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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1921)에서 삶의 한 양상을 흥미로운 관점에서 통찰하고 있다. 그는 죽음 이후에 인간이 소망하는 시간적 불멸성, 즉 영혼 불멸이 획득된다고 한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적 질문에는 해답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가 영원히 산다는 것에 의해 도대체 수수께끼가 풀리는가? 도대체 이 영원한 삶이란 현재의 삶과 똑같이 수수께끼 같지 않은가?” 지금 이 자리의 삶이 수수께끼 같은 인간은 영원한 삶을 살더라도 한 가지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불멸하는 삶의 달갑지 않은 수반효과 가운데 하나는 사멸하는 인간의 일시적인 수수께끼를 영원한 수수께끼로 변모시킨다는 점이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인생에서 후회하는 것’을 물었을 때 세대별로 대답의 형식이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고 한다. 개략적으로 구별해서 나이가 어린 사람일수록 자신이 했던 행동을 후회하는 경향이 많고, 반대의 경우에는 자기가 하지 못했던 행동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청년과 노인의 시간적 전망이 다르다는 것을 함축한다. 노인들이 과거의 자신이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두었던 것들을 실현하기 바란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가정이 설득력이 있다면 나이 들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은 대답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자기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발견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지나온 삶에서 내가 원했음에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1997)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암암리에 습득하는 모든 사실들을 열거해 주는 데이터베이스는 존재할 수 없고,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존재한 적이 없다.” 중국의 속담은 이것을 우아한 역설 속에 담아냈다. “앞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되돌아온 사람에게 물어보라!” 우리는 이 길이 인생의 비유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따라서 인생길에서 되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 앞에 놓인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속담은 말하고 있다.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삶조차도 여전히 불투명한 수수께끼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되돌아가는 인생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에서 주인공은 노인으로 태어나 어린이로 늙어간다. 이것은 적어도 도가철학과 한가지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연약하게 태어나지만 단단하게 굳어져 죽고 …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라고 말했다. 영화는 우리가 어린이로 죽을 수도 있음을 상상하게 만들고, 노자는 어린이의 특징으로서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늙은 어린이와 결부된 부드러움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던 삶의 수수께끼를 마주한 인간의 대응양상 가운데 하나를 묘사하고 있다. “세계가 있다는 신비로움”과 이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내용으로 갖는 삶의 불투명성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솟아나는 수수께끼와 마주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노인이 어린아이로 죽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주어진 시간과 무관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우리가 세계로부터 태어나 세계로 되돌아감으로 정의하는 죽음의 메타포와도 정합적이라는 점에서 내면의 불안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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