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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동화를 즐겨 읽는 어른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그림책 독자 중에는 어른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그림책이라는 명칭은 책의 양식에 대한 분류이지 독자 연령에 따른 구분이 아님에도 서점에 가보면 ‘어린이책’ 서가에만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이러한 분류에 대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본다. 그림책과 동화를 읽어야 하는 사람은 어린이뿐일까? 그렇지 않다. 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어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경우가 적지 않다.


1893년에 태어난 미국 작가 완다 가그의 그림책 중에 『투명 강아지의 마법』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는 미네소타주의 뉴얼름에서 일곱 형제의 맏이로 자랐다. 당시 뉴얼름에는 유럽 곳곳의 작은 나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먼저 온 이방인과 늦게 온 이방인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처지여서 이웃끼리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영어를 할 줄도 모르고 다른 인맥이라고는 없는 상태에서 묵묵히 일해서 먹고 살아야했던 이주 노동자들은 미국 사회 안에서 투명인간처럼 여겨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들의 삶은 완다 가그의 작품에서 ‘투명 강아지’라는 캐릭터로 나타난다. 다른 강아지들처럼 놀이와 산책을 좋아하고 뛰고 달리고 먹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강아지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투명 강아지는 완다 가그가 자라나면서 목격했던 이주 노동자들의 고립감을 상징하는 캐릭터였다. 이 책은 고향을 떠나온 어른들에게 큰 위로를 안겨주며 사랑을 받았다.


먼로 리프가 글을 쓰고 로버트 로슨이 그림을 그린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는 1936년 9월 출간돼 현재까지 무절판 기록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책의 걸작이다.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의 어느 투우 연습장이 배경이며 싸움을 싫어하고 꽃을 좋아하는 투우 송아지 페르디난드의 갈등을 다룬다. 평화를 사랑하는 송아지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은 내전 중이던 스페인은 물론, 거세게 불붙고 있던 세계 대전의 흐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는 국민들의 전투 의지를 꺾는다는 이유를 들어 곧바로 금서로 지정했으며 독일의 히틀러는 책을 모두 불태우라고 지시했다. 반면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방정부 예산으로 3만 부를 구입해 학교에 무상으로 배포했다. 한 권의 어린이책이 세계 전쟁사의 중심에 선 것이다.


반전 평화주의자들의 지지 속에 이 책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그 해 오스카상을 수상했고, 보석상 까르띠에는 페르디난드 브로치를 만들어 놀라운 매출을 올렸다. 1천500부로 시작했던 이 책의 초판본은 현재 이베이에서 권당 우리 돈 1천만 원이 넘는 고가에 판매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 어른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고민하는 보편적인 문제들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른 그림책 독자들을 위해서 쓴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이라는 책의 북 토크를 열었는데 여기 찾아온 독자들은 피폐한 경쟁에 지쳐 근원적인 삶의 전환을 모색하다가 결국 그림책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자라나는 사람들을 위한 응원이 어른에게도 힘이 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성장이라는 과제는 어른에게도 지속적으로 주어진다. 성취에 대한 압박이 아니라 참된 성장을 찾게 된다. 그런 가운데 어린이책의 정의는 더 넓어지고 있다. 어린이가 읽는 책이면서 어른이 되고 나면 더욱 새롭게 사랑하는 책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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