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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신’이 돌아왔다. 대한민국 대표 ‘믿고 보는 배우’ 이성민은 「핸섬가이즈」(감독 남동협)에서 역대급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그가 연기한 ‘재필’은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새침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터프가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는 ‘자칭 핸섬가이’ 역할을 맛깔나게 살리기 위해 구릿빛 피부와 언밸런스한 꽁지머리 헤어스타일을 감독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역시 재필은 첫 등장부터 강렬하게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성민 배우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2023)을 비롯해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 2020), 「공작」(감독 윤종빈, 2018) 등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치며 관객의 신뢰를 받아왔다. 최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연출 정대윤.김상호, JTBC, 2022)에서 대한민국을 ‘진양철 회장 신드롬’으로 물들이기도 했다. 「핸섬가이즈」로 데뷔한 남동협 감독은 이성민 배우를 두고 “홍콩에 주성치, 오맹달 표 코미디가 있다면 한국에는 이성민, 이희준 표 코미디가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신뢰감을 드러냈다. 이성민 배우를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시사회 관객 반응이 뜨겁습니다.
개봉 전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개인적으로 영화에 만족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나와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가 만족한다고 해서 잘되는 건 아닌데, 관객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하죠.

 

「핸섬가이즈」에서 맡은 ‘재필’은 외모가 비호감인 캐릭터입니다. 처음 캐스팅 제안을 받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아니 왜 나같이 잘생긴 사람에게?’라는 의문이 들었냐는 말인가요?(웃음) 사실 좀 힘들었어요. 초반에 최대한 불쾌한 인상으로 보이려고 외모도 신경을 좀 써야 했거든요. 다른 영화는 안 그랬는데, 이번 영화는 특히나요.

꽁지머리 스타일링도 직접 제안하셨다고요. 어디서 착안한 아이디어인가요?
다큐멘터리에서요. 멧돼지 사냥꾼 아저씨가 한 분 계셨는데, 아 저런 스타일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얀’ 속살 노출도 화제가 됐습니다.
속살은 하얘서요. 보여줘요?(웃음) 옷을 벗으면 다 까맣게 나오게 분장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그러지 말자고 했죠. 목 부분과 팔만 탄 피부처럼 보이도록요. 그래도 상의 탈의할 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웃음)

재필 캐릭터 구축은 어떻게 했나요?
보통 일반인이 이런 인물에 대해 가지는 첫인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조금 과장해서 연기했고요. 재필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이렇게 바라볼 거란 걸 과장되게 한 거죠.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하얀 속살도 그런 반대 이미지를 상징한다고 할까요? 겉은 시커먼 피부지만 속은 하얀…. 대본에 있는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망가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전혀요. 벌에 쏘인 얼굴 사진을 집에 보내줬더니, 가족들이 ‘미쳤다’고 하긴 하더라고요.(웃음)

영화를 보니 작정하고 재밌게 연기하겠다는 게 보이더라고요.
네. 그런 의도로 했죠.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들과는 아주 달랐으니까요. 무엇보다 감독님과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해서 앙상블에 유독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상구’ 역을 맡은 이희준 배우와는 연극 시절부터 인연이 있죠. 관객들은 「남산의 부장들」로 두 배우를 기억할 텐데, 「핸섬가이즈」에서는 어떻게 달랐나요?
「남산의 부장들」은 뭔가 외줄 타기 하는 느낌으로 연기했다면, 「핸섬가이즈」는 트램펄린 위에서 둘이 뛰는 연기였다고 할까요? 집중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없지만, 서로의 연기를 열심히 살펴야 했어요.

이희준 배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신뢰감이 있죠. 많이 준비하는 배우니까 제가 묻어갈 수도 있고요.(웃음) 이번에 상구 역 준비하는 거 보면서 많이 놀랐어요. 예전에 연극할 때부터 그랬지만, 역시 여전하구나 하는. 우직함이랄까요? 그런 성실함이 연극할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더라고요. 춤추는 장면은 촬영 전날 밤 숙소에서 엄청 연습했을 거예요. 대단한 친구예요. 그런 과정을 즐기는 것 같아요.

