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동시대 예술 산책

지금으로부터 약 320여년 전인 1705년,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당시 20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이 젊은 음악가는 북독일에 뛰어난 음악가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북스테후데가 살던 항구도시 뤼벡으로 향한다. 바흐가 머물던 아른슈타트에서 약 400km 정도의 거리로, 꼬박 2주의 시간을 들여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듣겠다는 목적 하나로 그 머나먼 길을 걸어갔다.
지금 우리는 음악을 듣기 위해 400km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자기기를 몇 번 조작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음악이 우리 손안에서 재생되기 때문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음악 플랫폼에 접속하기만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늘날, 음악은 이제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러 음악을 자유롭게 배치해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이런 동시대의 조건이 마련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의 청취 문화를 바꿔놓은 몇몇 매체와 특별한 사건들을 살펴보자.
사진 출처=위키피디아, nypl.getarchive.net

음악 청취자들은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거나
베스트 컬렉션을 만들어 올려놓기도 하고,
때론 일상적인 말을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으로
걸어놓기도 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음악 청취는 음악가의 작업을

그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가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며

듣는 창조적 행위에 가까워진다.

 

축음기와 카루소의 노래
1877년,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축음기(phonograph)’라는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음표라는 활자를 통해 음악의 구성을 기록한 악보와 달리, 파동으로 이뤄진 소리 그 자체를 기록하고 이를 다시 재현해 낸 첫 발명품이었다. 소리 그 자체를 기록하고 재생한다는 혁신적인 기술의 등장은 음악 문화를 바꿔놓은 거대한 사건이었고, 이는 ‘음반 문화’라는 전례 없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축음기와 음반이 세간에 퍼지던 20세기 초에 음악을 듣는 주된 방법은 공연이었으므로 누군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스스로 연주하거나 연주자를 고용하거나 혹은 아주 드물게, 자동 악기라는 값비싼 기계를 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축음기와 음반은 사람들이 실제 공연에 가지 않더라도 지금 가장 유명한 명연주자들의 특출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음반사는 흥행이 보장된 연주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음악을 녹음했고, 음반이 들려주는 것이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바로 그 연주라고 홍보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그저 떠도는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엄청난 음반 판매량이 증명하는 ‘스타 음악가’들이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탈리아의 성악가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다. 그는 나폴리의 한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지만 훗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첫 레코드를 발매했고, 이후 세계적인 테너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음반 역사상 최초의 유명 성악가였던 데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만큼 후대에 끼친 영향도 엄청났다. 1951년에는 그의 인생사를 담은 영화「위대한 카루소」가 개봉됐고, 이탈리아의 가수이자 작곡가인 루치오 달라는 1986년에 카루소에게 헌정한 곡「카루소」를 작곡할 정도였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카루소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음악 애호가들에게 회자하고 있다. 카루소는 1921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노래는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축음기와 음반은 생물학적 생을 마감한 음악가의 노래와 음악, 그리고 소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해적판 테이프와 김민기의「공장의 불빛」
녹음·재생 기술의 발명 이후 음반의 형태는 여러 차례 변화했다. 발전의 양상은 크게 두 방향이었다. 여러 차례 재생해도 음반 매체가 손상되지 않게 ‘내구성’을 강화하는 방식, 그리고 더 긴 재생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 면당 4분 내외의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SP(Standard Play), 한 면당 15분 이상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LP(Long Play)가 등장했다. 하지만 LP는 크고 무거웠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 이후에 발명된 것이 바로 테이프다. 테이프는 LP보다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오디오 품질도 좋고, 크기에 비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다. 또 테이프는 특정 부분을 잘라내거나 복사해 다른 테이프에 붙여 넣을 수도 있었고, 테이프에 새로운 소리를 녹음하는 방식도 비교적 간단했다. 이런 매체의 장점이 극대화돼 나타난 현상이 있었으니, 바로 ‘해적판 테이프’의 등장이다. 해적판은 무단으로 복제된 물품, 즉 타인의 저작물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상태로 복제된 후 판매·배포되는 것을 일컫는다. 정품보다 싼값에 음반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적판 테이프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널리 통용됐다. 그런 해적판 테이프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바로 이 해적판 테이프가 사회 저항운동을 위한 도구로 활약하게 된 것이다.
1978년, 김민기와 동료들은 비밀리에 모여 노래굿「공장의 불빛」의 마스터 테이프를 만들었다. 이 테이프 작업은 “동일방직 사건이라는 1970년대 후반 노동운동에서의 중요한 한 사례에 입각해 본격적으로 노동문제를 다루고 있다. 애초부터 공연물로 구상됐던 이 작품은 구전가요, 흑인영가, 남도소리, 풍물 등 다양한 음악 양식과 전자 악기에서부터 국악기에 이르는 다양한 악기 사용, 파격적인 내용의 가사, 가사의 연극성 등으로 서정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노래가 얼마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실증했다. 특히 카세트테이프라는 대중 확산력이 강한 매체를 이용하고 뒷면에 반주 음악을 실음으로써 대중적 확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 후의 여러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김창남, 2004)
카세트 테이프는 크기도 작은 데다 복제도 비교적 용이해 정부 기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음반’을 널리 퍼뜨리기에 제격이었다.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제안한 이 노래굿은 대학, 교회 등지를 통해 암암리에 퍼져나갔고, 이듬해에는 채희완의 안무로 공연되기도 했다. 이 테이프는 다시 녹음되고 또다시 녹음됐고, 사람들은 몰래 숨어 테이프가 다 늘어날 때까지 이를 반복해서 듣고 노래하고 공연했다. 이 노래굿이 널리 퍼질수록 테이프에 기록된 음향은 서서히 흐려졌지만, 그만큼 많은 이의 몸에 새로운 기억이 선명히 각인됐다.

