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가 처음으로 세상을 맞이하면 열꽃이 핀다. 얼굴에도 때로는 온몸에도 붉게 핀다. 그건 아마도 세상을 향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열꽃이 핀다. 이순을 목전에 두고 시작한 방송대 공부라는 열정 때문이다. 제2의 인생이란 희망의 바람을 탔다.
새내기 1학기는 무사히 보냈고, 2학기가 시작됐다. 아! 감탄사 외마디 탄식이 튀어나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 이 문장을 말할 때도 두뇌 속에 열꽃이 망울을 터뜨린다. 혼자의 힘으로 마음을 다잡고 한결같이 가는 길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기생들의 그룹 학습이 없다면 차고 나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매주 토요일 오후가 되면 북면 학습관을 향한다. 3학년 선배님의 뼈를 갈아 낸 지도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데 한 치의 오차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기생들은 각자 하는 일들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 다르다. 물론 사는 동네도 다르다. 멀리 하동, 진주, 진동, 밀양 수산에서 모여든다. 공부를 시작한 동기 역시 각양각색이다.
나부터 말하자면, 최종학력에 대한 자격지심이 첫 번째 동기였고, 두 번째는 공부에 대한 목마름이었고, 무엇보다도 학습관이 사는 곳과 가까웠던 이유에서다. 사연으로 말하자면, 퐁당퐁당 물장난 하듯이 세 번째 도전한 동기생도 있다. 이번에는 함께 가자고,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함께 끝까지 하자고 무언으로 약속했다. 네가 쓰러지면 내가 밟아 줄게 하는 개그가 아닌, 진정으로 학우가 힘들어할 때 손을 내밀어 서로에게 격려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의리를 다지기도 했다.
어떤 학우는 노안으로 수업 중에 안경을 두 개씩 겹쳐 써 가면서 강의를 듣는다.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각자 챙겨 온 간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공부하지만, 그 진지함으로 언제 학습 시간이 흘렀는지 아쉬워한다.
누구나 처음은 다 낯설다. 서로는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넨다. 첫 대면과 교과목 그리고 학습을 이끌어 가는 교수진. 2023년 새로운 애인들이 생겨났다. 시간과 함께 이들을 잘 사귀어 끝까지 웃으며 이 길을 걸어야겠다.
또 다른 가을이 왔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가을날」을 읊으며 내 인생도 풍성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