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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올바른 예의(禮義)를 나타내는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그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아마도 누구나 같은 느낌일 것이다. 예의라고 해서 삼강오륜에서 요구하는 그런 예(禮)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예컨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도 예의라면 예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방송대는 나이를 불문하는 학우들의 배움터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대에서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우들이 향학열을 불태우며 멋진 레이스를 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어느 대학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그 속에서 함께 공부하는 우리 모두는 친구다.


친구(親舊)는 참 좋은 단어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말하는 아주 친근감이 드는 말이다. 하지만 친구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진정성을 가진 교우가 되기 위해서는 많이 노력해야 한다. 같은 학년의 반 친구(classmate)라고 해서 나이 관계없이 매너(예의)가 무너진 행동으로 ‘야! 너!’라고 부르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친구’라고 할 수가 없다.


친구라는 말의 깊이에는 ‘무례함’이라는 단어가 배제된, 상호 매너를 겸비한 관계의 의미가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서 서로가 ‘옛(舊)’ 친구로 만들어가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서로 간에 매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공감하는 예의와 배려를 가리켜 적은 돈을 투자해서 목돈으로 돌려받는 것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것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상경하애(上敬下愛) 정신을 고취해야 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못다 한 학업을 잇기 위해 입학한 학우들이 동생이나 아들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들을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는 지난 1학기를 마치면서, 나이 든 학우들이 자신보다 어린 학우들에게 막 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보는 자리에서도 ‘막 대하는’ 태도는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는 학우들에게 그런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다.


물론 많은 학우들이 좀더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인생 후배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으려고 방송대에서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신·편입학한 학우들이라면, 자신보다 어린 학우들에게 더더욱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한다. 거만한 말투로 지시나 명령을 해서는 상호 대등한 관계, 친구의 관계가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학우들 대부분은 서로 존중하며 예의 있게 행동하지만, 극히 일부의 학우들이 그러한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는데 상호 존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거침없는 ‘화끈한’ 기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은 원래 사회적인 동물이라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보여도 안으로는 인간관계 문제로 곪고 곪아 정신과를 방문하고 약물을 복용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게 현대 사회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상호 친밀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나이와 선후배 관계를 떠나 ‘○○○ 학우님, ○○○ 학우님’ 으로 서로를 부른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 좋을까. 필자부터라도 이를 실천하려고 한다. “사람의 매너는 자신의 초상화를 보여주는 거울이다”라는 괴테의 명언을 떠올리면서, 우리 모두의 관계가 아름다운 교우 관계로 승화(昇華)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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