디지털 음악 플랫폼, 플레이리스트의 시대
1980년대에 발명된 CD는 디지털 방식으로 소리를 기록하는 매체로, 표면이 손상되지 않는 한 반영구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CD에서 시도된 디지털 방식의 기록은 단순히 매체의 변화를 넘어 더욱더 큰 청취 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이 CD에서 MP3 파일을 추출해 개인 컴퓨터에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그 파일을 온라인에서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앨범 수십 장을 수집하고 또 수백 명에게 자신의 앨범을 복제해서 나눠 주었다. 버스와 전철에서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P2P는 최신 음악뿐 아니라 더는 구입할 수도 감상할 수도 없었던 수십 년 묵혀 있던 청장년 세대의 음악까지 모두 길어 올렸다.” (김병오, 2012)
이런 디지털 음원의 시대에서 생겨난 몇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바로 ‘레트로’ 문화다. 과거의 음반들은 디지털 음원이라는, 낡지도 손상되지도 않는 파일로 변환돼 지금 막 나온 음원들과 한자리에서 공유됐다. 이는 어느새 온라인상에서의 문화에 머물지 않고 대중문화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기도 했다. JTBC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서칭 포 슈가맨」과 과거의 명곡을 재해석하는 KBS의「불후의 명곡」이 그런 예다. 시기마다 가장 적극적으로 소환되는 옛 시대의 산물은 달라지지만 레트로 문화는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스트리밍’이다. MP3 시대까지는 음원 파일을 소유한다는 개념 아래 음악이 향유됐다면, 스마트폰을 통한 청취가 일상화된 후에는 소유가 아니라 ‘접속’을 통한 청취가 더욱 널리 퍼졌다. 이제는 실물 음반을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월 단위로 구독하는 일이 더욱 지배적인 음악 소비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스트리밍 플랫폼 안에서도 ‘음반’이 아닌 새로운 음악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 청취자들은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거나 특정 음악가의 베스트 컬렉션을 만들어 올려놓기도 하고, 때론 일상적인 말을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으로 걸어놓기도 한다. “미안, 지금 나오는 노래가 좋아서 네가 하는 얘기에 집중을 못했어”, “오늘은 그냥 뒹굴거리면 안 될까?”. 이런 상황 저격형 플레이리스트에는 그 상황극을 즐기는 댓글들이 달리며, 그 댓글 속에서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음악 청취는 음악가의 작업을 그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가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과 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음악의 사물들』을 썼고 워크룸프레스의 ‘악보들’ 총서를 함께 쓰고 엮는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으로 있다. 적극적으로 재구성하며 듣는 창조적 행위에 가까워진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의 청취 문화는 ‘청취’의 개념을 조금씩 비틀어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세기의 발명가들이 최초로 소리를 기계에 녹음하고 재생했던 순간, 그들은 이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음악에 관한 새로운 발명들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청취 문화의 초석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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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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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2j***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5-20 03:07:43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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