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을 회고해 보면, 방송대는 나에게 새로운 의욕과 시각 및 목적을 부여함으로써 교육활동을 촉진시켰다. 학문의 기초를 다져나감에 따라 또 다른 꿈을 꾸게 했고, 자기인식과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체제 속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웠다. 또한, 사회분화의 현장에서 발현되는 현상의 변인을 분석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기할 수 있었다. 방송대에서 장착된 인내심과 창의성은 성공한 나의 사업에 있어 리더이며 스승이다.
20대 시절, 나는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전산실에 근무했다. 구조적 답답함과 틀에 박힌 대기업문화를 뒤로 하고 중소기업 IT회사로 이직했으나 얼마 후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게 돼 창업이라는 기회를 만났다.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알아챈다고 했던가!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귀담아듣고 실천으로 응답하는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운영방침’을 기조로 1993년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회사는 울산의 대표 IT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이런 성장의 밑바탕에는 바로 이 기조가 깔려 있었다.
28세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기업체의 부도어음을 법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가장 컸다. 이것이 1993년 방송대 법학과 2학년에 편입해 공부하게 된 계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방송대를 연결해 준 고마운 역할을 부도어음이 해준 셈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공부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성실함과 진정성 있는 경영으로 거래처의 확장과 밀려오는 발주로 사업은 날로 번창했으나 야독(夜讀)마저 어렵게 했다. 13년! 나는 그렇게 법학을 공부했다. 어렵사리 한 졸업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었고, 동문들을 존경과 경의로 대할 수 있게 했다. 천천히 그리고 인내하며 성취한 학업은 내면의 확장을 가져와 사회생활의 원동력이 됐다.
나는 학문적 배경지식을 통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방송대 울산법률봉사단은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 및 제도적 차별의 장벽에서 좌절하는 시민들에게 법적 문제로부터 겪는 상실을 완화 시켜주는 일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내 인생을 변화와 자극으로 성장을 촉진시켜 개인을 넘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게 해준 선배님들과 우리 방송대에 보답하는 일임을 안다.
몇 년 동안 울산총동문회는 분열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선후배님들의 갈망에도 쉬이 좁혀지지 않는 갈등 속에서 총동문회 회장을 맡게 됐는데, 공약으로 ‘하나 된 울산’을 약속했다. 그렇지만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까지 화합을 이루려 했지만, 벽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2016년 이후 6년이란 시간을 어렵게 보내야 했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23년 7월 22일 통합선거를 통해 하나의 울산총동문회가 탄생했다. 총동문회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제일 많은 동문들이 투표에 참여하면서 그간의 고생을 잊게 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울산총동문회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한 응집력을 갖게 됐다. 동문 한 분 한
분의 절절한 마음속의 숨은 뜻을 잘 승화시켜 나아갈 것이다.
‘대통합, 하나로! 미래로! 울산총동문회’의 슬로건으로 오늘도 총동문회를 위해 임원 및 동문들이 한마음으로 달려가고 있음에 깊이 감사한 마음이다. 재학생과 동문의 협력적 네트워크는 타 학교와의 차별을 가져와 틈새지원을 구축함으로써 평생교육의 요람 방송대의 위상에 걸맞은 대학으로 거듭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