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와 알바니아의 국경 사이에 있는 스카다르(Skadar) 지역의 성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희생을 노래한 구비 서술시 작품이 하나 전해진다.「스카다르 건설」로 명명되는 이 작품은 부크 스테파노비치 까라지치(1787~1864)에 의해 채록됐는데, 이 노래를 까라지치에게 해준 가인(歌人)은 스타라쯔 라슈꼬(노인 라슈꼬)로 이름만이 알려져 있다. 내용은 이렇다.
스카다르에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나 요정이 밤사이에 무너뜨리기를 계속했다. 요정은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고는, 스토야와 스토얀이라는 희생자를 찾아 성의 주춧돌 밑에 묻어야 한다고 했다. 부카쉰 왕의 하인 데시미르가 그들을 찾아 떠났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오자, 할 수 없이 왕은 건설책임자 라데를 불러 다시 성을 축조했다. 그러나 요정의 방해는 계속되고, 요정은 두 번째 희생자를 일러주었다. 곧 부카쉰 왕의 형제들의 부인들 가운데 점심을 가져오는 부인을 희생제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왕은 우글레샤와 고이코 형제들을 불러 부인에게 절대 이 사실을 말하지 않도록 약속했으나, 그 자신과 우글레샤가 각자 부인에게 말함으로써 약속을 어겼다. 부카쉰 왕의 부인이 두 동서에게 대신 점심을 가져다주도록 부탁하나 두 동서가 거절해 뜻을 이루지 못할 즈음에, 젊은 코이코 부인이 결국 부탁을 들어주었다. 직접 점심을 가져간 젊은 코이코 부인은 결국 희생제물이 되고 말았다. 희생제물이 될 것을 안 코이코 부인은 자신을 대신할 희생제물을 구하도록 애원했으나 결국 성의 주춧돌 아래에 묻히고 말았다. 젊은 코이코 부인은 가슴을 내놓을 수 있는 창을 내달라고 하고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려 먹이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후 젖이 나오지 않는 여인들이 젖을 얻기 위해 그곳을 간다고 한다. 
인신공희의 공통점
이 노래는 도시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성의 축조와 관련된 인신공희의 희생제물이 세 번에 걸쳐 제시된다. 첫 번째는 요정이 지목한 스토야와 스토얀이고 다음은 점심을 가져오는 형제의 부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마지막으로 노예다. 노예는 요정이 선택한 희생자가 아니라 고이코 부인 자신의 희생을 대신할 제물로 지목한 것이다.
왜 희생자가 건축의 실질적 주체의 아내인가. 인신공희의 대상자는 제한이 있을 수 없고 특별한 표지가 있거나 집단의 정해진 관습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신공희의 대상과 관련해 그 양상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에서 강제적인 희생자와 강제에 의한 대리 희생자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스카다르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하지만, 후자의 사례가 이 노래에 언뜻 비치는 대목, 곧 “그녀가 당신에게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를 사주도록 하세요/그리고 그들을 건물에 집어넣으세요/그렇게 애원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네”와 같이 노예나 포로 등으로 대리 희생하는 방식을 애원하는 것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희생자들이 자신에게 강요된 폭력에 저항할 힘이 없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자리한다. 희생자에게 가해진 폭력은 폭력을 행사한 주체나 집단에 있어서 대단한 심리적 불안과 압박을 느끼게 한다. 이 경우, 부당하게 희생된 희생자의 애원과 절규가 폭력을 가한 주체와 집단에 일종의 보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근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희생자의 보복이 없다고 인정되는 존재와 그러한 상황 설정이 필수적으로 요청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희생 제의는 문화권마다 그 양태가 너무 다양해서 모델이나 기원이론을 세우기가 힘들지만, 희생제물이 되는 인간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는 공통점이 있다. 즉 희생제물이 될 인간을 선정할 때, 그 희생제물이 된 인간을 죽이더라도 그로 인해 또 다른 보복적 살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인간 희생제물을 항상 죄인(포로)이나 노예 중에서 선택함으로써 보복의 위험이 별로 없이 그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발적으로 희생물이 되든가 부모가 자식을 바치는 경우도 희생제물을 죽이는 것이 또 다른 살인을 불러올 수 없는 예들이다.
건축물 혹은 축조물의 영속성을 위한 인간의 희생은
문학의 비극적 원천을 제공한다.
희생된 스카다르의 여인은 수유의 기원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월성의 서쪽 성벽 아래에 이름도 없이
초라한 행색으로 묻힌 인골들은 월성의 영속성을 거론할 때조차도
결코 소환되지 않고 잊힌 희생자로 남았다. 들에게는
어떤 노래와 전설이 당시에 회자됐을까?
