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 될 ‘험한 것’이 나왔다!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가 개봉 11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3월 7일 오전 기준 누적 관객수 660만6,400명) 개봉 3일째 100만, 4일째 200만, 7일째 300만, 9일째 400만에, 10일째 500만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모으며, 각종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이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영화「파묘」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최민식 배우는 누울 자리를 봐달라는 부탁을 들으면 일단 단가부터 계산하지만, 자연과 땅에 대한 철학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40년 경력의 풍수사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올해로 데뷔 42주년을 맞는 최민식 배우는 1982년 연극「우리 읍내」로 데뷔했다. 1989년 KBS 드라마「야망의 세월」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알렸고,「서울의 달」(1994)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충무로로 영역을 확장해「쉬리」,「올드보이」,「악마를 보았다」,「범죄와의 전쟁」,「신세계」,「명량」등의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장재현 감독은 “최민식 배우의 얼굴로 담는 순간 모든 것이 진짜가 되는 묘한 마법이 있다”라며 깊은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최민식 배우를 만나 영화「파묘」와 그의 연기 인생에 대해 들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상덕’은 어디가 흉지이고 길지인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터의 모양새, 형태, 질감을 통해 평생 깊이 연구한 사람입니다

산새 한 마리든, 나무 한 그루든, 풀 한 포기든 깊게 바라보는 태도와 느낌이

상덕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줄기가 되지 않을까,

그거 하나만큼은 잘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파묘」 시나리오 첫인상은 어땠나요
대본을 받고 장재현 감독과 술자리를 했어요. 그때 장 감독이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어요. ‘땅의 트라우마’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봤는데, 멋지더라고요. 무신론자라고 하더라도 인간과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같아요. 우리가 나약해질 때 붙잡는 건 신이잖아요? 종교라는 것이 자칫 잘못 건드리면 위험해지거나 고루해질 수 있는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부분인데, 장 감독이 그런 부분에서 열려 있더라고요. 영화적으로 실력도 갖추고 있고요. 아, 이거 너무 띄워주나?(웃음) 그런 게 좋았습니다.

 

오컬트라는 장르나 풍수지리, 무속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셨나요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졌어요. 오컬트다 아니다가 아니라, 무속이나 풍수지리는 어릴 때부터 늘 옆에 있던 거잖아요. 제가 열 살 때 폐결핵으로 죽을 뻔했거든요. 의사도 포기했는데, 어머니가 절에 가셔서 기도했대요. 희한하게 나았습니다. 그런 신비로운 경험을 몸으로 한 거죠. 그런데 저는 그걸 신에 대한 감사라기보다 어머님의 정성으로 느껴요. 손주가 군대 가면 할머니가 매일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우리 손주 제대 날까지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이 왜 미신인가요? 천지신명에게 비나요? 할머니의 마음이 종교인 거죠.

 

살면서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죠. 지금도 이사할 때 방향을 본다거나, 가구를 배치할 때도 현관 정면에 거울을 두지 않는다거나 하는 풍수가 남아 있어요. 미신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재밌잖아요? 하면 좋다는데.(웃음) 물론 거기 얽매여서 전 재산을 날리면 문제가 되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즐기면서 살면 좋을 거 같아요.

어찌 보면 「파묘」는 가진 자들 사이에만 전승되는 장례문화인 것 같아요. 요즘은 다들 ‘화장’을 하니까요.
사견입니다만, 돌아가시고 어떻게 모시는가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좋은 묫자리를 찾는 건 이승에 남은 후손들이 덕 좀 보고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나쁜 놈들인 거죠.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도 않고는, 돌아가시니 좋은 땅 찾고, 응? 얄밉잖아요? 아, 내가 왜 이렇게 흥분하지.(웃음) 저 역시 부모님 모두 화장해서 모셨어요. 시대가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변하는 거 같아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어떤 마음으로 모시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많은 역할을 하셨지만, 풍수사 역은 처음이십니다. 장재현 감독은 영화를 위해 무당, 풍수사를 실제 만나고 장례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던데, 최민식 배우도 연기에 참고하기 위해 풍수사를 만났나요
「파묘」 촬영하면서는 아니고, 예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고깃집에서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자신을 지관이라고 소개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집이 여긴데 어떻습니까’하고 물어봤죠.(웃음). 느낌이 특별한 건 없었어요. 두루마리 입고 다니는 도사도 아니고 점퍼 입은 평범한 아저씨더라고요.

