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지난해 연말에 건강검진을 했다. 그 결과를 놓고 주치의와 상담했다. 주치의는 여러 건강지표 수치를 정상 분포도에 맞춰 그린 막대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이건 정상입니다’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문제는 정상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 게 미흡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의학·보건학에선 ‘정상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예컨대 수많은 사람의 혈압을 재면 중간 수치가 가장 많고, 높거나 낮아질수록 빈도가 줄어든다. 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면 가운데가 높고 양극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종(鐘) 모양의 ‘정규분포’를 이룬다.


정규분포는 1801년 독일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고안해 ‘가우스 분포’로도 불린다. 이른바 ‘정상혈압’이라고 하는 ‘120-80’은 사실 수많은 사람의 혈압을 잰 뒤 통계적으로 특정 범위(대개 95%) 안에 들어가는 수치일 뿐이다. 보건 통계학자들은 ‘혈압은 개인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며, 정상혈압은 참조용’이라며 도그마를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내 경우도 병원의 혈압측정기로는 ‘흰 가운 징후군’에 따라 늘 고혈압이다. 그러나 집에서 재는 혈압은 평균 110-68을 기록할 뿐만 아니라 내과에서 24시간 착용해서 재는 혈압측정기로도 예외 없이 정상혈압이다. 노년기에는 혈압이 젊은 사람에 비해 오르는 게 당연하다.


사회 조사에서 평균이나 이에 근접하면 ‘정상’으로, 특정 범위에서 벗어나면 ‘이상’이라고 단정하는 오류와 종종 마주친다. 이런 오류는 19~20세기 의사·과학자·사회학자들이 실시한 조사 연구에서 비롯했다.


학자들은 질문지를 이용해 인간의 ‘정상적인’ 신체는 물론 정신과 감정, 그리고 성생활까지 조사해 통계를 내고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다. ‘정상성’이란 19세기 벨기에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가 평균값에서 고안한 ‘만들어진 개념’인 셈이다.

「소풍」, 캔버스에 유채, 165×113cm, 2001.

평균이나 범위, 표준에 맞춰
범주화하고 그 범주에서 벗어난 것을
편견의 안경으로 쳐다보면서
차별하고 소외시키다 못해 박해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면 큰 문제다.

 

정상성을 찾으려는 작업이 ‘표준’에 대한 강박관념을 부른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남녀의 평균 신장은 남자 171.28cm 여자 158.17cm이다. 우리나라 50대 이상의 남자는 170cm 미만이고, 여자는 158cm 미만이다. 그러니까 평균 아래의 인구가 1천198만9천493명이나 된다. 총 4천799만761명 중에서 약 25%가 평균 아래의 비정상 키라는 의미다. 사람들의 키가 이렇게 다양한데 단지 평균값을 기준으로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균값을 바탕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무모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사례다.


최근에는 평균과 정상성 개념에 대한 오해와 집착이 연령과 젠더, 경제적 소득, 거주지역 및 디지털 격차 등 여러 문제와 결합하면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박해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 뇌에서는 이런 차이를 순간적으로 알아내는 일을 전두엽 피질(cortex)이 담당한다. 범위 밖에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상대방의 탐지 기능을 은폐하는 정교한 기술(stealth technology)이 작동되면서 소외와 차별이 이뤄진다. 나는 미국이나 유럽의 옷 가게에 있는 남성 재킷들이 모두 나의 팔길이보다 길어 맞는 옷을 찾지 못해 실망하고 우울해지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


비만을 자신과의 전투에서 패한 결과라면서 조롱의 대상이나 나태한 흔적으로 여기는 경우를 본다. 이런 시각에 편승한 다이어트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정상성’에 집착한 차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과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지 고려하지 않는다. 평균이나 범위, 표준에 맞춰 범주화하고 그 범주에서 벗어난 것을 편견의 안경으로 쳐다보면서 차별하고 소외시키다 못해 박해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면 큰 문제다. 이른바 ‘구별 짓기’의 원초적 토대는 바로 평균에 대한 믿음이다. 식민지 지배와 중세의 박해, 나와 남을 구별해 적대시하는 것들이 인종차별로 발전해 왔다.


정상성이란 개념은 지난 200년 동안 정신의학과 인종, 성생활과 젠더, 아동 교육과 행동심리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오류·편견·차별을 유발해 다양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해 왔다.


인구절벽, 국가소멸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정책의제와 대안을 이민청 설립과 출생 장려를 위한 예산투척만을 외칠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와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을 둘러싼 정상성에 대한 통계적 세계관의 전환을 먼저 시도해야 할 것이다. 숱한 사회 문제들은 정상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규범에만 매달린 데서 비롯된다는 인식을 새롭게 할 때다. 그래야 다양한 개인과 서로 다른 집단과의 소통과 공존의 틀에 따른 올바른 정책이 설계될 것이다.


통계적 세계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질적 사고가 필요하다. 다문화가정 출신의 초등학생에게 선생님이 ‘너 한국말 잘하는구나’라고 해서 학생이 차별당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부터 배운 아이인데도 외모의 정상성 편견이 작동한 선생님의 전두엽 피질이 문제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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