희생자에 대한 집단 폭력의 이중성
인신공희는 한 희생자에게 가해지는 집단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집단적 폭력의 양태가 직설적으로 표현되는지 아니면 역전돼 감춰지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직설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공동의 번영과 인신공희 어느 쪽에 긍정의 시선을 보내느냐 하는 차이가 개재해 있다고 본다. 공동의 번영을 위해 인신공희가 행해졌을 때, 인신공희는 미화되고 희생자의 자발적 행위로 역전돼 형상화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 곧 희생자의 입장에서 그에게 가해진 강제적인 폭력, 그리고 비극적 결말을 노래하는 경우는 공동의 번영이라는 목표가 인신공희의 정당성을 덮어주기에는 집단 전체의 공감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 희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의 입장을 더욱 부각해 죽음과 희생의 가치를 드높이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희생자의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죽음이 그만큼 비극적이기에 희생자의 인간적 고뇌와 비극이 오랫동안 자리할 수 있고, 얼마간은 희생자의 죽음과 그로 인해 이룩한 어떤 결과 사이에 가치의 판단이 논쟁적이든 일방적이든 지속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희생자를 미리 예정하지 않았다.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정황이 문학적으로 비극성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희생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일종의 죄책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상황의 설정일 수도 있을 터이다. 혹은 초월적 존재나 신이 요구한 희생자가 인간의 관점에서는 우연적일 수 있어도 초월적 존재의 섭리 안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일 수 있다는 인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스카다르 건설」에서는 흥미로운 하나의 표지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희생자가 된 왕의 부인에게 ‘우아한 신부’ 혹은 ‘품위있는 신부’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희생 당사자가 죽음을 앞두고 느끼는 공포는 형언하기 어렵거니와, 원망과 애원을 담은 희생자의 처지를 노래하는 사람들은 ‘우아하다, 품위있다’라는 표현을 통해 미화한다. 왜 그런가? 결론적으로 이는 집단의 번영을 꾀하기 위해 희생자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한 집단적 폭력의 은폐일 혐의가 높다. 희생자에 대한 찬사와 미화를 통해 희생자에게 가한 폭력을 은폐하고 그 폭력으로부터 심리적 탈출을 시도하려는 장치로 이해되는 것이다. 아내의 희생을 인정한 코이코 역시 아내의 희생이 결정되는 그 접점에서 별안간 ‘영웅의 가슴’과 같은 찬사로 꾸며진다. 희생자에 대한 미화의 흔적으로 인해 인신공희는 절대적 비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키며 가치를 지속시킬 수 있다. 수유(授乳)하지 못하는 여인들의 소망을 해결해 주는, 새로운 가치를 지닌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그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헝가리의 데버 성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동일 유형의 구비 서술시가 보다 짧은 형태로 전하기도 한다. 데버 성의 축조와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 켈레멘이라는 석수가 12명의 석수들의 아내 중에서 가장 먼저 점심 바구니를 가지고 오는 여인을 성의 기둥에 묻어버리자고 하는 규칙을 제시하고 실행한다. 꿈을 통한 계시나 요정에 의하지 않고 석수 자신이 스스로 인신공희를 제안한다는 점이 스카다르의 사례와 다르다. 그 결과 켈레멘의 아내가 희생자가 되어 성의 기둥 속에 묻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엄마를 기다리는 켈레멘의 아들과 켈레멘 자신 또한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하는 내용이다.
스카다르의 경우와 견주면 내용상의 결락이 확인되지만, 가족 모두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노래의 비극적 결말이 특별하다. 이를 통해 축조한 건축물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인신공희의 실행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실제 유럽의 각 민족들 사이에 이와 관련한 노래와 전설들이 전승된다는 점만 언급해둔다.
경주 월성에서도 ‘인신공희’ 사례 추정
2021년 경주 월성 서쪽 성벽 중심을 따라 ‘인신공희’로 추정되는 키 135cm에 체격이 왜소한 20대 여성 시신 1구가 발굴 과정에서 보고됐다. 왕이나 귀족 등이 사망하면 그를 따르던 사람들을 함께 매장하는 순장 풍습일 수 있으나 시신이 발굴된 곳은 무덤이 아닌 성벽으로, 2017년에도 50대의 신장 165.9㎝인 남성 인골, 153.6㎝인 여성 인골 2구가 발굴된 곳이다.
발굴단은 인골의 치아와 골격을 보면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고급 유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신분이 낮은 인물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발굴단은 “월성 기초부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거대하게 쌓아 올리기 전에 묻었다”며 “성벽이 튼튼하게 오래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성벽의 중요한 시설인 대문 근처에서 의식을 치른 것 같다”하고 설명했다. 월성 성벽의 인신공희는 이른바 ‘인주설화(人住說話. 인주는 거대한 토목공사인 성쌓기·둑쌓기·다리놓기 등을 할 때에 한 사람을 물 속이나 흙 속에 파묻는 것을 말한다)’를 뒷받침하는 국내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데, 스카다르의 여인과 확연히 겹쳐진다.
건축물 혹은 축조물
의 영속성을 위한 인간의 희생은 문학의 비극적 원천을 제공한다. 희생된 스카다르의 여인은 수유의 기원 대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데버 성의 켈레멘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켈레멘 자신은 죽음 이후에 데버성의 영속성과 더불어 비극적 상황을 되새기는 데에 활용될 따름이다. 그런데 월성의 서쪽 성벽 아래에 이름도 없이 초라한 행색으로 묻힌 인골들은 월성의 영속성을 거론할 때조차도 결코 소환되지 않고 잊힌 희생자로 남았다. 이들에게는 어떤 노래와 전설이 당시에 회자됐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