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새해 벽두부터 혁명적인 과학기술의 진보를 알리는 뉴스가 나왔다.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뇌신경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Neuralink)가 인간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임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휴대전화, 컴퓨터, 그 밖의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술의 최종 단계는 스티븐 호킹(루게릭병을 앓은 물리학자)이 타자를 빨리 치는 타이피스트나 경매인보다 더 빠르게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임상실험이 성공하면 인류가 정신세계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진전을 보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뇌에 대해 잘 모른다.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나 감정이 아니다. 상상도 아니고 창의성이나 공감도 아니다. 더욱이 뇌는 행복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이다. 뇌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즉 생체 적응(allostasis)을 해내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이토록 뜻밖의 뇌 과학』, 더퀘스트, 2021).


우리는 뭔가를 생각하고 행복이나 분노, 경외심 같은 감정을 느끼거나 심지어 모욕적인 말을 참아내는 일들 하나하나를 경험할 때, 몸의 신진대사 예산에 자원을 넣거나 뺀다. 비유컨대 ‘신체 예산’을 지출하는 것이다.

뭉크 그림의 화두이기도 했던 멜랑콜리. 오늘날 뇌과학은 멜랑콜리와 연결되는 우울이 뇌의 생존 노력의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오늘 내가 조금 우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생존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더 배우고 싶은 의욕’을 불태우면 어떨까.
신학기가 시작됐다.
배우고 싶은 의욕은 뇌에 진수성찬과도 같다.
신체 예산을 잘 관리하고 조절해
학습에 큰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습 동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는 법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신체 예산’이란 신체 안팎의 조건들을 예측하면서 생존을 위해 신체를 제어하는 역할, 곧 생체 적응을 해내는 것을 말한다. 동물계에서도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은 ‘말’로 서로를 조절한다. 고난에 처했을 때 친구에게서 격려의 말 한마디를 들으면 위로를 얻는다. 소셜 미디어에서 위협과 욕설의 글을 받고 나면 뇌의 시상하부 뉴런이 호르몬을 분비해 이를 혈류로 보내 신체 예산에서 귀중한 자원들을 탕진하게 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은 우리가 신체 예산을 서로 나눠 쓰고 서로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은 독특하게도 ‘말’이라는 도구로 서로의 신체 예산을 조절한다. 의사소통은 신체 예산의 지출 항목인 셈이다. 소셜 미디어의 정화는 불필요한 신체 예산을 줄이는 첩경이 된다.


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생존이기 때문에 불안, 외로움, 우울 등이 발생한다. 외로움은 집단에서 배제됐을 때 생존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신체 적응이다. 우울은 일종의 에너지 절약 모드이자 뿌리 깊은 방어기제인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생존확률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게 바로 우울증과 관련이 깊다.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마크 맨슨이 한국 사회의 우울증과 관련해 유교와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대화한 결과 한국인의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 거라고 지적했다. 유교주의에서 수치심과 남을 판단하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의 최악의 단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심하다. 한국엔 완벽주의자가 많다. 만점을 받지 못하면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우울증과 연결된 가능성을 높인다. 완벽주의를 지향할수록 항상 실패의 느낌을 지니고 산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한국 젊은이들에게 이 사고방식을 강요했다.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개인보다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가 작동한다. 우울함을 느껴 일을 멈추면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게으른 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고 자책한다. 직장과 가족으로부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사회나 가족 안에서 유교적 가치로 끊임없이 가혹한 평가를 받음에 따라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체 사회가 변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갈망이 큰 게 우리 사회다.


자연은 우울하지 않다. 때가 되면 변하는 나무도 잎을 냈다가도 떨굴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우울증이 없다. 우울증은 스스로 변하려는 게 없을 때 나타난다.


윈스턴 처칠은 자신을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우울증을 ‘블랙독(Black dog)’이라 불렀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도 우울증 환자였지만 우울증을 이겨내고 역사에 우뚝 섰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우울증에 걸리면 다음 네 가지를 묻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이 언제인가?


신학기를 앞두고 있다. 배우고 싶은 의욕은 뇌에 진수성찬과도 같다. 인간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는 시간 예산(time budget)에 못지않게 신체 예산도 중요하다. 신체 예산을 잘 관리하고 조절해 학습에 큰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습 동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는 법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학기 초에 다진 배우고자 하는 학습 욕구가 여러분 뇌의 성장에 진수성찬이 되기를 바란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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