풍수사 캐릭터 구축은 어떻게 하셨어요
‘상덕’은 평생 자연을 보면서 산 사람입니다. 어디가 흉지이고 길지인지, 인간의 길흉화복을 터의 모양새, 형태, 질감을 통해 평생 연구한 사람인 거죠. 산에 올라도 일반 등산객이 ‘야호’ 하듯 산을 바라보진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흙냄새도 맡고 흙 맛도 보는 거죠. 산새 한 마리든, 나무 한 그루든, 풀 한 포기든 깊게 바라보는 태도와 느낌이 상덕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줄기가 되지 않을까, 그거 하나만큼은 잘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김고은 배우가 다 했어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김고은 배우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특히 대살굿 장면은 꽤 오랫동안 회자할 거 같습니다
아, 김고은은 「파묘」의 손흥민입니다. 이도현은 김민재고. 저는 벤치에서 물, 게토레이 입에 넣어주는 사람이고요. 유해진이랑은 일제 강점기에 봉오동에서 한번 싸운 경험도 있고요.(웃음) 사실 배우들이 이미지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요. 예쁘다, 잘생겼다는 그런 아마추어적인 틀에요. 특히 여배우가 무속인 역할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김고은 배우는 스스럼없이 내려놓고 뛰어들어 도전한 거죠. 선배 입장에서는 너무 대견하고 칭찬해주고 싶어요. 그런 자세로 대담하게 자기를 열어놓으면, 앞으로의 김고은 배우가 더 기대됩니다. 김고은 배우나 이도현 배우는 정말 예전부터 함께 작업한 친구들처럼 느껴졌어요. 아, 프로구나. 리딩 때부터 우리가 어벤져스가 아니라 ‘묘벤져스’를 표현하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구나 하는 믿음이 들었습니다.(웃음)

‘김고은이 「파묘」의 손흥민’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이 영화에서 손흥민이 되고 싶은 마음, 욕심은 없었나요
배우는 경쟁하는 직업이 아니예요. 그러면 영화가 망합니다. 「파묘」를 건축으로 치면 저는 색과 크기가 일정한 벽돌이에요. 제 벽돌 크기가 크거나 튀어나오면 안 돼요. 제가 대살굿에서 김고은과 같이 춤추면 안 되죠. 김고은이 더 돋보여야 했어요. 「파묘」의 하이라이트가 대살굿 씬인데, 관객에게 볼거리도 제공하지만, 고은이가 제대로 즐겨야죠. 현장에서 유해진 배우랑 ‘고은이 저러다 어떻게 되는 거 아니야?’라고 이야기 나눌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물론 손흥민처럼 할 수 있죠. 그런데 드리블은 체력이 안 돼서 못하고요, 지단처럼 볼 배급은 할 수 있습니다. 지단, 아세요?(웃음)

 

‘험한 것’이 압도적인 모습으로 처음 구현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저 같으면 안 싸워요. 바로 도망가죠.(웃음) 영화 초반의 할아버지 귀신은 ‘아사무사’하게 나와요. 그런데 ‘험한 것’은 진짜 확 나타나니까 야구로 치면 직구라고 할까요? 눈에 보이니까 연기하기는 더 쉬웠죠. 그런데 ‘험한 것’이 정말 고생 많았어요. 분장을 6~7시간 해야 하고, 손도 분장 하니 밥도 잘 못 먹어요. 그래도 군소리 하나 없이 하더라고요. 바나나우유 하나 까서 빨대 꽂아 주면서 ‘미안하다, 내가 너를 죽여야 한다’라고 말해줬죠.(웃음)

