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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앞두고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기다린다. 첫 번째 영화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 현해탄을 건넜던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조선인 여공의 노래」(감독 이원식)이다. 두 번째 영화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수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관동대지진을 다룬「1923 간토대학살」(감독 김태영·최규석)이다. 두 영화 모두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들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지만,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과 결은 완전히 다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조선인 여공의 노래」
제79주년 광복절이 다가온다. 우리는 독립을 위해 몸을 던진 분들과 일본군 위안부, 강제 징용자를 추모한다. 하지만 잊힌 사람들도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현해탄을 건너 방적공장에서 일하던 조선인 여공들이다. 8월 7일 개봉하는 영화「조선인 여공의 노래」(감독 이원식)는 처음으로 이들을 스크린에 소환했다.

영화의 출발점은 이원식 감독이 2017년 오사카 여행 중 수상한 붉은 벽돌 담장을 발견하면서였다. 선명한 십자가 무늬가 일정 간격으로 새겨져 있는 담벼락. 귀국 후 조사해 보니, 방적공장 담장이었고, 십자가 무늬는 조선인 여공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늘어뜨려 고정하는 기둥을 박은 흔적이었다. 눈물이 흘렀다. 일본이 군수산업과 방적산업으로 그야말로 호황을 누린 이면에는 24시간 2교대로 일한 조선인 여공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갓 열 살을 넘긴 소녀들이 폭력과 차별 속에 살아야 했던 1910~1940년대 오사카 방적공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월급을 받아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하면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한 배급으로는 도저히 주린 배를 채울 수 없어 정육점에서 내다 버린 내장을 주워다 구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은 조선인 여공들을 ‘호루몬’(오사카 방언으로 ‘쓰레기’), ‘조선 돼지’라고 불렀다. 오늘날 오사카 명물 요리인 ‘호루몬’(내장 요리를 통틀어 일컫는 말)의 탄생 비화다. 이 감독은 영화에서 이런 사연을 조명하며 조선인 여공의 처지를 호루몬에 비유했다. 처음엔 쓰레기처럼 보였지만, 훗날까지 살아남아 당당히 이름을 높인 모습이 정말 그렇다. 감독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이 나오는 지점이다.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 형식을 차용한 시퀀스를 삽입해 이해를 돕는다. 재연 배우 역과 더불어 극을 이끌어가는 프리젠터 역할까지 함께 맡은 재일교포 4세 강하나 배우는 “어쩌면 친구의 할머니일 수도 있는 생존 여공들을 만나면서 많이 놀랐다. 재일교포 1세대든 4세대든 여전히 차별과 폭력을 겪고 있는데, 이렇게나 힘든 상황에서도 너무도 밝고 긍정적으로, 또 당당하게 살아온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좋은 에너지를 얻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영화에는 당시 오사카 방적공장에서 일한 생존 할머니 여공 3명이 출연해 당시를 증언한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많은 영화 중「조선인 여공의 노래」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기존 영화들이 재일조선인이 겪는 차별, 아픔에 초점을 맞췄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주체적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조선인 여공들의 모습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쟁의 장면이 특히 그렇다. 조선인 여공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그들의 급료를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남성 친일 조직 ‘상애회’에 맞서 여러 번 파업했다. 한번은 부당한 대우를 받던 일본인 여공을 위해 쟁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의 내레이션은 당시 모습을 기록을 빌려 이렇게 묘사했다. “쟁의는 결국 실패했고, 조선인 여공들은 해산했다. 그날 조선의 딸들은 모두 선명한 빨간색 댕기를 매고 있었다. 그녀들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승자처럼 당당했다고 한다.”

 

 

「1923 간토대학살」
관동대지진 직후 시작된 조선인 학살을 다룬 첫 다큐멘터리 영화「1923 간토대학살」(감독 김태영·최규석)이 8월 15일 광복절에 개봉한다. MBC 출신의 베테랑 다큐멘터리스트 김태영 감독이 연출과 제작을 맡아 묵직한 고발 다큐멘터리로 완성했다. 내래이션은「부산행」,「서울의 봄」 등에서 돋보이는 악역으로 분했던 김의성 배우가 맡았다.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도쿄를 포함해 인근 지역에 10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 이재민은 340만 명으로 추산한다. 영화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9월 1일 저녁부터 당시 일본 정부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자 조선인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기 시작했다는 증언으로 시작한다. 조선인이 방화를 벌였고, 폭탄을 투척했으며,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근거 없는 괴소문이 유포됐다는 것이다.

 

영화는 묻는다. 도대체 누가 그런 괴소문을 퍼뜨린 것인가? 대지진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일본 정부는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킬 희생양이 필요했고, 죄없는 재일조선인이 바로 혐오의 대상이 됐다.

 

과연 그럴까? 영화는 철저히 사료를 제시하고, 일본의 시민단체 ‘봉선화’를 비롯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 등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삼는다. 당시 일왕이 계엄령을 승인했고, 군, 경찰, 자경단이 조선인 대학살에 협력했음을 밝혀낸다.

 

영화에는 당시 일본에 체류했던 외국인들의 증언이 다수 공개됐는데, ‘일본인이 부둣가에서 조선인 여성의 시신을 죽창으로 쑤시고 있는데, 배가 갈라져 6~7개월 정도 되는 태아가 내팽겨쳐져 있었다’는 영국 장교의 사진 자료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당시 <독립신문>은 조선인 6천661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사망자 수를 포함하면 훨씬 많은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일본에서 공개된 기록들에는 지역별로 십수 명 수준이다. 또한 현 일본 총리를 비롯한 다수 정치인들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사과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 영화에서 되풀이된다. 올해로 대학살이 일어난 지 101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101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1923 간토대학살」은 단순히 반일감정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학살당한 재일조선인들의 기록을 추적하고 후손들을 대신해 40년 넘게 위령비를 세우는 일본의 시민단체를 보면 감사함을 넘어 반성까지 하게 된다. 영화는 지난 5월 7일 한국 국회에서, 같은 달 13일에는 일본 국회에서 상영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한일 양국이 아픈 역사를 어떻게 짚어가야 할지,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영화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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