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과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2023)로 관객에게 인상을 남겼던 이종필 감독이 신작 「탈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스토리라인은 이렇다.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을 벗어나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그러나 하급병사 ‘동혁’(홍사빈)이 먼저 탈주를 시도하고,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보위부 소좌 ‘리현상’(구교환)이 조사를 위해 부대로 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언뜻 북한 군부대를 탈주하려는 한 군인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가고 싶은 내일이있고, 탈주하고 싶은 오늘이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이종필 감독은 “세상이 다 불가능하다고 해도, 이대로는 살 수 없기에 꿈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딘 인물들의 도전에 공감과 격려를 전하고 싶었다”라며 「탈주」를 연출한 이유를 밝혔다. 이종필 감독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이나 「박하경 여행기」(2023)을 보면 드라마에 강하신 듯한데, 「탈주」에서 액션에 도전하셨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처럼 활동사진처럼 펼쳐지는 영화를 좋아했어요. 형사가 범인을 잡는다는 심플한 스토리라인 안에서 펼쳐지는 활극인데, 영화라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한국에 액션 영화는 많아졌는데, 액션 장르 콘텐츠는 정말 많아졌는데, 순수하게 움직임에 질주하는 영화는 별로 없더라고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이거 하나로 밀고 나간 영화죠. 존 포드 감독의 영화들부터 조지 밀러 감독의 「분노의 도로」 시리즈가 재밌는 것도 고전적 액션이 주는 쾌감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이번 영화는 그런 마음으로 찍었어요.

「탈주」는 어떻게 시작된 영화인가요?
우연히 해외 뉴스를 봤어요. 한 아프리카 청년이 비행기 바퀴에 몸을 묶은 채 다른 나라로 밀입국했다는 기사였죠. 와, 그걸 실행하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비행기가 떴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했어요. 며칠이 지나고 친구가 술이 취해서 전화를 했는데, 힘들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먼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잘 모르지만, 새로운 세계로 가고자 했던 아프리카 청년의 마음과 제 친구의 절절한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느낄 즈음에 「탈주」 시나리오를 보고, 연출 제안을 받았습니다.

 

‘탈주’는 감독님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인가요?
탈주에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영화를 준비하면서 와닿은 말이 있어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1980년에 쓴 『천 개의 고원』이라는 책에 탈주의 개념은 ‘단순한 도피, 도망, 회피가 아니라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전복하고 새로움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저 역시 「탈주」가 단순한 도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내 의지로 지금과는 조금 다른 새로움을 추구하는 건데, 그건 희망일 수도, 행복일 수도, 꿈일 수도 있다는 거죠.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탈주 아닐까 생각했고요.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쓴 권종휘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어요. 어떤 점이 끌렸나요?
북한 병사의 탈출을 다룬 이야기였어요. 앞서 말씀드렸던 두 사건 때문인지 되게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배경이 한국이라면 ‘탈주’가 아니라 ‘탈영’이 되니까 너무 구체적인 스토리가 생기죠. 저는 탈주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북한 사람만 나온다는 설정이 흥미로웠거든요.

 

각색 과정에서 바뀐 부분이 있나요?
오프닝입니다. 원작은 낮에 수색하면서 시작해요. 저는 이 영화를 오프닝부터 직진하는 느낌으로 제목 그대로 탈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몇 분 안 되는 오프닝이지만, 굉장히 고민하면서 썼어요. 또 북한을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도 많았죠. 군대에 있을 때 북한 가는 꿈 많이 꿨어요. 아침에 깨서 애국가 나오면 감동하고요.(웃음) 꿈에 북한의 이미지도 그렇고, 실체를 알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시작부터 악몽이다, 꿈을 꾸면서 시작하지만 현실로 훅 들어온 것처럼 조금씩 안개가 걷히면서 원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이미지가 중요했죠. 그런 방식으로 각색했습니다.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가 있나요?
제가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북유럽 게임 중에 ‘인사이드’라는 게임이 있어요.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어디 갇힌 플레이어가 나오고,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전진해야 하는 게임인데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미있더라고요. 게임 자체가 굉장히 악몽 같은? 고전 중에는 「대탈주」(감독 존 스터지스, 1963)나 「빠삐용」(감독 프랭클린 섀프너, 1973)이 있었고, 개념적으로는 「위플래쉬」(감독 데이미언 셔젤, 2015)처럼 주인공이 굉장히 집중하는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에 뛰는 장면이 좋았는데, 트랙을 길게 깐 건가요? 촬영 방법을 좀 설명해주세요.
트랙이 아니고, ‘러시안암’이라는 엄청 비싼 자동차에요. 대여했습니다. 최초에 러시아에서 개발돼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요. 엄청나게 빠른 포르쉐 같은 차에 팔처럼 쭉 뻗은 장비가 있어요. 거기에 무거운 카메라를 달고 고속으로 질주하면서 찍는 거죠.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완전 좋은데, 배우는 미치는 거죠.

