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동방 세계로 진격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소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무찌른 후 다리우스 3세의 왕좌에서 보물 상자를 마주했다. “여기에 뭘 보관해야 할까?” 그가 물었다. 부하들은 보석, 향수, 향신료, 전리품을 들먹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을 상자에 보관하라고 명했다. 그건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 베개 밑에 단검을 넣고 『일리아스』를 품에 안은 채 잠들곤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책 속 영웅들을 닮아가는 꿈을 꾸었다. 알렉산드로스가 공포한 첫 번째 칙령도 ‘지구는 나의 것이다’였다. 그는 헬라어, 히브리어, 이집트어, 페르시아어, 인도어로 쓴 책을 모아 도서관에 채웠다. 그건 세상을 소유하는 또 하나의 정신적 방식이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은 세 가지 코드를 품고 있다. 제1 코드는 꼽추와 집시 여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제2 코드는 미추(美醜)의 개념, 제3 코드는 이미지와 문자의 격돌 현상이다. 소설에서 제3 코드와 관련해, 이성과 인문 정신의 대리자인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의 독백은 의미심장하다 못해 세기적인 예측에 가깝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즉 책이 성당 건물을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 문자를 통한 정신 해방이 인간이 신을 거역하게 될 거라는 성직자의 불안이 읽힌다.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책(건물)이 문자로 만들어진 책으로 전환되는 미디어 환경의 격변을 암시하고 있다.

제자들에게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차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책 덕분이다.

좋은 책부터 읽어야 한다.
안 그러면 영영 읽지 못한다.


빅토르 위고는 이것을 천사 레지옹이 600만의 날개를 펴는 것을 보는 참새의 당황과도 비슷하다고 비유한다. 고딕 성당은 돌과 유리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구텐베르크의 활자발명 이전에는 건축이 지배적인 문자요, 인류 보편적인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책이라고 봤다. 그래서 ‘인류의 위대한 시, 건물, 작품은 인쇄되리라’라고 말한다.


독일 베를린의 베벨 광장 바닥에는 유리창이 있고 그 안을 보면 빈 책장이 있다. 1933년 5월 10일 밤, 책 2만여 권의 화형식을 한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한 조형물이다. 그 옆에 “책을 불사르는 곳에서 결국 인간도 불태워질 것”이라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글을 새긴 동판이 있다.

 

우리는 내 인생 하나 겨우 산다. 그런데 머리로 떠나는 여행인 독서를 하면 다른 삶들을 경험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 곁에 가볼 수 있다. 이게 엄청난 경험이다.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감동받는다. 종이책을 읽을 때의 독해력이 디지털 기기로 읽을 때보다 여섯 배에서 여덟 배 더 낫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디지털 텍스트는 언어 이해의 질이 낮고, 훑어 읽고 마는 경향이 있다. 감동의 깊이도 얕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3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 13세 이상 독서 인구는 48.5%이다. 100명 중 51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책등이 지붕처럼 펼쳐지고, 책갈피가 없으면 쪽 모서리를 접어두고, 언어로 만든 ‘석순처럼 세로로 쌓아 두는’ 책은 약 2,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그동안 책에 관한 한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는 강박적 충동은 없었다. 오늘날 종이책과 전자책이 공존하듯이 두루마리와 페이지 책은 수 세기 동안 공존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왕실 기록 보관자는 여전히 ‘기록 보관관(Master of the Roll)’으로 불린다. 프롬프터가 없던 중세 연극 배우들은 공연에서 두루마리를 기억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했다. 여기에서 배우의 역할(role)이란 말이 파생했다.


두루마리는 우리의 전통과 말(言), 컴퓨터와 인터넷에 기억으로 살아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아직도 두루마리 형태의 졸업장을 수여하고 있다. 코덱스(codex)를 라틴어의 ‘volvo’(돌리다)에서 유래한 ‘volume’(권, 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어 ‘scroll’은 마치 두루마리를 볼 때 그랬듯이 화면 위의 글을 상하로 움직이는 동작을 일컫는다. 최근에 TV 화면을 둘둘 말아서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형식의 변화를 보면 하나의 형식은 다른 형식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고 전문화했다. 최초의 책은 멸종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책은 수저나 망치, 바퀴, 가위와 같다. 한 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물건이다. 형태와 재료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책의 기능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책은 기술혁명으로 멈추게 할 수 없는 지식과 상상의 바퀴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며,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 쟁기와 검은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사뭇 다르다.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란 점에서 인간이 창안한 다양한 도구 중 가장 뛰어난 것임이 틀림없다.


‘리케이온’을 설립하고 제자들에게 지혜로운 자와 무지한 자의 차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책 덕분이다. 좋은 책부터 읽어야 한다. 안 그러면 영영 읽지 못한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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