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하루키 4주차에 들어갑니다. 지금 보는 『도시와 그 불완전한 벽』은 지난번 다뤘던 『상실의 시대』와는 30년이 넘는 시간적 간극이 있는 작품이에요. 신인다운 패기를 보였다가 이제는 더 철학적으로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죠. 죽음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도 있고요.”
10월의 마지막 월요일 저녁 7시 서울지역대학 인근 강의실, 구종회 강사의 말이 시작되자 방송대 학우들의 눈빛이 빛났다. 독서연구회로 시작해 함께 책을 읽으며 인문학의 바다를 헤쳐가고 있는 스터디 이름은 ‘레슈에츠(les chouettes)’. 불어로 ‘밤올빼미’인데, 늘 깨어있는 자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팬데믹도 이긴 독서 열정
레슈에츠는 팬데믹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던 2020년 5월 7일 문을 열었다. 강연자는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예술과 비평철학을 전공한 구종회 강사. 구 강사는 「동서양고전산책」, 「독서의즐거움」 등 방송대 강의에 나오는 책을 문화교양학과 학우들과 함께 읽으며 분석했다. 구 강사 수업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황현숙 학우(문교 졸, 현 영문·3)가 삼고초려한 끝에 학교 밖에서 인문학 강좌가 열리게 됐다.
서너 명으로 출발한 스터디는 코로나 중에도 단 한 차례 휴식 없이 지금까지 4년째 순항 중이다. 입소문을 타고 스터디원도 늘었다. 문화교양학과 재학생, 졸업생 위주였던 멤버는 영어영문학과, 경제학과, 관광학과 등 타 학과 학우도 함께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는 서울지역대학 인근 강의실에서 10여 명이, 화요일 오후 1시에는 잠실 석촌호수 인근에서 15명(잠송스터디)이 모인다.
거창한 목표는 없다.
함께 모인 이들의 학문적 열정과
지적 호기심이 최대한 오랫동안
식지 않기를 바랄 뿐
첫 책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필두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디크 스왑의 『우리는 우리 뇌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등 40여 권을 함께 읽었다.
레슈에츠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할까? 구 강사가 ‘인간’, ‘과학’ 등 큰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책을 고르는데, 최근에는 학우들 의견도 반영하고 있다. 기본은 고전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에 해답을 모색하기에는 고전만큼 검증된 책이 또 있을까. 구 강사는 “스터디에 오는 방송대생 중에 인생 후반부에 접어든 분들이 많다. 삶과 자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정확하진 않더라도 해답의 실마리 정도를 전해줄 수 있는 책 위주로 선정해 함께 일고 있다. 같은 학문적 토대를 공유하면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의를 더 활력 넘치게 해주고, 강의에 임하는 진지한 모습에 오히려 더 힘을 얻는다”라고 설명했다.
기억에 남는 책들은 무엇일까? 한 학우는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서 주인공이 세금을 안 내서 감옥에 갇히는데, 자신이 내는 세금으로 노예를 사고 총을 쏘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어요. 강의가 아니었다면 몰랐겠죠. 작가는 단풍이 들 때 슬퍼하지 말라고도 했는데, 우리가 볼 때는 떨어지는 낙엽이지만, 단풍은 자신을 봐주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여행갈 준비를 하고 나온다는 강사님 설명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정말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전을 기본으로 최신작까지 섭렵
그렇다고 고전만 읽는 건 아니다. 이번에 함께 읽고 있는 책은 하루키의 최신작이다. 워낙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예전에 『상실의 시대』를 함께 읽었기에 연장선상에서 작가의 성장을 확인해 볼 겸 신작을 선정했다. 『도시와 그 불완전한 벽』에서도 죽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대역을 찾으려 애쓴다.
레슈에츠 스터디원들은 한발짝 멀리서 주인공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자신의 삶에 대입한다. 한 학우가 “어머니를 오래전에 떠나보냈지만, 아직 매일 생각이 납니다.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그것이 유령으로 표현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강의식 수업이 자연스럽게 양방향으로 전환됐다.
구 강사는 하루키 소설에서 꿈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라고 화답했다. “꿈을 통해 우리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보통 사회적 자아가 본질적 자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체로서의 삶을 살지 못해요. 사회적 자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죠.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정말 좋아했던 것들을 할 때 본체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꿈으로 표현된 것이고요.”
스터디 모임이 햇수로 4년을 넘기면서 스터디원의 죽음을 함께 경험하기도 했다. 이때 예전에 함께 읽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도움이 됐다. 이론적 죽음에 대해 공부했기에, 죽음의 서사, 서사로서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스터디원을 떠나보내는 그들만의 송별회를 치르기도 했다.
사회적 자아 아닌 본체의 삶 살려면
함께 공부하면서 스터디원들의 일상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 학우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를 읽고 강박적인 종교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한 학우는 중도 포기할 뻔도 했던 학업을 스터디에서 힘을 얻어 이어갈 수 있었다. 현직 기자로 바쁜 생활 중인 한 일본학과 학우는 일주일에 한 번 지식적인 측면에서 성장도 하지만, 3년 이상 공부한 분들의 내공을 보며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첨언했다. 졸업 후 편입해 계속 스터디에서 공부하는 이들도 많다.
레슈에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구 강사는 “거창한 목표는 없다”라며 웃었다. 함께 모인 모든 이들의 학문적 열정과 지적 호기심이 최대한 오랫동안 식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우리네 인생도 어느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남들과 별 다를 바 없다.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하게 보였던 일들과 고민들이 지금에서는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하루키의 소설에서처럼 사회적 자아 안에 갇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진짜 좋아하는 일들은 미뤄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본체의 삶을 잊고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인생에서 정말로 가치 있는 것들이 궁금한 레슈에츠 밤올빼미들이 지금 인문학의 바다를 함께 항해할 학우들을 기다리고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