 

상구가 여린 아내 느낌이고 재필이가 무뚝뚝한 남편 느낌도 듭니다. 혹시 두 사람의 전사를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그런 이야기를 잠깐 했어요. 과거에 막노동, 목수 일을 함께 했고, 돈을 모아서 함께 집을 계약했다는 씬도 있었고요. 편집에서는 덜어냈습니다.

미나 역을 맡은 공승연 배우도 두 배우의 기에 밀리지 않더라고요.
재필과 상구, 두 캐릭터가 워낙에 강력하니, 중간에서 밸런스 잡기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제 기억에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중반부터 약간 힘들어했던 거 같아요. 캐릭터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우리한테 휘말리지 말고 너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해줬어요. 자칫 우왕좌왕하다 우리한테 빠져버릴 수 있다고요.

 

남동협 감독은 오랜 조연출 생활을 청산하고 「핸섬가이즈」로 입봉했습니다. 어떤 스타일이던가요?
촬영 때는 잘 못 느꼈어요. 그냥 대본에 충실하고, 준비도 잘하는 감독 정도? 그런데 완성본을 보면서 남 감독에게 귓속말로 “다 계획이 있었구나, 치밀한데?”라고 했어요.(웃음) 역시 연기하는 배우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다르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요?
영화 후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사전 포석들이 영화에서 딱딱 퍼즐처럼 맞아들어가는 걸 보면서죠. 아, 우리 배우들이 못 보고 있는 걸 다 보고 있구나 했죠. 현장에서는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뿐인데, 영화 나오면서 알았죠. 영화 초반에 임원희 배우가 나오는데, 왜 캐스팅했는지 알았고요. 관객이 처음 웃는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거 보면서 남 감독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죠. 더 말씀드리면 스포일러가 돼서.(웃음)

 

남동협 감독이 이성민 배우를 두고 홍콩 영화배우 ‘오맹달’ 같다고 극찬을 했어요.
느닷없더라고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봤는데 말이죠. 남 감독이 좋아하는 씬 이야기를 듣고도 좀 놀랐어요. 허벅지를 찔리고 혀를 내밀며 표현하는 씬을 그렇게 좋아한다고.(웃음)

천만 배우십니다.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나, 최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진양철 회장 역으로 관객들이 기억하고 있죠. 「핸섬가이즈」는 상업영화이기는 하지만, B급 감성이 깔려 있는 영화죠. 이런 작품을 선택한 게 의외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고르나요?
좋은 대본이 먼저죠. 다음으로는 내가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인가를 고민합니다. 내 연기로 이 캐릭터를 변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거죠. 「핸섬가이즈」의 재필은 슬랩스틱 요소가 있는 코미디라서 제게 맞을 거로 생각했고요. 전작 「바람 바람 바람」(감독 이병헌, 2018)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준 ‘석근’ 역과는 결이 다르죠.

 

어떤 작품을 하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하나요?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했지만, 내가 어떤 이미지의 배우가 돼야겠다거나, 대중에게 나를 어떤 이미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내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핸섬가이즈」는 코미디 영화잖아요. 즐겁게 촬영할 것 같지만, 예민한 작업이에요. 애드리브는 말장난이 아니거든요. 같은 대사, 같은 컷이라도 여러 변주를 할 수 있는 다양함이 있죠. 그런 코미디 연기를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 최근 즐거운 현장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다음에도 기회가 닿으면 이런 영화를 해보고 싶습니다.

코미디 연기를 열심히 했는데, 안 웃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하셨어요?
그게 제일 걱정이었죠. 현장에서 감독님이 ‘컷’ 하면 스태프, 배우들 모두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관객에게도 전달될까 하는 게 제일 불안했거든요.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기자나 영화관계자들은 웃음에 인색하죠. 그런 걸 감안하고 봤는데, 이번 영화는 생각보다 웃음소리가 많이 나와서 다행이었죠.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왔는데 의외로 잔인한 장면도 많더라고요. 모르고 간 관객은 극장에서 놀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씬들이 있죠. 그런데 그렇게 부담스럽게 나오지는 않고 지나가니까, 오히려 거리낌 없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촬영 때는 더했습니다. 편집에서 많이 걷어낸 거죠. 저는 예전 영화 「스크림」(감독 웨스 크레이븐, 1999) 생각이 나더라고요. 대학생들이 여행가서 벌어지는 일들이었죠.

