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미술관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구·경북지역의 풍부한 문화자산이다.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빛나는 별들이 이 지역에서 성장했다.
미술관 건물 역시 매우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어미홀’이라고 이름 붙인 내부공간이다.
‘어머니’에서 가져온 명칭은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다목적으로 활용되는 인큐베이팅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다.
대구미술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는 대구스타디움(구 대구월드컵경기장)과 대구육상진흥센터 등이 있고 미술관 바로 옆에서는 내년 5월 개관 예정인 대구간송미술관 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구미술관 건립은 1990년대 이후 추진된 대구대공원 개발사업의 일부였다. 실제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하철역도 대공원역이지만 몇 가지 이유로 대공원 조성이 늦춰진 탓에 미술관은 외딴곳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미술관은 대구 도심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 KTX 동대구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미술관에 가려면 지하철 1호선 율하역이나 2호선 대공원역까지 이동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대공원역과 대구미술관 사이를 왕래하는 미술관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배차 간격이 한 시간 정도로 긴 편이어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경로를 택하든 대중교통편으로 대구 도심에서 미술관까지 이동하려면 대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특단의 조치일 테지만 미술애호가 입장에서 이것은 아쉬운 선택이다. 미술애호가들은 주말이 아니라 평일 오후에도 방문할 수 있는 가까운 미술관을 원하기 때문이다.
10년 넘는 긴 준비끝에 개관
대구미술관 건립사업은 1999년에 시작됐다. 이해 4월에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추진계획이 수립돼 미술관 건축설계공모를 진행됐고, 21개 건축사사무소들의 치열한 경쟁 끝에 희림건축과 동우건축의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10년이 훌쩍 넘는 긴 준비 끝에 2011년 5월 26일 대구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대구미술관은 광주시립미술관(1992), 부산시립미술관(1998), 대전시립미술관(1998) 등 다른 시립미술관들에 비해 늦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개관 이후 지난 10여 년간 미술관은 빠르게 성장했다.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2013),「쟝 샤오강 Memory +ing」(2014),「잉카 쇼니바레 MBE: 찬란한 정원으로」(2015),「양푸동, 내가 느낀 빛」(2016),「알렉스 카츠」(2019),「팀 아이텔_무제」(2020),「다니엘 뷔렌」(2022)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칼 안드레」(2023.9.26~2023.12.31)까지 대구미술관에서는 미술애호가들이 외면할 수 없는 해외 중요 작가들의 전시가 잇달아 열렸다.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전 「모던라이프」(2021~2022)는 대구미술관과 프랑스 매그재단이 공동주최한 해외교류전이었는데, 양 기관이 소장한 78명 작가의 대표작 144점이 전시됐다. 유영국, 최영림, 김창열 등 대구미술관이 자랑하는 소장품 다수와 알베르토 쟈코메티, 장 뒤뷔페, 훌리오 곤잘레스, 에두아르도 칠리다, 앙리 미쇼, 한스 아르퉁, 클로드 비알라, 리처드 롱 등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술관에서는 또한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전위미술과 행위미술을 다룬「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2018), 1980~1990년대 한국현대사진을 다룬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한국현대사진운동 1988~1999」(2018) 등 굵직한 회고전이 열려 미술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유머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유머랜드주식회사」(2021),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매개로서 다양하게 기능하는 ‘K’들에 주목한「펑키-펑션 Funky-Funtion」(2022) 등 ‘Y아티스트프로젝트’는 참신한 기획으로 주목받으며 대구미술관을 대표하는 전시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대구미술관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구·경북지역의 풍부한 문화자산이다. 한국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빛나는 별들이 대구·경북지역에서 성장했다. 김용준, 이인성, 이쾌대는 한국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빛나는 별들이다. 서병오에서 서동균으로 이어지는 영남 문인화의 계보, 서동진, 박명모 등 근대 수채화의 계보, 이여성, 이상춘 등의 사회적 예술실천에도 주목해야 한다. 서진달, 주경, 정점식 등 서양화가들도 뺄 수 없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열린 대구현대미술제는 국내 최초의 전국적, 집단적 현대미술제로 박현기, 이강소, 최병소 등이 활약했다. 2011년 개관기념전으로 열린「이강소」,「메이드 인 대구」를 필두로 대구미술관은 대구의 근현대미술을 다룬 전시들을 꾸준히 개최했다.「이쾌대」(2011~2012),「곽훈」(2012~2013), 「최병소」(2012~2013),「대구아티스트: 선(線)-삶의 비용」(2016),「대구미술을 열다-석재 서병오」(2017),「이인성 특별전」(2019)「메이드 인 대구Ⅱ」(2020) 등이 그것이다.
