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온갖 슬픔 속에 엉켜있던 내 유년의 기억, 원가족과 인생에서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 상자를 열게 만든 계기였다. 시, 소설, 수필, 동화, 희곡, 동시. 탁월하지도 않은 왕초보로서 지난 1년 동안 글쓰기를 배웠다. 친정엄마가 되고, 아들과 딸도 되어 마음이 가는 대로 썼다. 누군가의 시점으로 쓰기 위해선 최소한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경험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나자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이들을 조금은 안 것 같았다. 용서하기 힘들었던 엄마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나 자신을 관찰자로 바라볼 수 있었다. 글을 쓸수록 나를 알게 되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글쓰기를 계속해야 할 이유였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썼지만, 시간이 흐르니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도서관이나 문학관 등 공공기관의 수업보다는 방송대 수업을 다시 듣기로 결심한 것도 이때였다. 수강 신청 기간 에 모든 강좌가 개방될 때 국문학과의 시, 소설, 희곡 등 글쓰기와 연관된 수업을 들으면서 내 수준을 가늠했다. 현재 상황에서 도전이 될 만한 수업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욕심이 나더라도 너무 벅찬 과목을 수강했다가는 중도에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방송대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다시 듣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해되지 않을 때 반복해서 들으며 진정한 학습,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방송대문학상에 도전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공공기관에서 만난 문우들의 합평도 필요했지만, 여러 장르를 배우면서 습작을 하고 나니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평가가 필요했다. 예선이라도 통과하고 본선이라도, 당선되지는 않더라도 심사평이라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처음으로 쓴 작품인데 어림없겠지, 그래도 도전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처녀작으로 쓴 소설은 분량이 맞지 않았다. 중편 분량을 단편으로 압축하기 어려웠다. 시는 드러난 감정이 많아 함축성을 갖지 못했다. 동화는 어른의 시선이 섞여 있었고 수필은 주제에 맞게 분량에 맞게 써놓은 게 없었다. 마감 마지막을 앞두고 포기하려다 용기를 냈다. 그렇게 제출한 희곡이 가작으로 선정됐고,
심사평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내디딘 발걸음에 큰 격려가 됐다.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수업을 들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영미 작품의 묘미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다. 좀 더 수준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 꾸준히 습작하며 내년 문학상에 재도전하려고 한다. 작가로서 등단하는 날이 올 때까지 방송대는 든든한 친구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