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학습동아리를 조직하고,
시민조직과 연대한다면
좋은 공동체로 가는 시민력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인생 2막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방송대에 사회복지학과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두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로 1기로 3학년에 편입했다.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고 학생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방송대 편입생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내게는 아주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금융기관에서 30여 년 근무하며 자본주의에 충실하게 복무했던 사람이 그 자본주의의 폐해와 한계를 알게 된 것이다. 불평등, 차별 같은 부당한 사회 질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과 권력, 법과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 사회가, 이 공동체가 이대로 가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학과 공부를 하는 중에 ‘피억압자들의 교육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고, 미국 대공항 당시 시카고에서 빈민 운동을 펼쳤던 사울 알린스키를 배운 덕분이었다.
지금처럼 불평등이 심해지고 사회적 위험이 커져 가는 공동체를 더 평등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야 내 자녀, 손자 손녀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실제 조직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마리다 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지었다.
‘마리다’는 사회복지학과 유범상 교수님이 만든 새로운 인간형이다. 성경 속에 나오는, 가르침을 잘 듣는 마리아와, 일을 열심히 하는 마르다를 합친 것이다.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을 공부하여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알린스키의 전략을 활용하여 부당한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실천을 하는 조직이라는 의미이다.
사회복지학과 졸업생 다섯 명이 뜻을 모아서 2021년 6월에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나이대는 다행스럽게도 50대, 60대, 70대로 골고루여서 세대별 확장성이 있었다. 2022년 1월부터 실제로 활동을 시작했고, 첫 번째 실천 활동으로는 ‘나눔샘 시민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2022년 7월부터 3개월 동안 진행했다. ‘사랑의 열매’와 ‘(사)마중물’의 후원을 받아 『연민 대신 권리를 나누기로 했다』라는 워크북을 교재로 하여 격주로 2시간씩 7회의 시민 교육을 실시했다. 25명이 참여했다.
두 번째 실천 활동은 금년 1월에 10명으로 조직한 학습동아리 ‘마실책방’이다. 독회의 첫 책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었다. ‘사탄의 맷돌’로 비유되는 자본주의를 배우고 현 신자유주의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시민은 “80년 전에 쓴 글을 지금 우리가 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당시 사람들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책인 것 같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이처럼 참여자들의 사고 체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서 에리히 프롬의 『인간의 마음』,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유은실 소설 『순례주택』 등의 책과 영화를 감상하며 함께 토론했다. 마실책방 학습동아리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 번째 실천 활동은 ‘조직된 시민 세력과의 연대’이다. 김원봉의열단, 삼삼오오 시민교육, 동작사회적경제네트워크 등 다양한 시민 조직과 연대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노인상을 추구하는 실천 조직인 선배시민협회 창립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개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혼자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가 어렵다. ‘마리다 사회적협동조합’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학습동아리를 조직하고, 시민조직과 연대한다면 시민들의 힘, 즉 ‘시민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시민력이 형성되면 법과 제도와 정치를 발전시켜 더 나은 복지국가, 더 행복한 공동체가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마리다 사회적협동조합’의 비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