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신화에서 신화로

서사시「장가르」는 구비전승되는 몽골의 영웅서사시이면서 몽골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녹여낸 세계적인 작품이다. 서구 학계에서는 장가르를 ‘초원의 일리아드’라 칭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이 서사시는 장가르의 혈통과 신이한 출생, 유년 시절의 시련과 극복, 혼인, 그리고 장가르의 다채로운 영웅적 행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서사시를 연창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구비음유시인을 ‘장가르치’라 한다.
장가르 서사시는 알타이 예찬시와 장가르의 혈통에 관한 개략적 소개 혹은 요약으로 된 서시로 시작하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오랜 멀고도 먼 옛날에, 불보(佛寶)가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여러 신들이 굴기한 시절에, 인간 세상에 한 영웅이 태어났네.

타이줄 한(Tahi Zul khan; 塔黑勒珠拉汗)의 후예,

탄삭 붐바 한(Tansag Bumba khan; 唐蘇克本巴汗)의 적손,

우이젠 알다르 한(Uizen Aldar khan; 烏仲阿拉德汗)의 아들,

일대(一代, 영원한) 고아 장가르. 그가 두 살이 되던 해에 

흉악하고 포악한 망고사(古斯: 魔王)가 그의 앞마당까지 쳐들어와 차지하곤

이에 고아로 만들어 버렸네.

이와 더불어 장가르의 출생도 신이하다. 둥근 물체로 등장해 말하고, 어떤 도구로도 갈라지지 않았으나 숙부가 하늘로부터 받은 보석으로 가르자 아이가 나왔는데, 이가 바로 장가르다. 고구려의 주몽과도 흡사한데, 이는 북방 유목민족 영웅의 출생담 유형으로 보인다.

몽골 민족들은 서사시「장가르」를 통해 이상을 드러냈다.
영웅 장가르뿐만 아니라 홍고르, 알탄 쩨에즈,
미양 등과 같은 또 다른 영웅들의 출현과
이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예케 몽골 우루스’의 찬란했던 과거사의 한 장면,
곧 같은 일에 의해 동지 관계로 맺어진 충신들과
칭기스한의 막강한 결속력을 회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발휘한 영웅의 비범함
서시에서는 장가르가 두 살이 됐을 때, 마왕 망고사의 침범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됐다고 함으로써 영웅의 시련과 고난이 시작되는 설정을 했다. 세 살에는 망고사(Guljin이라는 괴물)를, 네 살에는 거대한 마왕 단드(Dand)를, 다섯 살에는 다섯 마왕 망고사(Tahi의 다섯 마리 괴물)의 우두머리를 사로잡아 수하로 삼고, 여섯 살이 돼서는 알탄 쩨에즈(Altan Ceedz)를 부하 장수로 삼은 내력을 노래해 어린 시절부터 발휘한 영웅의 비범함을 극대화하는 데 큰 비중을 뒀다.
한편으로 버흐 뭉긍 쉬그셔레그(Buh Mungun Shigshreg)에 의해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기는 시련을 덧붙여 영웅의 고난과 시련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도 마련함으로써 영웅서사시의 조건을 갖출 수 있게 했다. 타히의 괴물들을 제압하고 난 직후에 장가르가 버흐 뭉긍 쉬그셔레그에 패배하여 잡힌 바가 됐다고 하여 문학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설정을 통해 영웅서사시의 묘미를 살려 나갔다. 여섯 살이 되어 알탄 쩨에즈를 굴복시켜 스스로 뭇 영웅들의 우두머리로 인정받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곱 살이 되면서 일곱 나라(敵國)를 항복시키게 되니 그의 영웅적 명성이 온 세상에 전해졌다고 했다. 영웅적 과업을 일차로 완수한 후, 장가르는 해가 뜨는 쪽(東方)과 정남 쪽(正午) 사이에 있는 놈 투그스 한(Nom Tugs khan)의 16세가 된 딸(阿盖沙布德拉 公主)과 혼인해 사방 마흔 개의 나라를 항복시켰으며, 이후 장가르 자신은 늙지 않으면서 항상 스물다섯 살의 나이로 영원히 붐바(Bumba)국에 거하게 됐다고 했다.
서사시에서는 장가르를 비롯한 여러 영웅을 찬송하며 그들의 영원한, 그리고 행복한 삶을 노래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영원한 신의 나라, 장가르의 나라 붐바국은 죽음 없이 영원하고, 겨울 없이 여름만 존재하고, 붐바 산과 붐바 바다가 있는 신비의 나라다. 붐바 바다의 기슭에는 황금 알록 궁전이 있다고 한다. 이 대목은「장가르」각 장을 시작하는 일종의 공식적 단락 가운데 하나로 이해된다.