장 감독 말로는 촬영장에서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연기를 하셨다고요
아이고, 뭐 별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다 했대요? 크고 작은 부상은 누구나 당해요. 특히 이런 영화에서 ‘험한 것’과 ‘완타치’ 아니 ‘맞짱’을 뜨는데 갈빗대 정도야.(웃음) 제가 좀 ‘오바’하다가 첫 테이크에서 크게 나자빠졌어요. 촬영 마치고 병원에 갔더니 ‘험한 것’이 쑤신 자리 바로 뒤 갈비뼈에 금이 갔더라고요. 진짜 정령이 왔나 했습니다.(웃음)

 

비현실적인 상황에서도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연기를 하는 최민식 배우 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영업 비밀인데.(웃음) 아니요. 그런 노하우는 없어요. 허구의 캐릭터를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감독과 골백번 캐릭터에 대해 대화하더라도 결국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제가 그 인물이 돼야 하는 겁니다. 절벽에 떠밀려 서 있는 듯한 느낌? 어떻게든 표현해내야 한다는 절박함? 배우가 제일 외로워지는 순간인 거죠.

 

노하우는 없어요. 감독과 대화도 많이 하고, 캐릭터 말투도 상상해야죠. 자꾸 그 무형의 인물에 다가가는 겁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밀착이 되는 거고, 그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중요해요. 슛이 들어가면 더 이상 좌고우면이 없습니다. 일단 캐릭터에 올라타면 그때부터 즐기는 거죠.

연극을 기준으로 하면 연기 인생이 40년이 넘었어요. 굵직한 작품도 많이 했고요. 돌아보면 어떤 기분인가요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요.(웃음). 40년이다 뭐다 제가 그걸 세면 안 돼요. 그건 자꾸 뒤로 주저앉으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 죽기 전에나 한번 되돌아보는 거죠. 저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작업이 많아요. 의욕도 더 생기고요. 제 인생도 작품도 한정돼 있어요. 앞으로 내가 겪어봐야 할 영화적 세상은, 지금까지 한 작품의 빙산의 일각도 안 돼요. 이걸 못해보고 죽는 게 얼마나 아쉬워요?

 

내가 왕년에 이랬지 하며 노인네 흉내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배우라든가 창작하는 사람이 가질 태도가 아니라고 봐요. 미술이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받는 예술가들을 보면 절대 그런 게 없습니다. 어, 청년이야, 미친 듯이. 얼마 전에 「고도를 기다리며」 보고 왔어요. 신구, 박근형 선생님 연기 보고 눈물이 났어요. 그분들도 아직 하시는데, 저는 핏덩이죠 뭐.(웃음)

 

앞으로 어떤 역할에 도전해보고 싶으세요?
일단 멜로를 못해봐서 하고 싶습니다. 수십만 갈래 인간의 감정을 어찌 다 표현하겠어요? 정형화된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있을까? 멜로라면 사랑의 감정일 텐데. 과연 사랑이 뭘까?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한다는 거 자체가 진짜 사랑이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겠나요? 달달한 라테 같은 것이 사랑인가? 선남선녀의 사랑만이 사랑인가? 사랑의 형태란 무엇일까? 이 사람, 저 사람이 공감하고 교감하는 냄새와 모양이 사랑이란 형태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어찌 보면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겠죠. 그래서 하고 싶은 역할도 많고요.

 

「파이란」으로 장쯔이 배우와 멜로 하셨잖아요
아이, 얼굴도 못 봤잖아요. 그런 게 멜로면 다시 안 해.(웃음) 얼굴도 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멜로죠. 시나리오가 안 들어와요. 다들 뭐 하고 있는 건지.(웃음)

 

▶관련기사  [장재현 감독 인터뷰] “우리 땅이 가진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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