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배우가 관객에게 서사를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대사다. 몸짓과 손짓으로도 감정을 전할 수 있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거대한 스크린에 클로즈업된 얼굴과 눈빛만으로도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전도연이 그런 배우다.

 

「접속」부터 「너는 내 운명」, 「인어공주」, 「밀양」을 거쳐 최근 「일타스캔들」과 「길복순」까지, 30년 넘는 세월 동안 스크린, 브라운관 그리고 OTT에서 최고의 여배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도연 배우가 올여름 극장가로 돌아왔다. 8월 7일 개봉한 「리볼버」(감독 오승욱)에서 모든 비리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다녀온 전직 형사 ‘하수영’을 연기한 전도연 배우는 고요하게 끓어오르는 분노 그리고 목적을 위해 직진하는 독기를 무표정한 ‘얼굴’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제68회 칸 영화제에 초청된 「무뢰한」(2015)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오승욱 감독과 전도연 배우가 「리볼버」에서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오 감독은 “「리볼버」는 ‘얼굴’의 영화다. 장면에 대해 길게 논의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씬의 주요점을 명확하게 짚어 내는 베테랑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이 전하는 폭발적인 감정을 스크린에서 확인해 달라”며 전도연 배우가 탄생시킬 또 하나의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예고했다.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전도연 배우를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리볼버」는 전도연 배우가 오승욱 감독을 옆구리를 찔러 출발한 영화라고 알려졌습니다.
2015년에 「무뢰한」을 찍고 칸 영화제를 갔죠. 그때 약속했어요. 감독님 다음 작품에도 출연하겠다고요. 그런데 연락이 없는 거예요. 밥 사드릴 테니 나오시라고 했죠.(웃음) 좀 유쾌하고 통쾌하고 경쾌한 영화 한 편 만들어보자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이 동의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는데, 작년에 크랭크업하고 올해 개봉했으니 4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렇게 나온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이게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그 시나리오가 맞나요?”라고 되물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는 여자 버전의 「무뢰한」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감독님의 유쾌와 상쾌는 저와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웃음)

 

하수영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욕망과 꿈이 있는 인물이에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정당하지 못한 일들을 하기도 하지만, 그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난 후 내 몫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할 줄 아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하수영은 잘못된 사랑을 하면서도 위험한 꿈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교도소 출소 후의 수영은 모든 걸 상실하고 약속한 대가만 받아야겠다는 목표 하나만 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거죠.

상실감, 분노 모두 무표정한 얼굴로 표현하더라고요.
제가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사만, 똑같은 표정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이게 맞나 의심이 들더라고요. 감독님께 끊임없이 물어봤죠. 전작에서는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는데, 이번엔 감정을 좀 배제하면 어떨까 했어요. 그 결과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건조한 모습이 나왔죠. 감독님이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어!”라셨는데, 그 말이 굉장히 통쾌했습니다.

 

오 감독은 「리볼버」를 ‘얼굴’의 영화라고 했는데, 여배우로서 스크린 가득 주름살까지 보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샷’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요?
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오든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예뻐 보이든 거칠게 보이든 차갑게 보이든요. 오히려 하수영의 감정 표현이 잘 될까에 대한 고민을 더 했죠.

후반부 절 장면이나, 부둣가 엔딩 장면을 보면 하수영의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그게 아마 ‘오승욱표 영화’의 특징인 거 같아요. 오 감독님에게 하수영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었던 거죠. 오 감독님 영화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이 잘 묻어난 엔딩 장면인 거 같아요. 영화 끝나고 나면 술 한 잔 ‘땡기게’ 하는?(웃음)

 

이제는 배우들과의 호흡에 대해 여쭤볼게요. 앤디 역은 지창욱 배우가 맡았죠. 첫 호흡인데 어떠셨나요?
지창욱이 어떤 배우인지 궁금했는데, 굉장히 성실하고 고민도 많이 하고, 상대 배우의 연기를 맞춰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도 하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제가 과감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웠어요.

 

정 마담 역의 임지연 배우와는요?
하수영이 교도소에 2년 복역하고 출소하는 날, 정 마담이 차를 타고 마중을 나와요. 차 문을 열고 마치 팔랑거리는 나비처럼 “언니!”라고 하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었어요. 그 순간 굉장한 에너지를 받았고, ‘저 안에서 난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특별출연한 이정재 배우와는 「하녀」 이후 오랜만에 만나셨습니다.
이정재 배우는 정말 한결같은 사람인 거 같아요.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늘 젠틀하고 변함이 없어요. 언제, 어느 장소에서 만나도요. 사적으로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닌데도, 그냥 이정재 배우가 촬영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더라고요.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특별출연으로 했는데, 이정재 배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나요?
원래 「무뢰한」의 남자 주인공 ‘재곤’ 역할을 이정재 배우가 하기로 했었어요. 부상 때문에 못하게 됐고, 김남길 배우가 맡았죠. 아마 그때 감독님께 좀 마음의 빚 같은 게 있었던 걸, 이번 특별출연으로 갚은 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웃음)

 

인물 군상도 다양하고 핫한 배우들도 많이 나오는 영화에요. 특별히 인상 깊거나 기억나는 씬이 있다면요?
저는 제가 제일 ‘핫’하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사실 「리볼버」의 서사는 단순해요. 이걸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배우들의 힘이죠. 수영이 약속한 돈을 받으러 인물들을 찾아 다니면서 다른 색깔들이 영화에 입혀지거든요. 감독님이 “이 영화는 배우들의 향연”이라고 말씀하신 이유일 겁니다.

