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시간을 걷다, 모던 서울

걷기가 새로운 문화적 풍경이 된 지금, 중·고교 현장에서도, 시민들 사이에서도 걷기 열풍이 일고 있다. ‘위클리’는 200호부터 월 1회,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한국인의 역사적 트라우마인 ‘식민-이산-분단 트라우마’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드러내는 기행 연재(20회)를 시작한다. 제국주의의 침탈이 시작되는 개항기부터 식민과 분단, 전쟁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들을 새롭게 기억화 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으로 변화해 온 서울의 공간을 통해 ‘역사의 현재성’을 성찰하고자 한다.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젊은 연구자들이 필자로 참여하는 이 연재는 방송대 출판문화원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서울이란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공간이 품은 수많은 시간의 층과 거기에 붙어
묻혀있는 사람들의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의미화할지,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어떤 현재를 살아가고 어떤 미래를 기획해야 할지,

일종의 사회적 기억의 테두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시간은 공간 속에 퇴적되고 지나간 시대의 흔적은 각 공간의 퇴적물 속에 하나의 층을 이루며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가시적으로, 또 직관적으로 그 겹겹이 쌓여 오늘에 이른 공간의 시간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공간을 역사적 기억을 통해 걸어본다는 것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겉모습 그 이상의 것을 읽고 느끼는 과정이어야 한다.

공간의 사회적 생산과 ‘거리’ 읽기
또한 그것은 특정 건물, 거리, 터와 같은 물리적인 어떤 실체가 지나온 시간을 읽는 것을 넘어선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공간이 지나온 시간에는 각 시대의 사회적 특징에 따른 차이가 층층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 있는 건물과 도로일지라도 사회가 변화하면 그 쓰임과 의미가 달라진다. 사회가 변화하면 공간도 변화하고,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공간을 따라가기도 하고 사회의 성격을 변화시키며 공간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것을 ‘공간의 사회적 생산’이라고 한다. 우리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이런 시선에서 읽고 걸을 것이다.
서울은 오랜 세월 한반도의 중심적인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무엇보다 서울은 국가권력이 자리한 수도로서 기능해 왔기 때문에 국가권력이 만들고 싶은 정체성과, 그것을 수용하거나 저항하고, 재전유하는 시민의 역량이 뒤섞이는 과정도 가장 민감하게 반영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의 특정 공간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지금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쓰고 보여줌으로써 어떤 ‘기억’을, 어떻게 전승하려고 하는지 간접적으로 진단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한반도의 중심 도시로서 역할을 해 온 서울은 시대를 거듭하며 그 모습을 달리해 왔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곳이 파괴됐던 서울은 전후 급속한 산업화를 지나면서 많은 외형적 변화를 겪었다. 그렇지만 과거에도 지금도 서울의 옛 중심거리는 여전히 하나의 핵심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옛 중심부 종로에는 서울이 어떤 세월을 축적하고 있는 공간인가를 직관적으로 보기에 좋은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2018년 9월에 개관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과 종로, 그 중층의 의미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종각역 인근에 있다. 종각역 3-1번 출구에 서서 대로변을 등지고 서면 종로타워와 하나은행 빌딩을 지나 조계사 쪽으로 이어지는 우정국로가 보인다. 그리고 조계사 앞 사거리까지 걸어 하나은행 빌딩의 모퉁이에 다다르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이라는 표지석이 나타난다. 많은 전시관과 달리 이곳은 별도의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거대한 빌딩 안에 함께 위치한 도심 속의 ‘유적’ 전시관이다. 높은 빌딩의 어느 한 출입구 지하로 내려가면서 만나는 전시관의 첫 느낌은 제법 이색적이다. 유리문으로 된 출입문을 열면 곧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전체 실내 공간에 드러나 펼쳐져 있는, 돌과 흙으로 이뤄진 옛터의 모습들이다. 
전시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곳 공평동 일대는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장소였다. 현재 종로 1가·2가, 견지동, 공평동, 인사동, 청진동 일대가 모두 공평동 일대에 해당했다. 조선시대 한양 행정구역으로 치면 이곳은 중부(中部) 견평방(堅平坊)에 속하는 곳이다. 견평방은 당시 최고의 번화가였는데, 서쪽으로는 궁궐과 가까워 왕족의 사가가 다수 위치하기도 했고, 주요 관청이 소재한 육조거리와도 가까운 곳이었다. 또한 사법기관인 의금부, 의료와 약재를 관장하던 전의감의 관청은 견평방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평민과 왕족은 물론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지며 살아왔던 흔적을 간직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공평1·2·4지구에 대한 도시환경 정비사업이 진행되던 2015년,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울의 옛 골목길과 건물터가 거의 온전하게 발굴됐다. 그것을 계기로 ‘서울’ 아래 잠겨있던 ‘한양’과 ‘경성’이 제 얼굴을 드러내는 기회를 잡았다. 서울시는 ‘역사도시’ 서울의 도시유적과 기억을 바로 그 자리에 보존하는 방식을 도입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도심정비사업 과정에서 발굴되는 매장문화재를 이처럼 최대한 ‘원 위치 전면 보존’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은 한국에서는 공평동이 첫 사례였다.
공평동 사례는 이후 진행될 도심정비사업에서 매장문화재를 고려한 건축설계가 적극 도입되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세워진 도심정비사업 원칙이 바로 공평동룰이다

