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to remain silent and be thought a fool than to speak out and remove all doubt.”(입을 열어 모든 의혹을 없애는 것보다는 침묵을 지키며 바보로 보이는 것이 더 낫다. 에이브러햄 링컨)
링컨의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다. 그의 편지와 연설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역사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한다면, 이 별명은 그에게 어울리는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는 가식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직한 에이브도 때로는 알쏭달쏭 줄타기를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미국 제16대 대통령이다. 그는 어린 시절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고 노예제도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노예해방을 위해 힘쓰게 됐다. 링컨은 책 읽기를 좋아했다. 링컨에게 영향을 끼친 책은 『조지 워싱턴 전기』 『로빈슨 크루소』 『성경』 등으로 알려져 있다. 링컨은 로빈슨 크루소의 열정과 끈기, 조지 워싱턴의 애국심과 책임감, 성경이 전하는 희망과 믿음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해 나갔다.
링컨의 목숨을 빼앗아 갈 음식은 토마토 요리였다.
당시 토마토는 ‘악마의 열매’, ‘에덴동산의 선악과’로 오해받는 시대였다.
‘토마토를 먹으면 죽는다’는 만연된 속설 때문에
1820년 뉴저지에서는 토마토 재배가 금지되기도 했다.
정적들은 링컨이 서서히 마르고,
병약해지기를 기대했다.
정직하고 유쾌한 화술로 대중 사로잡아
수염 때문인지 보기에는 다소 까다로워 보여도 링컨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직하고 유쾌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화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주제를 간단명료하게 표현했다. 그가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토론과 연설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링컨은 노예제도의 확장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자였다.
그가 살았던 19세기의 시대적 상황은 인간 생존에 유리하지 않았다. 그 이전부터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은 앞다투어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고, 그런 와중에 민주주의 발전을 이끈 시민혁명이 곳곳에서 발발했다. 1642년 영국의 명예혁명, 1776년 미국의 독립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 1848년 독일의 3월 혁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임기 중 일어났던 남북 전쟁에서 북부 연방을 이끌며,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최고 지휘관으로 앞세워 연방에서 분리하고자 했던 남부 연합에 승리를 거뒀다. 1863년 노예해방 선언을 발표하고, 미국 수정 헌법 제13조의 통과를 주장하며 노예제의 폐지를 이끌었다.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의 주들이 모여 남부 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섬터 요새 포격을 시작으로 내전은 시작됐다. 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4년 동안 지속됐다. 전쟁 결과는 남부 연합군의 패배와 함께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기에 이른다.
링컨은 186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또다시 승리했다. 공화당의 중도파 수장으로서 링컨은 사방에서 비판받았다. 노예제도에 반대하던 공화당 급진파는 남부에 대해 더욱 강한 조치를 촉구했으며, 전쟁에 반대하던 민주당에서는 평화와 협상을 촉구했다. 게다가 분리독립주의자들은 링컨을 적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링컨은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재정지원 약속을 통해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링컨은 대중의 의견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게티즈버그 전투에서의 승리와 희생을 기린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으며,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명연설로 손꼽힌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사흘간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로 남북 전쟁에서 가장 참혹한 전투였으며, 흔히 남북 전쟁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271단어로 이루어진 게티즈버그 연설은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후, 링컨이 전투 격전지에서 발표한 선언문으로, 3분 동안의 짧은 연설 속에 미국의 전통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이념을 잘 요약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연설의 가장 유명한 대목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은 링컨이 최초로 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종교개혁가 존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후 “이 성경은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통치를 위한 것입니다”라고 한 말을 링컨이 인용한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소박한 식성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개인의 식성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기 마련이다. 링컨의 친어머니 발낸시 링컨은 링컨의 나이 아홉 살 되던 해 가을 34세로 생을 마감했다. 독초를 먹은 소에서 짠 우유가 매개체 역할을 하는 우유병 혹은 우유 중독이 원인이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집안 살림과 어린 자식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자, 링컨의 아버지 토머스(1778~1851)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으며 링컨이 ‘엄마’라고 불렀던 친구 사라 존스턴(1788~1869)과 이듬해 겨울 재혼했다.
