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나물 리뷰]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프렌치 수프」(감독 트란 안 홍)

“이 소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해보겠니?”
“소갈빗살, 훈제 베이컨, 홍피망, 버섯, 회향, 토마토, 오렌지, 와인, 파슬리, 타임, 월계수잎, 커민, 노간주나무열매, 정향... 그게 다인 것 같아요.”

프랑스에 ‘장금이’가 있다면 이런 아이였을까? 지난 6월 19일 개봉해 예술영화로는 드물게 4만 관객을 돌파한 「프렌치 수프」(감독 트란 안 홍)의 한 장면이다. 고작 열 살이 갓 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폴린(보니 샤뇨-하부아)의 대답에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마침내 후계자를 찾은 듯한 미소를 띠며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대화를 나눈다. “세 살에 절대 음감을 갖고, 다섯 살에 악보를 읽을 순 있어요. 모차르트처럼 말이죠. 하지만 마흔 전에 미식가가 될 수는 없어요. 그런 소중한 재능을 개발하지 않는 건 낭비죠.”

 

1924년 원작 소설에 로맨스 더해

「프렌치 수프」는 마르셀 루프의 1924년 소설 『도댕 부팡의 삶과 열정』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소설에서는 요리사 외제니가 죽은 뒤 미식가 도댕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영화에서는 외제니의 캐릭터에 살을 더해 20년간 함께 요리를 만들어온 파트너 외제니와 도댕의 로맨스로 각색됐다. 도댕이 넘치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이를 현실 요리로 구현하는 것이 외제니의 일이다. 외제니의 수고로움으로 탄생한 근사한 식탁에는 도댕의 친구들이 늘 함께한다. 한 편의 작품과도 같은 만찬이 끝나면 그들은 지하 요리실로 내려와 외제니에게 “오늘 역시 멋진 식사였다”라고 찬사를 늘어놓으며, 궁금했던 요리법을 묻는다.

프랑스 영화답게 음식에 대한 찬사를 그저 요리를 나열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첫 장면을 새벽녘 채소밭에서 식재료를 하나하나 따는 외제니의 모습으로 설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영민하다. 식사의 첫 번째 전제 조건인 농부의 노동에 대한 성스러움을 부여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의 모든 장면에서 고전 명화들이 떠오를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된 미장센부터, 고기 지글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는 배경음악의 부재를 잊게 할 만큼 영화의 사운드적인 측면까지 완벽히 커버한다. 영화는 미식에 대한 러브레터를 넘어 삶과 계절의 변화에 대한 진정한 찬사다.

 

식재료를 따는 밭에서부터 지하실 요리 장면 그리고 식사 장면까지 이어지는 오프닝에서 기자는 감히 단언한다. 조용한 극장 안, 옆 관객의 침 삼키는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자동차는 독일, 건축물은 이탈리아, 음식은 프랑스’라는 말이 아무리 옛말이라고는 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게 고스란히 느껴진다. 프랑스 음식이 왜 전 세계인의 눈과 입과 코를 사로잡았는지.

 

“결혼은 디저트부터 시작하는 만찬”
이참에 왠지 스크린 너머로 냄새가 번져올 것만 같은 영화 속 프랑스 요리들을 소개해 보자. 고기와 야채를 푹 끓인 뒤 국물을 헝겊으로 걸러낸 맑은 수프 ‘콩소메’(consomme de volaille), 가벼운 페이스트리의 가운데를 파내 고기, 해산물, 야채 등을 소스와 함께 채운 후 뚜껑을 덮은 ‘볼로방’(vol-au-vent), 쇠고기와 당근, 감자를 약한 불에서 장시간 끓인 프랑스 국민 수프 ‘포토푀’(pot-au-feu), 너무 맛있어서 신 몰래 먹었다는 맷세 요리 ‘오르톨랑’(ortolan)….