전시관 안에는 2년여에 걸쳐 발굴된 108개 동의 건물지·중로·골목길 등의 유구 중에서도 상태가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16~17세기 Ⅳ문화층 유구를 옮겨 복원했다. 전동 큰 집, 골목길 ㅁ자집, 이문안길 작은 집 등 3개의 건물지가 핵심 콘텐츠로 채택돼 축소모형, VR체험, 출토된 유구 위에 1:1 복원 등 다양한 전시기법이 적용되면서 16~17세기 한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전시관에서 조선시대 한양 속의 공평동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종로는 3·1운동과 그 이후 확장되는 사회운동의 중심지기도 했다.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은 재현된 한양 시절 유구의 스크린 위에 애니메이션, 사진 자료 등을 결합한 영상으로 재생되고 있다. 옛 한양 터를 걷는 듯했던 관람자는 영상의 등장과 함께 같은 터전에서 다른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낀다. 한양은 경성이 되고, 견평방이 공평동이 되면서 봉건사회가 근대적 변화와 더불어 식민의 삶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을 텍스트화된 해설 패널이 아니라 복원된 옛터에서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이처럼 공간이 퇴적하고 있는 시간의 층, ‘역사도시 서울’의 문화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땅에 묻힌 유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건물의 자리를 대신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을 통해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1931년 박흥식이 설립한 화신백화점은 사라지고 없지만, 사진의 전환 기법을 적용한 전시물을 통해서 우리의 눈앞에 존재한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이러한 전시는 하나의 공간이 여러 겹의 시대 층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각 층은 특정 시대, 특정 조건의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기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것이 시대가 지나 완전히 사라지거나 묻혀버린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서 중층적인 겹을 형성하며 현재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리고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려는 새로운 시선에 따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회적 기억의 테두리에 관한 질문
그런 의미에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읽고, 걷기 이전에 이러한 질문을 환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걷는 서울은 어떤 층을 빼내어 드러내고 있는지, 또 우리는 축적된 많은 그 시간의 층 중에서, 거기에 스며들어 있는 수많은 사건과 기억 중에서도 어떤 것을 불러내어 지금 여기에서 다시 마주하도록 할 것인지를 말이다.
이것은 길을 걷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짚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장소, 같은 경로를 걷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기억의 서사를 통해서 걸어가는가에 따라 지금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와닿게 된다. 그것은 지금 이곳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라는 현재에서 공간이 품고 있는 과거의 어떤 기억들을 부르며 대화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것은 하나의 ‘기억의 정치’이기도 하다. 공간이 품은 수많은 시간의 층과 거기에 붙어 묻혀있는 사람들의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의미화할지,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우리가 어떤 현재를 살아가고 어떤 미래를 기획해야 할지, 일종의 사회적 기억의 테두리를 만드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여정은 우선 그 기억의 테두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공간인 기념관과 박물관에서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기억의 정치, 그리고 거기에 대항하는 기억투쟁의 과정이 기념관과 박물관이라는 곳에만 국한돼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곳곳, 사람들의 일상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모든 장소에서 그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걷기는 기념관과 박물관을 넘어 서울의 여러 공간에서 다채롭게 이어질 것이다.

 

 

10회까지 글 싣는 차례

 

 모던 서울, 걷기를 시작하며

기억의 전승, 공간의 정치서울의 기념관·박물관

식민도시 경성의 하루―「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거리

일본 제국의 자본주의와 식민화남산 혼마치와 용산·영등포 공업기지

저항과 좌절, 침묵과 웅변이 공존하는 문인들윤동주와 정지용

언론 독립의 꿈, 민주화투쟁의 역사서울신문사에 한겨레까지

3·1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북촌 여행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손병희 집

식민지 지식인의 삶과 사랑심우장에서 길상사로

소외된 노동과 노동자, 그리고 그들의 해방투쟁낙산공원 밑에서 라 카페 갤러리까지

한국적인 것의 뿌리와 아름다움간송미술관과 방우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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