그녀는 사별한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세 명의 아이를 두었다. 켄터키주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태어난 새어머니 사라는 ‘사라 부시 링컨’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안주인으로 집에 들자마자 물을 받아 아이들을 씻길 만큼 의붓자식들을 따뜻하게 돌보았고, 책을 좋아하는 링컨의 편을 들어준 덕분에 링컨은 풍부한 교양을 쌓을 수 있었다.
당시 미국 북서부 변방 개척지에 사는 가난한 가정 출신의 부친 토머스는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말재주가 뛰어난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링컨은 연설하는 법을 배웠다. 어린 시절 두 어머니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자란 덕분에 링컨의 식성은 무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음식의 품질을 타박할 여건이 아니었다. 까탈 맞거나 가리지 않고, 소박할지언정 맛있게 먹는 법을 링컨은 일찍 터득했다.
링컨의 데일리 메뉴를 보면 그가 건강주의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의 식단치고는 시시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당장의 미각 만족보다는 건강을 우선시했다. 그런 그가 총을 맞고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했다. 이래서 운명은 얄궂다.
링컨의 유년 시절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다. 어릴 때의 식습관 탓인지 링컨의 식탁은 성인이 되어서도 소박한 편이었다. 아침은 달걀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히 해결했고, 점심은 비스킷, 우유, 과일로 단출한 식단이었다. 저녁은 조금 푸짐한 편이었으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어쩌다 와인을 조금 마실 뿐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고 물을 자주 마셨다. 좋아한 음식은 소고기를 소금에 간한 콘비프, 닭고기를 잘게 썰어 삶은 것에 그 국물을 친 치킨 프리카세, 송아지 머리고기로 만든 모크 터틀 수프, 버지니아식 새 구이, 양배추, 옥수수 케이크, 사슴고기, 칠면조 다리, 굴 수프, 진저브레드 멘 쿠키, 베이컨, 아몬드 케이크, 피컨 파이, 사과 등이다. 그의 대통령 취임 만찬 식단도 수수했다. 감자, 수프, 고기, 블랙베리 파이 정도였다.
물론 정치적 목적이 있는 백악관 만찬에는 다양한 음식을 내놓도록 했다. 또 링컨도 당시로서는 미식가들이 즐겨 먹는 바다거북이 수프나 칠면조 다리 요리를 종종 찾았다. 그러나 그가 먹는 음식은 대체로 소박했다. 디저트는 커피 한 잔과 남부식 아몬드 케이크 정도였다. 남부식 케이크는 아내 메리 집안에서 즐겨 먹던 것이다. 링컨이 아내 취향을 따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링컨이 백악관 후식을 남부식 아몬드 케이크로 정례화한 것은 분열된 남북의 통합을 추구하는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악마의 열매’로 오해된 토마토
그의 정적들은 늘 그를 제
거하고자 했다. 일설에 의하면 음식에 독을 조금씩 넣어서 서서히 죽어가게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암살이 아닌 병사로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통령의 요리사를 매수했다. 그리고 건강을 약화시키는 음식을 매일 식탁에 올리게 했다.
링컨의 목숨을 빼앗아 갈 음식은 토마토 요리였다. 당시 토마토는 ‘악마의 열매’, ‘에덴동산의 선악과’로 오해받는 시대였다. ‘토마토를 먹으면 죽는다’는 만연된 속설 때문에 1820년 뉴저지에서는 토마토 재배가 금지되기도 했다. 정적들은 링컨이 서서히 마르고, 병약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링컨의 얼굴은 더 좋아졌다. 정적들도 요리사도 몰랐겠지만, 토마토는 웰빙 식품이다. 비만이나 노화 억제에도 도움이 된다. 다량 함유된 비타민C는 피부를 빛나게 하고, 비타민B는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루틴 성분은 혈관 질환 예방을, 라이코펜은 항산화 기능을 한다. 토마토는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그들의 암살 시도는 오히려 링컨에게 약이 됐다.
그러나 죽음은 뜻밖의
시간에 예상치 않은 장소에서 찾아온다. 남북 전쟁이 끝난 지 5일 후인 1865년 4월 14일 금요일 오후 10시경 에이브러햄 링컨은 포드 극장에서 남부 연합을 지지하는 가톨릭교도 배우인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을 맞고 이튿날 아침 사망했다.
링컨의 사후 158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모든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는 국민 영웅이자, 성자요, 민주주의의 순교자다. 역사의 거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미국의 5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