음식에 관한 배우들의 주옥같은 상찬들은 또 어떠한가. “인간은 갈증이 없이 마시는 유일한 동물”, “와인은 만찬의 정신. 고기와 채소는 물질”, “신은 물을 창조했고, 인간은 와인을 창조했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별의 발견보다 행복에 더 크게 기여하죠”, “결혼은 디저트부터 시작하는 만찬”, “최초의 부부인 아담과 이브도 그랬어요. 모든 건 그들이 먹은 무언가로 시작되죠”. 이쯤 되면 극장을 나설 때 주변의 프랑스 음식점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프렌치 수프」 연출은 베트남계 프랑스인 트란 안 홍 감독이 맡았다. 1993년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로 제4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고, 두 번째 영화 「씨클로」(1996)로는 제5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단숨에 거장 반열에 올랐다.(우리에겐 삽입곡 「creep」으로 유명하다) 트란 안 홍 감독은 「프렌치 수프」로 30년 만에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빛과 색채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의 시인’임을 한 번 더 증명했다.

 

그저 음식 영화인 줄 알았는데, 후반부로 가며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도댕과 외제니는 20년째 한집에 살고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외제니가 병에 걸리며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도댕은 ‘드디어’ 외제니에게 청혼한다. 인생의 가을, 황혼기를 맞은 두 사람은 채소밭 한편에 친구들을 초대해 소박한 결혼식을 올린다.

‘화양연화’라기에 너무나 짧은 부부로서의 삶. 외제니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귀족의 신분으로 요리사를 대했던 도댕은 이제야 오로지 한 여인만을 위한 식탁을 준비한다. 힘들지만 최후의 만찬 하나하나를 음미하려 애쓰는 외제니를 보던 도댕이 드디어 고백한다. “20년 동안 매번 당신이 잠든 방문 앞에 가서 손잡이만 잡다가 돌아왔다고, 행복은 욕망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외제니는 이틀밖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이 없었다며 웃는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에게 나는 요리사였나요, 아내였나요?” “요리사요”라며 자신의 대답에 만족해하는 한없이 앳된 소년의 얼굴을 가진 중년의 요리사여! 그녀가 20년 동안 결혼을 거절한 이유는 결혼과 동시에 도댕과의 관계가 깨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여기서 가부장제까지 언급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남자, ‘꾸준하게’ 어리석다. 외제니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를 꼭 닮은 요리사를 찾기 위해 헤매는데, 외제니가 이미 후계자로 점찍은 폴린을 가르칠 요리사가 필요하다는 명분이다. 남자는 결코 여자가 하는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외제니에게는 도댕의 요리사로 함께 그리고 홀로 보낸 20년 세월이 화양연화였을 수도 있겠다.

 

영화보다 더 재밌는 사족들
영화 외적으로도 재밌게 읽힐 부분이 많다. 사족 1. 우선 주인공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와 브누아 마지멜은 실제 부부였다. 1999년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대배우와 10년 연하의 신인 배우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 2003년 이혼 후 20년 만에 「프렌치 수프」에서 재회한 것. 이번 만남을 두고 줄리엣 비노쉬는 “모든 배우는 자신의 옛 연인과 한 번씩은 영화를 찍어봐야 한다. 이 영화는 그와 내가 시도한 일종의 화해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딸 ‘하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하기도. 과연 ‘프랑스적’이란 말밖에는.

사족 2. 미슐랭 2, 3스타 식당의 셰프 512명이 꼽은 세계 최고의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깜작 등장한다. 그것도 유라시아 왕자의 식탁을 책임지는 요리사로! 가니에르는 1997년 파리 중심에 위치한 호텔 발자크에 자신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오픈한 뒤 현재까지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며 홍콩, 상하이, 도쿄, 서울까지 진출해 레스토랑을 열었다. 6년 전 트란 안 홍 감독이 그의 파리 레스토랑에 방문하면서 이번 영화까지 인연이 이어졌고, 「프렌치 수프」의 요리 감독을 맡으며, 프렌치 퀴진(요리)의 정수를 보여준다. 100% 실제 요리로 채워진 촬영 현장에서 ‘컷’ 이후에도 계속해서 먹어대는 배우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후문.

 

마지막 사족. 기자는 이 영화를 보며 외제니와 도댕의 황혼기의 사랑, 미식가 친구들의 우정, 음식을 향한 열정 등 영화의 전부가 좋았지만, 외제니의 조수 비올레트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외제니가 만든 모든 음식을 처음 맛볼 수 있었으니!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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