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한 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 주지도, 사랑해 주지도 않았다. 나는 버림받을수록 그만큼 나를 더 열심히 사랑하리라 결심했다. 예전에는 나 자신에 대해 만족했으므로 그다지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나를 분해하고 나를 바라보고 나를 관찰하려고 했다. 일기 속에서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하나의 세계로 들어갔고 그곳의 새로움이 나를 눈부시게 했다. 나는 우울과 절망이, 삭막함과 평온함이, 어떻게 다른가를 배웠다. 나는 마음의 망설임, 마음의 열중, 체념 후에 오는 평온, 저 깊숙한 밑바닥에서 오는 희망의 속삭임을 배웠다.” ―『자유로운 여자』(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이영선 옮김, 산호, 1993) 중에서 보부아르는 1949년에 출간한『제2의 성』에서 말했다.“내가 주장한 것은 양자의 차이(제1의 성과의)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의 것이라는 점이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다.”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했던 그녀는 굴종과 종속이라는 여성의 스트레스에 맞서 스스로 유전자를 변화시킨 존재다. 고집쟁이 아이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Lucie Ernestine Marie Bertrand de Beauvoir, 1908~1986)는 1908년 1월 9일 새벽에 프랑스 라스파야 가(街)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원에서 근무하는 아마추어 연극배우였고 어머니는 수녀원에서 자란 전형적인 보수적 여성이었다. 시몬느는 어릴 적 삼촌과 이모와 조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컸다. 하지만 세 살이 되고부터는 어른들의 금기와 꾸지람과 평판을 견디지 못했다. 살구껍질 까는 것을 금지당했을 때, 공원에서 모래 장난을 하지 못하게 했을 때, 불쌍한 아이 취급을 받을 때, 시몬느는 새파랗게 질리도록 울고 발작에 가까운 저항을 했다. 엄청나게 조숙한 이 아이는 절대 항복하지 않았으며, 여동생이 태어나자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어 버렸다. 다섯 살이 됐을 때 아이는 학교에 보내졌다. 아이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흠모했다. 아버지의 책상 아래 공간이 어머니의 감시를 피해 자유로울 수 있는 장소였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들의 책을 보여 주었다. 어느 사이 아이는 혼자서 글을 깨우쳤다. 1914년에 전쟁이 터졌다. 아버지는 보병 부대에 배치됐다. 시몬느는 독일제 셀룰로이드 인형을 밟아 버렸으며 연합군의 깃발을 꽃병마다 꽂았다. 엄마를 도와 외과용 거즈를 만들고 방한용 털모자를 짰다. 급기야는 하늘색 장교복 천으로 군인이 입는 외투를 맞추어 입고는 큰 거리에서 의연금을 모았다. 전쟁이 아이로 하여금 주체성을 포기하고 어른들의 칭찬을 바라는 ‘원숭이’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훗날 그녀는 술회했다. 전쟁이 끝나 일선에 나갔던 아버지는 무사히 돌아왔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다. 시몬느는 다시금 아버지와 단 둘이 연극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를 독점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관습의 그늘에서 벗어나다시몬느는 신앙심이 깊은 아이였다. 그 신앙심 안에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시몬느는 매일 저녁 히드 숲 사이에 앉아 모네디에르 산맥의 푸른 빛 산을 바라보았다. 늘 변하는 하늘 아래에서는 성실성만이 일상성과 구별된다고 생각했다. 자연 속에서 시몬느는 신의 존재를 느꼈다. “나무가 색채를 띤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신이 내 눈동자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정신인 신이 내 육체를 통하지 않고 태양의 뜨거움, 이슬의 신선함을 어찌 경험하겠는가? 신은 인간을 위해 이 대지를 만들었고 그 아름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내가 항상 어렴풋이 느끼던, 내게 지워진 모든 사명은 신이 내게 내린 것이다. 신은 나의 자리를 빼앗기는커녕 그것을 통해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창조물은 어두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나는 창조물을 깨움으로써 가장 신성한 의무를 행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어른들은 무관심으로 신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자유로운 여자』)시몬느는 매년 피정 묵상을 했으며 수녀원에 들어갈 결심도 했다. 그런 결심의 배후에는 결혼과 모성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고 시몬느의 가족은 가난해졌다, 새로 이사한 초라한 집에서 부모님은 자주 다퉜고 시몬느와 동생도 말다툼이 잦았다. 초경이 시작되면서 시몬느는 다시금 신경증에 시달렸다. 밤마다 남성의 환영과 육체적 욕망이 회오리쳐서 괴로워했다. 가슴이 커지자 어머니는 그것을 붕대로 조였다. 어른들의 단조로운 삶, 특히 결혼한 여성들의 인생은 사춘기 소녀를 슬프게 했다. 시몬느는 멀지 않은 날의 숙명을 생각하면서 불안에 떠는 날을 지냈다. 그 속에서 미국의 소설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적 소설 『작은 아씨들』(1868~1869)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