘원픽’ 교수는 김영빈 교육학과 학과장이다. 낭랑한 목소리에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포인트만 짚어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앞으로 부부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직접 만나 상담받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부부에게 공부는 ‘변화’이자 ‘기회’다. 인풋(input)이 없으면 아웃풋(output)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는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가 기회를 만든다. 방송대 공부는 삶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를 부부에게 주고 있다. 대학생인 두 딸 역시 공부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 요즘 뭔가 노력하는구나”라고 응원해준다.
부부의 마지막 말이다. “돌이켜보면 모든 날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너무 힘들고, 비껴갈 구멍이 없을 때도 있었죠. 그런데 항상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었고, 더 나은 내일이 될 거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영화 대사도 있잖아요.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부가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건 더 좋고요.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지만, 그래서 생은 의미를 갖는다죠? 방송대는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면 더할 나위 없고요.”
부산=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