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한국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첫 등장 씬의 하나인 「꿈의 제인」(감독 조현훈, 2017) 이래 「「모가디슈」(감독 류승완, 2021), 「D.P.」(연출 한준희, 2021, 넷플릭스) 등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한 구교환 배우가 한 번 더 군인 역할로 돌아왔다. 7월 3일 개봉한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에서 남한의 국정원에 해당하는 북한 보위부(국가보위성) 소좌 ‘리현상’ 역을 맡았다.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현재는 유능한 장교인 현상은, 탈주병 발생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규남’(이제훈)의 부대로 온다. 어린 시절 알고 지낸 규남을 보호하던 현상은 규남의 ‘내일’을 향한 진짜 탈주가 시작되면서 자신의 ‘오늘’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추격한다.

 

다정하면서도 집요하고 무자비한 추격자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구교환 배우의 연기는 영화에서 립밤, 핸드크림, 전자담배 등 독특한 소품들과 함께 인상적으로 표현됐다. 자신이 포기했던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질주하는 규남을 쫓는 리현상 소좌로 분한 구교환 배우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탈주」 촬영 현장 이야기와 이제훈 배우와의 연기 호흡에 대해 들어봤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등장하는 장면부터 눈이 가더라고요. 립밤, 핸드크림, 전자담배 같은 소품이 ‘리현상’ 캐릭터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요.(웃음) 철저히 콘티 기반입니다. 다만, 리현상 얼굴보다 립밤이 먼저 스크린에 보이도록 한 거죠.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게 현상의 얼굴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앵글이나 소품이나 현상이 다 같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처럼요. 현상은 외적인 면을 꾸미는 캐릭터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포마드 헤어, 재킷, 롤렉스 시계 등으로 겉을 꾸미잖아요. 반대로 그 뒤에 숨어 있다는 생각도 했죠. 불안을 외형으로 숨긴다는.

 

「D.P.」에서도 군인 역할을 맡았고요. 「모가디슈」에서도 북한 참사관 태준기 역을 맡았어요. 「반도」(감독 연상호, 2020)에서도 빌런 서 대위로 분했습니다. 군인 배역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나요?
군인은 그냥 수단일 뿐입니다. 저는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서 대위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미쳐버린 남자고요, 헌병 한호열은 자신이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청춘이죠. 태준기는 탈출하려는 인물이라 흥미로웠습니다. 「탈주」에서 현상은 시스템 안에 갇힌 남자고요. 군인으로 접근했으면 안 했을 거예요. 군인은 그저 그 캐릭터를 둘러싼 요소일 뿐이고, 저는 그 인물이 궁금했을 뿐이죠.

모두 군인 배역이었는데, 군인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어떤 캐릭터에 끌리나요?
그때그때 다른 거 같아요. 어떤 캐릭터는 감독님의 코멘트를 많이 듣기도 하고요. 시나리오를 보고 저 세계관으로 들어가면 재미있겠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죠. 「탈주」는 리현상의 얼굴이 궁금했어요. 이제훈 배우와 이종필 감독도 궁금했고요.

 

리현상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규남’(이제훈)에게 집착할까요?
규남은 현재 제거해야 할 ‘꿈’인 거죠. 탈주하면 현상은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니까요. “남한이라고 지상낙원일 거 같아?”라고 규남에게 하는 말은 사실 자신이 생각한 건데, 뒤에 숨어 있는 거예요. 동료 군인에게 “너는 군인이 맞지 않는 거 같아. 맞단 걸 증명해봐”라고 하는 대사도 자신한테 하는 말이죠. 자기가 하지 못하는 걸 남에게 강요해요. 뒤에 숨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선우민’(송강)은 러시아에 두고 온 유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실제 터치도 없고요. 지금 모습을 보여주기 부끄러운 꿈 같은 존재랄까요? 규남이가 현재 제거해야 할 ‘꿈’인 것처럼요.

규남은 목적이 뚜렷합니다. 탈주죠. 그런데 현상은 이상과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요. 내적 고민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요?
말할 때보다 침묵할 때의 모습들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선우민과 전화를 끊고 나서의 행동들에는 친절함이 묻어 나오죠. 또 조준경에 규남이 정확하게 잡혔는데도 빗맞춘다거나 하는 행동들이 있어요. 그런데 경계가 모호하긴 해요. 규남의 맹수 같은 눈빛에 압도된 것도 아니니까요. 그게 영화가 주는 장면의 힘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끝부분에 규남을 계속해서 추격‘만’ 합니다. 그런 현상의 모습이 조금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나요?
실수처럼 느껴지진 않아서 억지스럽다는 느낌은 안 들었어요. 물론 잡아야 한다는 감정으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 중에 감정이 움직이는 거죠. 어떤 장면에서는 잡고 싶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놓아줄 수도 있는? 만약 처음의 태도를 끝까지 유지했다면, 아마 제가 현상을 연기하지 않았을 거 같아요.