이제 배우와 스토리 이야기를 해보죠. 규남(이제훈)이 왜 이렇게까지 북한을 떠나려고 하는지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지점도 있습니다. 
각색하면서 많이 고뇌했어요. 규남이 정말 가려고 하는 건가, 무엇을 위해 가려고 하는 건가 생각하면서 말도 안 되는 버전도 써봤죠. 그런데 젊은 층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했는데, 그냥 규남은 고뇌를 좀 안 하는 캐릭터면 좋겠다는 반응들이 많더라고요. 현실에서 자기들이 다 고뇌하고 있다면서요. 그래서 규남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고민하고 준비하다가 마침내 고민은 끝났다, 직진한다. 이런 규남의 전사를 담은 수기를 썼어요. 고민 없이 직진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는 게 요즘 젊은 세대의 마음이라면, 제 연출은 ‘뺄셈의 영화’라고 생각했고요.

 

규남(이제훈)의 전사가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BGM으로 해서 짧게 소개됩니다. 아마 호불호가 갈릴 장면 같기도 합니다만
마치 뮤직비디오 같은 그 플래시백은, 제 연출이 아무리 ‘뺄셈의 영화’이긴 하지만, 과거를 최소로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일종의 제 선언 같은 거였어요. 그냥 북한 영화라고 해서 상상 속의 북한을 그리는 게 아니라, 기존과 다르게, 좀 과감하게 뮤직비디오처럼 펼쳐보려고 한 거죠.

이제훈 배우와의 작업은 어떠셨나요?
함께 일하면 즐겁고 사랑스럽더라고요. 영화도 좋아하고 연기도 좋아하고요. 촬영하는 걸 재밌어해요. 행복해하고요.

 

이제훈 배우가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했다고요.
진짜 산이나 대자연 속에서 구르고 뛰는 장면들이 많았거든요. 계속 뛰고 구르고 넘어지는데 ‘OK’를 외쳤는데도 “한 번 더요”를 되풀이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까지 하나 궁금했는데, 배우가 이 영화에 진심이었던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제훈 배우가 상의 탈의하는 장면이 잠깐 나오는데 눈에 확 들어옵니다.
발가벗겨진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훈 배우에게 벗을 수 있냐고 물어봤죠. 자본주의 근육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설명했어요. 단백질 먹고 키운 몸이 아니라 마른 근육으로요. 알겠다고 하고 몇 달 있다가 돌아왔는데, 정말 그런 몸을 만들어왔더라고요. 투정을 하나도 안 부려요.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을 만들어 온 몸이었지만 영화에서는 1초 정도 썼어요. 더 나오면 왠지 과시처럼 보일 거 같아서요.

 

리현상 등장 씬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프레임인 되는 장면이라던가, 립밤, 핸드크림 같은 소품도요. 원작에 있던 설정이었나요? 창조한 부분이라면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가요?
구교환이라는 배우였기에 그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구교환 배우와 연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독립영화계 아에서 서로 힐끔대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 만났을 때, 리현상 캐릭터를 막 재미있게 가보자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등장 씬도 전형적이지 않도록 짰고요. 각색할 때 구교환 배우를 떠올리면서 여러 컷들을 변주해본 거죠. 전체 컷이 아니라 부분으로만 나오도록도 해보고요.