다작 배우신데요. 지금까지 한 역할 중 만족스러웠던 작품이 있다면요?
「미생」의 오상식 과장이요. 저와 가장 비슷하기도 했고, 어울렸던 캐릭터였습니다. 무명시절까지 통틀어 그나마 약점이 덜 보였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물론 다시 보면 끔찍한 씬들이 있긴 하지만,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웃음) 그래서 현장에서 점점 더 예민해지고 신중해져요. 집중도 하고요. 그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죠.

 

현장에서 감독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때는 어떻게 조율하는 편인가요?
대개 다르지 않더라고요. 잘 따르는 편이기도 하고요. 배우에게 캐릭터는 일종의 가면, 탈 같아요. 배우인 저는 각시탈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갑자기 이상한 탈을 씌우면 연기가 안 되는 것처럼, 현장에서 제가 어떤 탈을 쓸 것인가를 조율하는 건데 지금까지는 감독님들과 큰 차이가 없었어요. 감독님들도 제가 선택한 탈을 존중해주셨고요. 재필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남동협 감독이 많이 존중해줬어요. 제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요. 나한테 붙는 탈일 때 좀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고요.

MBC 「푹 쉬면 다행이야」로 데뷔 37년 만에 예능에 도전하셨습니다.
예능이 굉장히 무서웠는데 요즘 많이 편해진 거 같아요. 제가 굳이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라서요. 저는 성인이 되고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늘 캐릭터를 연구하고, 연기하던 상태로 살아와서 그런지, 일상에서 저를 표현하는 게 부족했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노래방에서 노래를 못해요. 떨려서요. 일상에서의 나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요즘 예능은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지 않더라고요.

 

오십 살이 넘어서 보니, 연극을 처음 시작한 스무 살 무렵 선생님께서 주셨던 화두가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너는 너를 본 적 있나?”라는 질문이었죠. 이해가 안 돼서 “네?”라고 했더니,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니, 거울로 맨날 내 모습을 보는데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만 들었거든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전까지 원래 내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리고 살았는데, 요즘 내 모습을 조금 알게 된 거 같아서 그런 의미에서 예능에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젊은 시절보다 지금이 더 빛을 보는 거 같아요. 무엇을 쌓아왔길래 이렇게 터지는 건지, 비결이 있나요?
터졌다기보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여러 인연과 우연이 이런 기회를 만들었고, 또 그런 기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운이 참 좋았구나 하는 생각도 해요. 지금도 여러 후배, 동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어요. 나랑 좋았던 인연이든 나빴다던 인연이든,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구나 하는.

 

말씀하신 것처럼 운은 본인이 결정할 수 없죠. 그래도 연기적으로 봤을 때 변곡점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시골에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경북 영주의 작은 극단이었죠. 그리고 대구에 가서 연기를 수련했습니다. 그때 제가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연기를 해야겠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죠. 상경해서 이른바 서울 배우들과 연기를 하며 스스로 나름 대견하다고 생각했던 지점이 바로 그런 점이었어요. 비록 지방에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연기에 대한 신념이랄까, 이런 것들을 잘 지켜왔구나 하는. 굳이 칭찬하자면 칭찬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념인가요?
나는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지, 또 연기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방법론이었던 거 같아요. 지방에서도 여러 극단에서 다양하게 연기하는 방법들을 선배 배우들에게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던 연기라는 게 있었죠. 처음에 서울 와서 연극할 때는 그게 제일 긴장됐어요. 왜, 지방에서 한번씩 서울 와서 연극을 보면 잠을 못 잘 정도였거든요. 너무 잘하니까. 이런 배우들과 경쟁해야 하니, 속된 말로 ‘촌티’ 안 내려고 엄청 긴장했죠. 그런데 서울에 와서 막상 해보니 그 정도는 아니었구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연기에 대해 지켜왔던 생각이 많이 틀린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이미 많은 배역을 소화하셨지만,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전 그런 생각을 해요.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하고 싶어도, 좋은 캐릭터를 만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요. 좋은 캐릭터는 좋은 대본 위에서 빛나요. 그게 선행돼야 배우가 연기를 하는 그 캐릭터가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캐릭터를 만나야겠죠. 좋은 대본을 만나면 좋겠고요. 훌륭한 감독, 동료 배우, 스태프들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핸섬가이즈」로 만난 모든 분들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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