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ㆍ취업   커리어줌인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계속 곱씹어 봐요
이야깃거리를 찾느라
언제나 머릿속이
분주하지요

여섯 살의 천미진이
사랑받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쓰고 있어요

 

“어렸을 때 엄마에게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랑을 확인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는 동안 즐겁고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고 있다.”
 천미진(42세) 작가의『내가 고양이를 낳았나』는 개구리같이 ‘폴짝 폴짝’ 뛰고 앵무새처럼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유쾌하고 재치 있게 담겼다. 엄마의 마음을 엄마보다 잘 아는 그는 딩크족으로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상상’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 

 20년차 편집자이기도 한 천 작가는 그림책과 청소년 도서를 펴내는 출판사 다림의 편집장이면서『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된장찌개』등 30여 권의 그림책을 쓴 작가이고, 한겨레교육과 중학교 등에서 그림책 워크숍을 진행하며 20여 명의 작가를 양성해온 강사다.
사노 요코의『100만 번 산 고양이』와 데이비드 위즈너의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책이 단순히 일이 아니라 ‘상상력의 경계를 넘어서는 예술의 장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림책 작가를 꿈꾸게 됐다는 그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고서정 기자  human84@knou.ac.kr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것 같다. 편집장, 작가, 강사로서의 하루는 어떤가요

출판사로 매일 출근해 오전에는 청소년 소설, 동화, 그림책 등의 투고 원고를 검토하고, 오후에는 주로 작가 미팅을 한다. 작품을 가지고 오는 작가들과 논의를 하거나, 직접 낸 아이디어나 기획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편집장으로서 기본적인 교열·편집 업무 외에도 기획에 주로 시간을 많이 쏟는다. 퇴근 후에는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수업을 주 3~5회 진행하고 있다. 그림책을 직접 쓰고, 합평과 피드백을 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한다.

글을 쓰기 위한 루틴이 있는지요

예전에는 글을 굉장히 많이 썼다. 지금은 수업이 많아서 정작 글 쓸 시간을 많이 확보하지는 못한다. 허전함은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출퇴근하면서, 산책하면서 떠오르는 것들을 기록해두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편이다. 머릿속으로 거의 다 완성하고 난 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쓰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내용을 까먹을 때도 있다. (웃음)

편집장, 작가, 강사 중 가장 적성에 맞거나 아니면 가장 힘든 일은 뭔가요

제일 힘든 것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라, 사람을 만난 뒤에 혼자 오래 충전하는 시간을 가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보람은 편집자의 일이다. 작가들을 새롭게 발굴해서 책이 나왔을 때 쾌감을 느낀다. 편집자이자 동시에 작가이기 때문에 작가의 어려움을 잘 알지만, 작가들과의 관계에서 힘들 때도 있다. 편집 방향에 대해 소통하는 과정에서 서운함을 느끼는 작가들이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

그림책 수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작가가 되고 싶었던 막막한 시간이 5년가량 있었기에, 함께 고민하고 마음을 나눌 글벗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작가가 되고 보니, ‘내 글을 함께 읽어주고 의견을 말해주는 동료가 있었더라면 수월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지만, 아주 작은 도움의 불씨라도 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 크다. 편집자로서는 좋은 원고를 보게 되면 책으로 기획할 수 있어서 업무의 연장으로도 볼 수 있다.

 

작가를 많이 양성하시는데, 작가가 빨리 되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할 때는 없나요

 

그림책을 만드는 행운 중에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마음의 순수를 간직한 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서 더 이상의 행운이 없어도 충분하다. ‘나 그 작가랑 같이 공부했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너무 기쁠 것 같다. 주변에 잘 된 사람들이 많으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책 작가가 된다고 해도 경제적으로는 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작가들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어떤 책이 좋은 그림책인가요

아이들에게는 ‘보고 또 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아이의 유머를 자극하거나 메시지를 떠나서 이유를 모르겠지만 계속 보고 싶어지는 그런 책들이 있다. 성인으로서 제일 좋은 그림책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 자꾸 어떤 문장이나 장면이 떠오르는 책이다. ‘그게 이런 의미였어’ 라며 어떤 순간에 저에게 귓속말을 해주고 조언을 해주는 책들이 좋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

천진난만함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어린 시절을 자꾸 곱씹어보니 더 생생해지는 것 같다. 엄마가 힘들어하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짧은 순간을 아이들은 다 파악한다. 그 순간 아이들은 땅으로 꺼지는 것 같이 느낀다. 아이들이 제 책을 읽는 동안 즐겁고 사랑받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 여섯 살의 천미진이 사랑받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고 있다.

 

그림책의 어떤 점을 좋아하시나요

 

맑음과 순수함, 말도 안 되는 상상력과 신비함이 너무 좋았다. 지금은 신선함은 많이 느끼지 는 못한다. 대신 이런 기법을 썼네. 이래서 성공했구나하는 기술적인 분석을 하게 된다. 훌륭한 작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배울 점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그림책은 기쁨과 열등감을 주기도 하고 저를 움직이게 하는 존재다.

 
그림책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나요

타고난 재능도 중요한데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재능이 있다. 혼자 하면 나태해질 수가 있기에 같이 독려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글쓰기를 하는 것이 좋다. 공모전이나 투고를 통해 여러 출판사에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투고는 글 쓰는 역량이 갖춰졌을 때 해야 효과가 있다. 그림책을 쉬운 장르라고 오해해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한 채로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그림책을 많이 읽고, 많이 써 보는 것이 중요하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는 그림책을 다 읽어보고 배울 점과 아쉬운 점을 되짚어 보는 방식을 추천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글감을 어디에서 찾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미친 듯이 그림책을 많이 읽고, 많이 사서 모았다. 그림책을 너무 많이 꽂아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책장이 앞으로 쏠려 무너져서 다칠 뻔했던 경험이 있다. 많은 그림책을 읽었기 때문에 작품을 읽으면 유사한 주제를 다룬 그림책들이 한순간에 떠오른다. 이야깃거리를 찾느라 머릿속이 언제나 분주하다. 자전거를 배운 지 2년 정도 됐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감을 얻기도 한다. 주변을 많이 관찰하는데, 이웃, 동네 등 실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커리어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요


상상과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성실하고 꾸준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일단 좀 참아보는 거, 쓰면 뱉는다고 하는데 뱉지 않고 곱씹으면서 ‘이 일이 나에게 주는 어떤 메시지나 교훈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꾸준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들에 비해 대단한 재능이 있지 않은데 정말 딱 요만한, 코딱지만한 재능이 있다.(웃음)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꾸준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하고, 재능이 아무리 작아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사람들은 성취해 내는 것을 종종 본다. 출판일을 20년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상력이나 창작력보다는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매일 나가는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의 계획이 있다면요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내년 초에 출간될 예정이다. ‘참되고 슬기롭고 바른 귀신들을 가르치는 귀신 학교’가 주제인데, 귀신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평화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나쁜 귀신, 이무기도 등장한다. 그동안은 그림책에 중심을 두고 활동해 왔는데 동화로 이야기 세계를 넓힐 수 있어서 설레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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