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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대학보〈KNOU위클리〉로부터 동문 통신원에 참여하게 된 이유와 방송대와의 인연, 의미에 대해서 짧은 글을 써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방송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내 인생을 바꾼 대학’. 어라, 가슴이 뛴다.


사고뭉치 어린 시절 덕분에 고등학교도 변변히 나오지 못했지만, 공부에 대한 갈증은 항상 있었다. 그 사고뭉치 어린 마음에도 공부를 포기하면 정말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어렵게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농학과로 방송대와 첫 인연을 맺었지만, 절심함이 부족했는지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공부에 대한 회한만 간직하고 있다가 2014년 방송대 가정학과에 재도전했다. 학생회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내친김에 지역학습관 회장을 거쳐 35대 강원총학생회장을 하면서 스스로 학교의 중요한 구성원이 됐다. 사실 그동안 지식인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다. 그것은 기묘한 감정들의 복합이었다. 한풀이하듯 적극적인 학생회 활동을 통해 해묵은 내 감정의 찌꺼기들을 날려버렸다.


나는 전통 장류 제조를 업으로 삼고 있다. 지식에 대한 한풀이는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이제 내 업에 대한 목마름과 허기짐이 시작됐다. 그래서 국민대 일반대학원 바이오발효융합학과로 진학해 장류 미생물을 연구했다. 주중에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4인 1실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내려가 업을 이어갔다. 방학 없이 하루 15시간 이상 연구에 매달렸지만, 기초 학문의 부족은 어쩔 수 없었다. 4학기에 졸업하는 석사과정을 6학기에 마쳤다.


더 목이 말랐다. 20년을 전통 장(醬)을 만들고 3년을 대학원에서 죽을 듯이 공부했지만,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 이제 장류를 희미하게 알듯말듯한 상태인데 여기서 그만두면 더 허기질 것만 같았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박사과정이 인생의 승리는 아니다. 어떤 부류에서는 아기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인간승리로 다가온다. 돌이켜 보건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거의 기적이다. 그 기적을 이루게 해준 것이 방송대다. 방송대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나이에 박사학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평생을 만들어왔고, 죽을 때까지 만들어야 할 전통장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하다.


방송대는 내 인생의 디딤돌이 되어준 자랑스런 모교다. 나의 모태다. 내 꿈의 근본이다. 따라서 내가 방송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봉사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방송대 동문통신원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동문 통신원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방송대 일원들의 세세한 소식을 알 수 있었고 더불어 소속감이 살아났다. 특히 지난 2차 동문 통신원 워크숍에서는 모처럼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이것을 보면 나는 방송대에 중독된 게 틀림없다.


어디 나뿐이랴. 동문회 활동을 하시는 선후배 동문들을 뵈면 우리 모두가 방송대 중독자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같이 눈에서 광채가 날 만큼 방송대 일에 헌신하고 계신다. 열 일 마다하고 방송대가 우선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가슴 뛰게 할까? 무엇이 우리를 방송대 중독자로 만들었을까? 우리 모두에게 방송대는 내 인생을 바꾼 대학임에 틀림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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