 

「리볼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곰곰히 생각 후) 약속, 아닐까요? 사실 이 영화는 큰 사건이나 대단한 액션이 있는 영화가 아니에요. 하나의 이야기밖에 없죠. ‘내 몫은 받아야겠다’라는 그 약속이요. 서사가 약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들의 얼굴에서 그 서사가 다 느껴져요. 그만큼 배우들이 채워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길복순」에 이어 액션 영화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리볼버」에서는 액션 준비를 안 하셨다고요?
허명행 무술감독님, 그러니까 이제는 「범죄도시 4」로 데뷔한 감독님이죠. 「길복순」을 보셨는지 “그 정도면 촬영 전에 따로 준비할 건 없을 것 같고, 현장 와서 가볍게 동작만 익히면 되겠다”고 하셨어요. 시간이 흘렀는데도 몸이 기억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오히려 「길복순」 때보다 몸이 더 잘 풀려 있는 느낌?(웃음)

 

한 인터뷰에서 ‘완벽주의 성향’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의견이 맞지 않을 경우 감독과 어떻게 조율하는 편인가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모든 걸 감독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기술적인 부분을 잘 모르기도 하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일단 하겠다고 결정하면 믿고 맡기는 편이죠.

 

필모그라피가 이제 한 페이지를 넘어갈 정도로 길어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연기의 원동력이 있다면요?
매너리즘에 빠질 만큼 뭔가를 대단하게 해보지 않아서요.(웃음)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고 해서 매너리즘에 빠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반복되는 일을 계속하지만, 매번 새로운 배우, 스태프를 만나요. 그러니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어?’하는 생각은 못 해본 거 같아요.

 

그래도 사람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잖아요. 오히려 뭘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죠. 해보지 않은 게 더 많아서 스스로를 괴롭힐 때도 있고요. 어느 순간 ‘이건 내 욕심인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길이 있어야 나갈 수 있는데, 길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 길을 바라고 찾는 건 욕심이 아닌가 하는.

 

그런데 길이 아니라 생각했던 게 길이 된 경우도 있어요. 뭔가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길이 아니라 여겼던 것도 길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렇게 차차 한 작품씩 찾아가는 것 같아요.

지난달까지 무대에 올렸던 연극 「벚꽃동산」도 그런 맥락에서 했던 작품인가요?
제가 일하는 것도 좋아하고 현장을 즐기기도 하지만, 연극 「벚꽃동산」을 하면서 정말 힐링이 됐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할 때랑 다르더라고요. 무대에 오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됐어요. 카메라가 없는 무대인데 오히려 제 시야가 넓어진 거죠. 그전에는 제 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시야가 넓어지면서 상대 배우의 연기도 보이고 받아들이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내년 3월 호주에서 공연할 예정이에요.

 

예전에는 별명이 ‘영화 흥행 공주’였죠. 그런데 「밀양」으로 상을 싹쓸이하면서 무거운 이미지가 부담돼 오히려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다고요. 요즘은 장르적 이미지(액션)가 강해져서 깨나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뭔가를 계획하고 목표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건 아니에요. 말씀하신 대로 영화를 찍기만 하면 관객들에게 사랑 받고 상도 많이 받았죠. 당연한 게 아니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요. 그런데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좀 무겁고, 어려운 배우가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백도 길었죠. 그걸 깨고 싶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누군가 나를 깨주기를, 이곳에서 나를 구해주기를 꽤 오랜 시간 기다렸어요.

 

그걸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다 어느날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굳이 내가 벗어야 하는 건가 하는. 그 모든 것 또한 온전한 저로 받아들이는 시기를 맞은 거죠.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이라기보다는 다 내 것으로 그냥 받아들이려 해요. 어떤 이미지를 깬다는 것의 의미보다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나라고 받아들이면서 가려고 하는 거죠.

어떤 감독들과 작업해보고 싶으세요?
젊은 감독들과 일해보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감독님들도 현장도 젊어졌어요. 세대교체가 된 걸 받아들이기까지 힘들었어요. 그들에게 저는 대선배 또는 어려운 사람이 돼 있었으니까요. 그 갭을 어떻게 줄일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변성현 감독을 만났을 때 “작은 역할이라도 괜찮으니 감독님 작품 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어요. 그렇게 다가서면서 자신을 내려놓으니 「길복순」이 탄생한 거고요. 이번 「리볼버」도 그래요. 오승욱 감독과 10년에 한 작품을 하느니, 저예산으로 짧고 굵게 찍자고 했던 거예요. 나도 놀고 있고, 감독님도 놀고 있으니까.(웃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요즘 영화들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장르적으로 다양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여러 역할이 있겠지만, 저는 늘 사랑 이야기를 좋아해요. 극장에서 정통 멜로 영화를 보고 싶어요. 왜 멜로 영화가 안 만들어질까요? 요즘 사람들은 사랑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걸까요?(웃음) 사랑의 유형이 굉장히 많잖아요. 가슴 아프게 헤어지는 영화도 있는데, 그런 영화는 좀 해봤으니 밝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관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가에 대한, 내 시간에 대한 약속을 지켜”라는 저돌적인 수영의 생각, 모습에 관객들이 많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좋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해 영화가 어마어마하게 풍성해졌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여름만큼 뜨거운 영화 「리볼버」에 많은 관심과 사랑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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