구교환 배우에 대한 이종필 감독의 애정이 느껴지는 장면이 나오죠.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슌지, 1999)를 오마주한 장면이 나와서 ‘빵’터졌습니다.
현상의 미소를 처음 볼 수 있는 장면이죠. 배우로서는 뭐,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종필 감독님에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이제훈 배우와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큰데요. 이제훈 배우와 연기 호흡은 어땠나요?
이제훈 배우가 제 작품들을 보고 호감을 느꼈듯이, 저 역시 이제훈 배우의 많은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영화를 공부했어요. 친밀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도 사람인지라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제훈 배우랑은 첫 촬영부터 낯설지 않더라고요. 둘이 같이 찍은 첫 장면에서 규남과 현상이 과거에 우정을 나눴다는 걸 회상 없이 대화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했어요. 서로 거침없이 너무 잘하는 거예요. 두세 작품을 한 것 같은? 촬영을 20회정도 한 기분이었죠.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다는 게 그렇게 중요합니다.(웃음)

 

이제훈 배우는 감독 구교환을 만나고 싶은데, 아직 확답을 못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땡큐! 진심으로 쓰겠습니다.(웃음)

요즘 대세 배우잖아요. 러브콜을 많이 받을 거 같은데, 작품 선택에 고려하는 게 있다면요?
엄청 많이 들어와요. 그런데 제 출연작들을 보셨다면 아실 거예요. 분량이 제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요. 선택의 기준 중에는 감독님도 있어요. 시나리오 너머 감정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이 감독님이라면 충분히 동기를 만들어줄 거란 믿음으로 들어갈 때도 있어요. 「탈주」는 이제훈 배우와 이종필 감독이 있어서 선택했고요. 사실 리현상의 첫 얼굴과 마지막 얼굴이 달라요. 이게 너무 궁금했어요. 처음엔 가짜 박력, 기세를 보여주는데, 말미로 갈수록 진짜 기세가 드러나는 모습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리현상의 처음 얼굴과 마지막 얼굴이 달라져요. 변화가 있는 인물인데 어떻게 연기하셨나요?
그 부분은 감독님이 채워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훈 배우가 그런 감정을 만들어줄 수도 있고요. 만약 다음 컷에 총이 인서트로 들어가면 더 무서워질 수도 있는 거죠. 영상 작업이 너무 재미있는 게 그런 점인 거 같아요. 혼자서는 이 에너지를 만들 수는 없죠. 제가 해내야 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런 부분들은 사실 믿고 갑니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뭔가요?
규남이 별빛 아래서 달리는 장면요. 이쪽도 저쪽도 별이 쏟아질 거 같은 멋진 밤하늘에서 한 방향으로 규남이 질주하잖아요. 누군가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데, 그때 달려가는 규남이 모습이 그랬어요. 쾌감도 느껴졌고요.

 

촬영장에서 감탄을 많이 한다고요. 이유가 있을까요?
감탄도 많이 하고 농담도 많이 해요. 저는 현장이 재미있어요. 기질 자체가 현장에서 유머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유머만큼 서로의 긴장을 풀어주는 게 없지 않나요? 집중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시답잖은 농담을 많이 합니다. 그게 유머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하고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연기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약점과 강점이 있다면요?
약점은 강점을 모른다는 거죠. 그게 약점이자 강점입니다. 저는 제가 기준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관객에게 전달해요. 그렇기에 관객이 1순위고요. 다만, 제가 좋아하는 취향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거죠. 영화를 찍을 때는 제 것으로 생각하지만, 개봉하면 관객의 것이 되는 것처럼요.

 

캐릭터 구축 과정에서 한계가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좀 물러나는 편이에요. 단단하면 부러지잖아요. 좋아하는 단편을 보거나, 자요. 음악을 듣기도 하죠. 제 플레이리스트가 좀 다양해요. 레드벨벳 노래 다음에 유재하 노래가 나오니까요.(웃음) 음악 들으면서 달리면 그렇게 좋아요. 유산소가 역시 최곱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추천곡 하나 주신다면요.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요. 이어폰 끼고 혼자 들으세요. 노는 아이들 소리 들으면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애틋해져요.

영화 말고 요새 마음이 가는 건 뭐가 있나요
자꾸 영화 이야기만 하면 ‘영화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느낌이라.(웃음) 요즘은 레트로 게임에 꽂혔어요. 「파이널판타지 5」나 「대항해시대 2」를 가끔 해요. 그 당시 세대라 일방향 게임을 좋아해요. 요즘 채팅창으로 대화하는 게임도 좋아하지만, 일방향으로 가야 하는 강제성을 띈 게임이 좋더라고요.

 

관객이 배우 구교환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진짜 이런 거 이야기하기 싫은데.(웃음) 아마 좋아하는 게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현장을 즐거워하는 게 작품에서 느껴질 거고요. 사진을 찍어도 그 공간에서 추억을 담듯이, 제 연기에서 현장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았을까요? 그건 화면에서 거짓말 안 하는 것 같아요.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히 활동하셨고, 이제 상업영화계도 접수하셨습니다. 구교환 배우에게 영화란 무엇인가요?
수단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거요. 그냥 계속 즐기고, 재미있으면 좋겠어요. 이제훈 배우가 씨네필이고, 켄 로치 감독님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대부」도 안 봤거든요. 꼭 봐야 하나요? 저는 「동방불패」(감독 정소동·당계레, 1992)를 좋아합니다. 임청하 엄청 좋아하고요. 모든 영화를 사랑하진 않지만, 꽂혀 있는 영화는 확실히 좋아하죠.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영화 중에 「마스터」(2013)보다는 오히려 「펀치 드렁크 러브」(2003)를 좋아하죠.

 

최근에는 무슨 영화 보셨어요?
저는 영화관 가는 것도 좋아해요. 제가 좀 산만한 편이라 불 꺼놓고 강제성을 약간 띤 채로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좋아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감독 조지 밀러)를 봤어요. 영화 볼 때 옆에서 떠드는 거 안 좋아하는데, 옆에 앉은 관객이 “어우, 이 영화 보려고 몇십 년을 기다린 거야!”하며 일어나시는데, 저도 갑자기 일어나고.(웃음) 영화의 여러 모습을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탈주」를 볼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보실 때 시간이 잘 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재밌으면 좋겠어요. 재미가 1순위에요 저는. 재미가 있어야 그다음에 본인의 감상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면, 후에 감상도 듣고 싶습니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