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무엇을 위하여 종(種)은 어울리나

“국가를 위해 헌신해 줘 고맙다.”
“사랑만 주는 동료였다.”

 

10월 20일 대전경찰특공대 경찰들이 한 동료를 추모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지난 9월 혈액암으로 숨진 그 동료의 이름은 ‘럭키’, 향년 8세. 폭발물 탐지, 실종자 수색 등 200회 이상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찰견입니다. 동료 경찰들이 눈물을 쏟으며 럭키의 임종을 지켰고, 태극기로 감싼 럭키의 유해는 특공대원 20명의 경례를 받으며 특공대 사무실 앞에 묻혔습니다. 럭키의 경찰견 선배로 ‘래리’가 있습니다. 5년 전인 2018년 7월, 수색 중 독사에 물려 6세에 숨진 래리의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러졌으며, 묘에는 ‘대한민국 경찰견 순직 1호’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퇴역견 메이, 국가를 위한 헌신의 대가는?
럭키도, 래리도 한창 나이에 떠난 것은 안타깝지만 가는 길이 서럽거나 쓸쓸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조직의 깍듯한 예우와 동료들의 훈훈한 인사를 받으며 떠났으니까요. 럭키나 래리 못지않게 국가와 사람에게 헌신과 애정을 쏟았으나, 그들과는 달리 배신당하고 처참하게 살해된 ‘충견’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선, 2019년 사망한 ‘퇴역견 메이’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이는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에서 평생 ‘나랏일’을 한 검역탐지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퇴한 메이에게 찾아온 것은, 편안한 여생이 아닌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2018년 3월 수의학과 A 교수에게 넘겨진 퇴역견 메이는, 그에 의해 온갖 고통스러운 실험을 당했고, 결국 2019년 2월 세상을 뜹니다. 이 사실은 동물권단체 (사)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에 의해 밝혀지면서 공분을 샀습니다. ‘메이와 함께 A교수에게 넘겨진 퇴역견 페브, 천왕을 구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돌파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페브와 천왕은 구조됩니다. 그러나 한 생명체, 그것도 국민을 위해 평생 헌신한 퇴역견을 불법 실험으로 잔혹하게 살해한 장본인은 죗값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사람 살렸지만, 사람에게 살해된 복순이
2022년 8월, ‘퇴역견 메이’ 사건 이상으로 공분을 일으킨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정읍 복순이’ 사건입니다. 이름도 없이 마당에 묶여 살던 복순이는, 소유자 B씨의 남편 C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크게 짖어 C씨를 살렸습니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은 이름도 없던 그에게 ‘복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충견’이라며 기특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충견’ 복순이는 사람을 살린 후에도 여전히 마당에 묶여 있었고, 밥과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2년 8월 23일 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마당에 묶여 있는 복순이에게 동네 주민 D씨가 흉기로 위해를 가했습니다. 더욱 끔찍한 일은, B씨가 “치료비가 없다”라며 자신의 개를, 그것도 자기 남편을 살린 은견(恩犬) 복순이를 보신탕집에 넘긴 것입니다.

 

주민들의 제보와 비구협의 고발에 의해, 남의 개 복순이에게 위해를 가한 D씨와 자신의 개 복순이를 보신탕집에 넘긴 B씨 그리고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복순이를 살해(도축)한 보신탕집 업주 E씨 모두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됐습니다. 셋 중 누가 제일 나쁠까요? 저는 B씨라고 생각합니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지옥 밑바닥에서 가장 큰 벌을 받는 죄인은 ‘배신자’ 아니던가요.

 

많은 사람들이 B씨를 향해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죄질이 아주 나쁘다”라며 강한 분노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에서 동물은 ‘물건’이므로, 소유자가 자신의 ‘물건’에 한 짓을 처벌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가장 많은 공분을 산 B씨는 “생활고 때문에 치료비가 없었다”라며 빠져나갔으며, 남의 ‘물건’에 위해를 가한 D씨는 재판 중에 있습니다.

 