수하 장수들 활약과 그 역할
장가르의 나라가 특별하다는 사진 출처=위키피디아사실을 노래하고, 장가르의 위대한 혈통이 자랑스럽다고 하며, 홍고르, 미양과 같은 그의 뛰어난 수하 영웅들이 장가르를 보필하고 있다는 설정은 서사시의 정황을 예사롭지 않게 이끌어 가는 구실을 한다. 붐바국의 영원한 삶을 누리면서도 장가르의 시련과 고난은 계속돼 영웅서사시의 진폭을 느끼게 하지만, 그의 수하 장수들의 영웅적 활약은 장가르의 영웅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장가르와 장가르를 추앙하는 전승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두 예외 없이 자신들의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시련과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지 않다. 절대 군주인 장가르도 시련과 고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이를 감당하고 극복해야만 했다고 함으로써, 예사 사람들의 삶의 질곡이 당연한 일이고 또한 응당 넘어서야 하는 것임을 서사시의 전승을 통해 확정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야 현재의 고난이 미래의 소망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마련된다.
이미 붐바국에서 영원히 스물다섯 살의 젊음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장가르에게 있어 이전의 영웅적 행적과 과업, 그리고 영웅으로 단련되기 위한 시련과 고난이 실재했다고 하는 전제만으로 그 영웅성은 훼손되지 않고 영속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홍고르나 알탄 쩨에즈 등을 비롯한 그의 수하 장수들의 영웅적 행적과 승리에도 풍성하게 전승된다.
장가르의 일시적 후퇴와 패배가 있어야 장가르에게 다가설 수 있는 원조자의 범위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영웅 홀로 위대한 능력을 한껏 과시하면서 성취한 과업이 실로 대단하다고 자랑하지 않고, 주위의 영웅들이 함께 서로 도와 위대한 과업을 성취할 수 있다는 설정이야말로 문제적 영웅이 고귀한 고대 영웅의 자질과 중세적 군주의 자질을 겸비했다고 하는 사실을 확정해 준다.

장가르한이 막나이한을 물리치고 홍고르를 찾아 나섰다. 길을 가다가 만난 영감에게 물어 보았더니 저기 오드강 차간 버(Boo)의 집이 있는데, 그에게 물어보시면 직접 본 것처럼 말을 해 줄 것이라 했다. 한 번은 배고픈 사자의 뱃속에 있다 하고, 한 번은 배고픈 허텅(새 이름) 뱃속에 있다고 하고 또 한 번은 바닷가에 누워 있는 하르 초르하이(생선 이름) 뱃속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였다. 바닷가에 가보니 정말로 커다란 하르 초르하이가 누워 있었다. 그 뱃속에 남아있는 15개의 홍고르의 뼈를 모아 놓고는 바담의 세 잎사귀를 가슴 위치에 놓고 기다렸다. 참으로 오랫동안 잠을 잤다고 하면서 홍고르가 일어났다.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나 죽은 자를 살려내는 능력은 특별하게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므로 전쟁영웅이라고 누구나 지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런 능력을 인정받은 샤먼의 역할을 장가르가 특별하게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새나 물고기, 사자의 뱃속에 삼켜진 홍고르는 몽골 민족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실제,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생명에 대한 실제적 위협이 심각할수록 치명적 상처를 치유하고 죽음을 넘어서려고 하는 의지가 서사시의 영웅을 통해 구체화하기 마련이다. 동물의 뱃속에 삼켜진 영웅은 몽골 민족 자신이며, 장가르에 의해 치유되고 다시 생명을 이어 나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몽골 민족의 절실한 소망인 셈이다.

전사의 자질과 서사시 연창자의 자질
장가르와 그를 따르는 영웅들이 전사(戰士)의 자질만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또한 서사시 연창자로서의 자질도 함께 갖춘 뛰어난 존재들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홍고르의 행적에서 이 점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아버지가 망항 벅드의 손자 말 차간이란 사나이가 한(汗)의 공주를 청혼해 큰 잔치를 연다고 했다. (중략) 다음날도 궁에 갔다가 전날에 만난 아가씨와 다시 마주쳤는데, 그녀는 홍고르를 궁 안으로 들였다. 홍고르는 공주를 만나고 돌아왔다. 며칠 뒤 공주의 심부름을 하던 아가씨와 다시 마주쳤더니 궁정에서 ‘장가르’를 읊을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그는 궁으로 가 ‘장가르’를 읊고 천 마리의 양을 상으로 탔다.

「장가르」서사시에서 보이듯 ‘장가르’를 연창해서 상급을 받았다고 하는 설정은 구비전승의 과정에서 생긴 변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가르 서사시를 아무나 연창할 수 없다는 점, 곧 서사시 내에서 서사시를 연창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가 홍고르 등 장가르의 영웅들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장가르의 영웅성이 서사시 연창의 능력에까지 이어져 있는 양상은 ‘장가르치’와 같은 연창자 역시 예사 사람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하는 점을 스스로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인 셈이다.
서사시「장가르」에서 장가르가 굴복시킨 여러 망구스들을 처단하지 않고 살려두고, 그 나라가 장가르의 나라임을 알리는 도장을 찍고 세를 받아 자신의 아래에 뒀다고 자랑스럽게 노래하는 대목은 역사적으로 ‘예케 몽골 울루스(Yeke Mongghol Ulus)’ 곧 ‘대몽골제국’을 건설해 나가던 상황과 대단히 근사하다. 그들의 연합은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구비문학회 연구이사 등을 지냈으며,『창조신화의 세계』『한국-동유럽 구비문학 비교연구』『신화의 세계』등을 썼다. 비교신화 연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영웅에 의해 고원이 통합·조직됨으로써 끊이지 않았던 목초지 다툼이나 무력투쟁을 끝낸 유목민들이 하나로 통합될 때 그것이 주변 지역에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다. 몽골 민족들은 서사시를 통하여 그 이상을 드러냈다.

영웅 장가르뿐만 아니라 홍고르, 알탄 쩨에즈, 미양 등과 같은 또 다른 영웅들의 출현과 이들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는, ‘예케 몽골 우루스’의 찬란했던 과거사의 한 장면, 곧 같은 일에 의해 동지 관계로 맺어진 충신들과 칭기스 한의 막강한 결속력을 회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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