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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사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으면 
내가 속기법인을 만들어 
속기사를 최고로 대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연예인을 닮은 화려한 외모에 활짝 웃는 얼굴,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38세의 방지원 대표. 겉으로 보기엔 귀하게 자라 고생도 안 했을 것 같지만, 15세 때부터 혼자의 힘으로 용돈을 벌면서 삶의 무수한 질곡을 겪어낸 내공의 소유자다. 아침 6시면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하는 성실함을 갖춘 그녀는 중3 딸을 둔 워킹맘인 동시에 월 매출 3천만 원을 달성한 속기법인 대표다. 법조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15년 홀로 속기 사무실을 차렸을 때는 1평 크기였지만 지금은 서초동 한복판 35평으로 넓어졌다. 관리하는 고객만 500명에 달한다. 소송 등을 위해 녹음한 파일의 스크립트가 필요한 변호사들이 주요 고객이다. 2013년 속기사가 된 뒤 속기협회에서 일하다 2015년 속기법인을 만든 뒤 8년 만인 지난해 월매출 3천만 원을 달성했다. 월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서초동에 사무실을 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또 이뤄낸 그녀를 만나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 방송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아직 졸업하지는 못했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속기사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서 15세 때부터 족발집 등에서 일하며 용돈을 벌었고, 마트 캐셔, 내레이터 모델, 백화점 판매원 등 서비스 업종에서 주로 일했어요. 그래선지 따뜻한 곳에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21세에 결혼했는데, 임신한 뒤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무원이 너무 하고 싶었죠. 속기사는 필기시험을 거치지 않고 실기 위주로 딸 수 있는 데다가 법원, 국회 등에서 일할 수 있다고 해서 속기사에 도전하게 됐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속기사 공부를 시작했을 때 딸이 세 살이었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오후 3시부터 시간이 나서 그때부터 공부할 수 있었죠. 속기협회를 찾아가 상담도 하고 키보드를 구입해 하루 1시간 이상 온라인으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험장에 가면 긴장해서 손이 떨려서 점수가 낮게 나와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죠. 사무실을 직접 개원한 뒤로는 야근을 많이 해서 딸이 초등학생일 때 학원을 많이 보낼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영업왕이신데 거래처를 뚫어내는 비법이 있나요
딱히 비결은 없고요. 제 이름이 방지원이라서 이름을 알릴 겸 제 이름에 있는 ‘방’과 닮은 빵을 돌려보라고 어떤 변호사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거기서 착안해 빵을 돌리면서 고객을 유치했죠. 보통 저는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 한 사무실을 최소 세 번은 방문하는데요, 보통 기존 거래처가 있기에 처음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했어요. 처음 가서 빵을 돌리면 잡상인 취급을 하기도 하고, 두 번째 가면 조금 좋아하시고, 세 번째 가면 미안해하시면서 일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단팥빵을 하루에 5만 원어치씩 사서 여러 건물을 돌며 고객을 유치하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사실 마이너스 통장에, 알바비를 주고 나면 남는 돈이 없던 때였죠.
 
속기법인을 어떻게 만들게 된 것인가요
원래는 속기사 자격증 공부를 한 뒤 합격과 동시에 취업이 됐는데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속기사에 대한 복지나 처우가 좋지도 않았고요. 그때 ‘속기사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으면 내가 속기법인을 만들어서 속기사를 최고로 대우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당신들이 나를 대우하지 않으면, 내가 만들어서 대우를 해주겠다는 생각이었죠. 
 
혼자 사업하는 게 두렵지 않으셨나요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서 두렵지 않았어요. 딸을 잘 키우고 싶었고, 내 힘으로 돈을 많이 벌고, 일어서고 싶었거든요. 아르바이트 직원 월급을 줘야 하기도 했고요. 딸이 너무 소중하고, 귀했기 때문에 도전했습니다. 물론 두려움이 항상 있긴 했어요. 하지만 모아둔 돈을 모두 다 까먹으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할 시간에 나가서 빵을 더 돌렸던 거죠.(웃음)
 
성공의 비결이 있을까요
저는 꾸준함, 그냥 하나만 계속 꾸준히 합니다. 실패하든 뭐가 되든 계속해요. 특히 저는 말한 건 계속 지킵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큰 사무실로 넓혀가자고 직원들에게 얘길 했고, 지켰고, 또 직원들 급여를 높여주겠다 약속했고, 지켰어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저는 주변에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하는 편이고, 또 그렇게 말한 걸 이뤄내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직원들을 최고로 대우하겠다는 약속은 지키고 있나요
네. 1명이 나가면 2명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우했기 때문에 처음 창립 때 빵을 같이 돌리던 맴버들과 계속 같이 일하고 있어요. 5인 미만이지만 직원들을 위해 육아휴직을 시행하고 있고,  유연근무제에다 야근은 하지 않는 근무 환경을 유지하고 있죠. 냉장고에 먹을 것도 항상 가득 채워둡니다. 영업을 제가 맡고 직원들이 내근하면서 업무를 맡아 보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어요.
 
힘드셨을 때는 없었나요
2021년부터 딸이 사춘기로 힘들어해서 재택근무를 하거나 매일 매일 엉엉 울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힘들었지만, 그 시간이 신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쉬면서 운동도 하고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어요. 속기 업무는 많이 들어야 하는 일입니다. 녹음 음질이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럴 때면 정말 귀가 많이 아팠죠. 어린 딸애가 조잘조잘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할 때 제가 많이 들어줬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어요. 딸애가 말을 건네면 “미안해, 귀가 너무 아파서 지금 들어줄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그게 참 가슴이 아팠어요. 
 
경력단절 등으로 인생 2막을 도전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할 수 있어요! 엄마는 누구보다 강하더라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속기법인을 프랜차이즈화하고 싶어요. 부산, 대전, 대구, 수원 등 전국에 지점을 내고 싶고, 유튜브를 통해 속기사 창업 등에 대한 노하우를 담은 강의 콘텐츠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를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면서 ‘방지원’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는 거죠. 
 
(Tips for you)
속기사란,  각 기관의「기록물관리법」 규정에서 정한 속기로 기록유지가 필요한 국회, 지방의회, 법원, 행정부, 방송, 일반기업 등의 각종 회의, 토론회 등의 발언 내용을 신속 정확하게 기록하는 직업이다. 속기사가 되는 데는 필기시험은 따로 없다. 실기시험은 급수에 따라 다른데 1급 기준으로 연설체 1천650자, 논설체 1천500자를 5분 안에 쳐야 한다. 정확도가 90% 이상이라야 합격이다. 
 
한글 속기 자격증은 실기로만 이뤄져 있는 데다 빠르게 법원, 국회 등에서 일할 수 있으며, 프리랜서로도 활동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실기시험만으로 공무원이 되고 싶거나 ‘N잡’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특히 주부들도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다. 타자를 빨리 치는 능력이 중요하고, 나이 제한이 없어 인기가 많다. 속기용 키보드는 따로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인 카스와 소리자바다. 속기사가 되려면 자신에게 맞는 키보드부터 골라야 한다. 한글속기 1·2·3급 등의 자격증이 있으며,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발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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