동물권을 위해 글을 써온 저는 최근 판결이 난 ‘동물판N번방’ 사건을 포함해 온갖 동물학대 사건을 접해왔습니다. 컴투펫 아지, 경의선 자두, 망원동 토순이, 화성 시껌스, 수원 꼬미, 인천 베리와 아가야, 그리고 이름도 없이 고통 속에 죽어간 길 동물들… 재판 참관을 하다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관련 자료를 읽다가, 글을 쓰다가 눈물을 쏟곤 했습니다. 생전에 만난 적 없는 동물들의 모습을 영정사진처럼 PC 바탕화면에 걸어놓고 슬픔과 분노, 미안함에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그동안 접한 사건들 가운데 덜 아픈 건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럽고 미안한 사건을 묻는다면, ‘퇴역견 메이’와 ‘정읍 복순이’ 이 두 건을 꼽겠습니다. 배신과 배은(背恩). 지옥에서도 밑바닥에 떨어져 마땅할 죄. 이 두 사건을 떠올릴 때면 특히 ‘충견(忠犬)’이라는 두 글자가 무척 비극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트로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 아르고스
충견은 서양문명의 기원을 다룬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도 등장합니다. 트로이 전쟁에 출전했던 이타케 섬의 왕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후 온갖 고초 끝에 고향 이타케로 돌아옵니다. 무려 20년의 세월이 흐른 데다가, 적들을 피해 거지로 변장한 그를 아내도, 오랜 친구 에우마이오스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 오디세우스를 알아본 존재는 그의 ‘충견’, 아르고스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르고스는 20년이나 기다렸던 오디세우스를 만나자 바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마치 그를 기다리느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죽지 못했던 것처럼요.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는 동안 아르고스가 받았던 대우입니다.

 

“아르고스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오디세우스의 궁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문 밖에 하인들이 버린 거름더미 사이에 누워있었다. 아르고스의 몸은 너무 늙고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고 몸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이렇게, 아르고스는 돌봐주는 이 하나 없는 유기견 신세였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오랜 친구인 에우마이오스는 아르고스의 ‘속력과 용맹’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아르고스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돌봄’ 아니었을까요. 오디세우스와 아르고스의 재회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미술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름더미 사이에 버려진 채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디던 ‘충견’ 아르고스를 생각하면 이 ‘충성의 일방통행’을 미담이라 할 수 있을지 착잡해집니다.

 

“하치야, 더 이상 기다리지 마!”
고대 그리스에 아르고스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치’가 있습니다. 2016년 1월 31일 방송된 MBC 「서프라이즈」 700회 특집에서 시청자들은 가장 감동적인 사건으로 하치의 사연을 꼽았습니다. 반려인 우에노가 1925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후에도, 매일 시부야역에서 우에노를 기다리던 하치는 1935년 역사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하치의 사연은 책과 영화를 통해 더욱 알려졌으며 하치의 동상, ‘충견비’까지 세워집니다.

 

하치 이야기, 과연 ‘감동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하치가 우에노와 함께한 시간, 하치의 생애에서 행복했던 시간은 생후 1년 5개월이 전부입니다. 우에노가 죽은 후 10년 동안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기다리며 슬픔 속에 살다 간 것입니다. 하치에게 잊지 못할 사랑을 주고 간 반려인 우에노가 그걸 원했을까요? 그가 저 세상에서 하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왜 기다렸어, 미안하게…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마!”

 

영화 「늑대소년」에서 47년 동안 옛집에서 자기를 기다린 소년에게 이제 할머니가 된 소녀 ‘순이’가 말했듯 말입니다.

 

충견비 옆 보신탕집
국내 충견 이야기로는 오수의견(獒樹義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원동산공원에는 불에 타 죽을 뻔한 주인을 살리기 위해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끄고 죽은 개를 추모하는 의견비(義犬碑)가 있죠. 놀라운 사실은, 이곳에서 불과 200미터 거리에 보신탕집이 있다는 점입니다.

 

충견비와 열녀비가 함께 세워진 곳도 있습니다. 경북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는 이 마을 정태을(鄭太乙)의 아내 박씨(朴氏)와 그의 두 딸을 기리는 열녀비와 박씨를 생전에 따르던 충견의 비, 의구비(義狗碑)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박씨는 임진왜란 때 왜구에게 몹쓸 짓을 당하느니 ‘절개’를 지키는 편을 택했습니다. 자기 손으로 두 딸을 죽인 후 자결했으며, 세 모녀의 시체를 그 집의 개가 까마귀 떼를 쫓으며 지키다 죽은 것으로 전해져요. 이를 고을 사또가 “길이길이 후세에 전하여 본받게 할 일”이라며 비석을 세우도록 명했다는 이야기죠.

 

인간, 남성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인간·남성중심적’이라는 한계를 피할 수 없습니다. 기록되는 대상이 누구든, 역사를 우리의 이야기(Ourstory)도, 그들의 이야기(Theirstory)도 아닌 그의 이야기(History, His story)라 일컬어지죠. 일각에서는 “여성의 역사를 허스토리(Herstory)라 구분해서 명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인간 외 동물(대표적으로 ‘개’)과 여성은 자연스럽게 타자화·대상화됐으며 객체에 머물러왔습니다. 충견비와 열녀비는,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되던 ‘충성’과 ‘절개’를 상징적으로 시사하죠. 충견비에 담긴 종(種)차별, 열녀비에 담긴 성차별. 이 두 가지 차별은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요?

김진주 동물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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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la***
    선진국은 동물복지에 대한 내용을 헌법에 포함하여 동물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물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 또한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위한 길이라 생각됩니다.
    2023-11-01 10:17:21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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