2021년에는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대구근대미술전: 때와 땅」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서양식 화구가 들어와 새로운 미술이 시작된 1920년대부터 전쟁의 상흔을 극복해 가는 1950년대까지 대구근대미술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다룬 전시로 관련 아카이브들도 다수 전시됐다. 
눈길 끄는 이인성 미술상 수상전
한편 대구미술관에서는 매년 가을, 화가 이인성의 작품세계와 예술정신을 기리는 이인성미술상 수상전이 열린다. 이 상은 1999년 제정된 이래 2013년까지 대구시 주최, 대구미술협회 주관으로 운영하다가 2014년 대구미술관으로 이관했다. 최근에는 강요배(21회, 2021), 유근택(22회, 2022)이 수장자로 선정됐고 올해는 윤석남이 수상했다. 지금 대구미술관을 찾으면 「제23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윤석남」(9.26.~12.31)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올해부터는 지역청년작가 발굴과 지역미술 활성화를 위해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연계 청년특별전」을 신설하고 첫 번째 수상자로 일상 풍경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제시한 화가 이성경을 선정했다.
이제 미술관 건축을 돌아보기로 하자. 대구미술관은 대덕산 산자락 계곡 사이에 건립됐다. 잘 정돈된 미술관 진입로를 따라 경사진 언덕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는 일은 마치 조용한 산사를 방문하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희림건축과 동우건축의 설계안에 따르면, 미술관 진입로 설계는 자연계곡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 영역과 극락전 영역으로 배치된 동화사의 배치를 참조했다. 계곡을 건너는 돌다리는 자연계곡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경사지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진입공간을 연계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경사지의 지형을 오르는 전통적 공간구성 방식인 석단(石壇)-단형구조를 취해 단계적 변화와 수평의 리듬을 부각했다. 좌우로 길게 펼쳐진 미술관 건물의 수평적 전개는 해인사 대장경판고나 종묘의 선적 매스(mass)를 참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미술관 건물에 입장하기 전에 건물 주변을 오르락내리락 한 바퀴 빙 둘러보면서 건축에 내재된 전통적 요소들을 탐사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길쭉한 미술관 건물은 계곡을 경계로 좌우 두 영역으로 나뉘는데 미술관 주출입구가 있는 오른쪽 건물이 전시동이다. 왼쪽은 부속동인데 지금은 카페 외에는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미술관 로비에는 ‘부속동의 새날을 준비합니다’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독특한 건물 구조 그리고 ‘어미홀’
대구미술관 건물은 매우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로비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전시공간으로 진입하면 매우 밝고 높은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건축가들은 이 공간을 ‘내부 광장’으로 불렀는데,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탁 트인 실내 공간이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전시공간을 구성했기에 관객들은 2~5전시실, 선큰가든이 있는 2층에서도, 미술정보센터와 아카이브실, 뷰라운지가 있는 3층에서도 이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주하게 된다(이러한 구성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과 닮았다).
미술관에서는 이 공간을 ‘어미홀’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머니’에서 가져온 명칭은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다목적으로 활용되는 인큐베이팅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 어미홀에서는 미국 미니멀리즘 예술가 칼 안드레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수직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수평성만을 살린 그의 작업은 높고 길쭉한 어미홀 공간과 묘하게 통한다. 바닥에 낮게 깔린 칼 안드레 작품의 특성이 더욱 강조된다고나 할까?
수평-수직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닫힘-열림의 상호작용 역시 주목해야 한다. 통로처럼 구성한 전시공간과 탁트인 어미홀을 오가는 일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한편 어미홀 주변의 기둥과 회랑, 유
리박스 같은 장치들은 공간에 변화를 불어넣는 장치들이다.
건축가들은 건물 설계에서 유리를 적극 활용했는데, 이는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작가나 전시기획자들이 유리를 통해 전시공간에 침투한 외부의 빛(채광)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관찰의 포인트다.
끝으로 3층에 올라가 뷰 라운지에서 보이는 멋진 광경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대구미술관은 정말 많은 매력을 지닌 미술관이다. 단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만 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