리현상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리현상은 제 생각에는 어디든 가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 가보기도 했고요. 가진 자인거죠. 그런 사람이 탈주하는 건 재미가 없죠. 제가 인상 깊게 본 한 소설가가 소설 창작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한 게 있어요.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소설을 쓰는 것 뿐이라는 이야기였죠. 규남은 달리는 것 밖에 없어요. 가진 게 없으니까요.

 

북한을 너무 선하게 그린 느낌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봤던 개념이 아직도 기억나요. 사실주의, 인상주의/표현주의, 추상주의가 딱 써 있고요, 그 아래 그림에 사실주의에는 누가 봐도 나무가 있었고, 추상주의에는 나무인지 냉장고인지 모를 그림이 있었어요. 중간에는 나무인 듯 하면서도 냉장고 같은 그림이었죠. 그게 커서도 저한테 굉장히 크게 남았나봐요. 「탈주」는 인상주의 또는 표현주의인 셈입니다. 만약 본 관객의 관점이 사실주의라면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제 의도는 북한 이야기를 보여줬는데, 관객에게 아, 이게 자신의 이야기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거였죠. 제 안에는 현상도 있고 규남도 있어요. 이입하는 대상은 관객마다 다른 거니까요.

자연 상태 그대로의 DMZ 풍광, 아름다운 은하수 등 영화 색감이 너무 좋습니다.
촬영감독, 조명감독이 정말 빛을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이 영화가 매혹적인 악몽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인상주의나 표현주의 회화들처럼요. 그분들 덕분에 ‘때깔’이 다른 영화가 나온 것 같네요.

 

매혹적인 악몽이라고 말씀하셔서요. 제가 보기엔 꿈이나 환상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리현상에게 피아노를 알려주는 선우민(송강)이 유령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휴전선 부근에 여자끼리 모여사는 마을은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좀 더 나가면 동혁(홍사빈)까지도 실존하지 않은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미칩니다.
네, 맞아요. 학생 시절에 만든 단편 중에 음악을 하고 싶어서 탈북하려는 사람 이야기가 있어요. 영화 시작하자마자 기타 하나 매고 한국에 온 거죠. 락음악을 하려고 떠돌다가 잘 안 되니까 무작정 공중전화부스로 들어가 전화를 하는 겁니다. 어디 전화할 사람이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북한에 있는 자신이 전화를 받는 거예요. 주변에서 욕 많이 먹었죠.(웃음) 그런데, 제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그게 제 한계일지는 모르겠지만, 선우민도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말씀하신 여자들만 모여사는 마을은 유랑민인데, 실제로 북한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체제를 벗어나서 자급자족하는 부류가요. 제가 아는 건 꽃제비밖에 없어서, 너무 그렇게 들어가면 리얼해지고, 남자만 나오는 것 같기도 해서.(웃음). 개념적으로 ‘유랑’이라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제목이 ‘탈주’니까요. 탈주가 쉽게 이뤄지지 않고, 끝나지 않고 유랑하게 되는 건데요. 대사에도 있어요. 우리 살길 따라 떠나온 거지, 도망이 아니라고 하는.

독립영화로 시작하셨고, 배우도 하셨고요. 이제는 성공적으로 상업영화에 안착하셨어요. 상업영화는 이렇게 찍어야 한다는 어떤 규칙들을 알게 되셨나요?
처음 상업영화를 할 때, 누구도 ‘이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해준 적이 없어요. 그래도 상업영화니까, 왠지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그 전에 저런 설정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말도 안 되지만 코미디도 넣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한두 편 경험하면서 알게 됐죠. 내가 그때 굳이 왜 그랬을까? 물론 상업영화판에서 밥은 먹고 살려면 왠지 그래얄 것 같다는 마음이 있었단 거죠.

 

요즘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 영화는 누구를 위한 영화인가가 더 중요해졌죠. 대부분 영화는 대중, 관객을 위한 거라고 하는데, 대중, 관객은 불특정 다수잖아요? 그러면 감정적 만족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다가가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대중적 화법을 하지만, 저 역시도 재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이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경계는 없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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