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2015년 「무뢰한」으로 제6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며 세밀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오승욱 감독이 9년 만에 「리볼버」로 돌아왔다. 전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오승욱 감독의 다음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다짐했던 전도연 배우가 긴 기다림에 지쳐 오 감독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준비 중이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미아가 될 뻔했던 오 감독은 ‘도연느님’으로 부르던 전도연 배우의 ‘펌프질’에 새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고, 이정재 배우가 특별출연을 결심하면서 「리볼버」는 마침내 출항할 수 있었다. 8월 7일 개봉한 「리볼버」는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리볼버」는 모든 비리를 뒤집어쓴 채 교도소에 수감된 하수영(전도연)의 이야기다. 2년 후 출소한 수영(전도연) 앞에는 돈을 약속을 한 앤디(지창욱)도, 약속된 대가(집)도 없다. 세상에 내팽개쳐진 수영은 잃어버린 집과 돈을 되찾기 위해 달라진다. 그런 수영을 감시하는지 돕는지 알 수 없는 정마담(임지연)의 등장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오 감독은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몫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여자가 그것들을 돌려받기 위해 한층 한층 단계를 거듭해 나가는 영화다. 그 뼈대에 주인공이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는 이야기로 구성했다. 「리볼버」는 투명 인간에 가까웠던 한 인간의 분투기”라고 말했다.

 

「리볼버」는 기존 범죄 장르 영화와 조금 다르다. 인물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커다란 스크린에 펼쳤다. 전도연 배우는 시나리오에 ‘무표정’이라는 지문을 출소 이후 먼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깊은 상실감 그리고 대가를 저버린 이들을 향한 분노까지 밀도 높게 표현했다. 앤디를 맡은 지창욱은 마치 ‘병들어 있는 황제’ 같은 복합적인 캐릭터를 얼굴로 전했다. “난 딱 요만큼만 언니 편이에요”라는 대사가 착 달라붙는 정 마담(임지연)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은 또 어떤가.

 

이를 두고 오 감독은 “「리볼버」는 ‘강철의 심장’을 가진 하수영의 마지막 얼굴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배우들이 갖고 있는 미세한 떨림의 연기들, 그들이 갖고 있고, 숨기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것들을 표현하는 얼둘들의 향연인 영화다. 영화 보는 내내 그걸 발견하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제작은 「헌트」, 「아수라」, 「신세계」 등 장르 영화에 강한 사나이픽처스가 맡았다. 「무뢰한」에서 오승욱 감독과 합을 맞췄던 박일현 미술 감독, 강국현 촬영 감독, 조영욱 음악 감독 그러니까 이른바 ‘오승욱 사단’이 한 번 더 손을 잡아 스타일리시한 프로덕션을 완성했다.오승욱 감독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전작 「무뢰한」이 관객, 평단의 찬사를 받았는데, 이렇게 차기작이 오래 걸린 이유가 있나요?
그간 준비했던 영화가 잘 안됐어요.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면서 또 1~2년이 휘리릭 지나가기도 했고요. 「리볼버」는 어느 구간에서 막히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방향을 잃거나 하면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리볼버」는 전도연 배우와의 만남에서 출발한 영화니, 4년 정도 걸렸네요.

 

「리볼버」는 어떤 영화인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몫을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여자가 그것들을 돌려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투명 인간에 가까웠던 한 인간의 분투기죠. 어떤 방식을 활용할지 고민을 많이 햇어요. 한층 한층 단계를 거듭해 나가는 형식과 뼈대에 주인공이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는 이야기로 구성했습니다.

 

초반에 정보성 대사가 많이 나오다 보니 좀 느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행히 후반에 이런 부분들이 해소되긴 하지만요. 초반 설정을 빌드업하기 위해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영화 초반 보다가 관객이 떨어져 나가면 안 되잖아요. 액션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없는 일이고요. 정보를 쌓긴 쌓아야 하고, 이걸 배우의 대사나 분위기로 가져가야 하는데, 정말 어려웠죠. 졸릴 법하거나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덜어내기도 하면서 편집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차이나타운」(감독 로만 폴란스키, 1974) 같은 예전 영화들을 다시 찾아봤어요. 이런 걸작도 집중하지 않으면 빌드업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리볼버」가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있는 영화인 「최후의 증인」(감독 이두용, 1980)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개봉을 앞두고 두려움은 좀 있어요. 그래서 초반에 빌드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연출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전도연 배우의 얼굴이었습니다. 관객들이 전도연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마음이 촬영 감독, 편집 감독과도 너무나 잘 통했던 거 같아요. 인물을 그려내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모두 조금씩 색다른 방식을 모색했고, 그러다 보니 독특하고 기묘한 재미가 담기게 됐죠.

 

전도연 배우와는 전작에 이어 두 번째 호흡입니다. 수영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하셨나요?
전도연 배우가 가지고 있는 품격과 품위, 타자에 대한 어마어마한 공감 능력을 생각하며 ‘강철의 심장을 갖고 있는 주인공’의 서사를 만들었어요. 전도연 배우는 장면에 대해 길게 논의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씬의 주요점을 명확하게 짚어 내는 베테랑 배우입니다. 리볼버에는 지금까지 드러난 적 없던 전도연 배우의 얼굴이 담겨 있어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지문에 ‘무표정’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는데, 전도연 배우가 충분히 납득하고 연기해줘서 정말 감사하죠.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전도연 배우의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깊이 같은 것들이 달라졌죠. 좀 더 너그러워졌고, 품위도요. 좀 넉넉해진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또 촬영 현장에서는 선장님이 된 거 같았어요. 모든 스태프들이 전도연 배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재촬영이 거듭될 때는 “감독님, 이걸 왜 또 찍어요!”하면서 웃으니, 모든 스태프들도 전도연 배우의 편이 돼서 힘든 상황들을 넘길 수 있었죠. 아, 그리고 전작 때는 안 그랬는데, 이번에 「리볼버」 하면서는 모니터를 보고 나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파이팅!”하고 나갔는데요.(웃음) 그렇게 계속 격려하는 모습들을 스태프들이 정말 좋아했습니다.

 

“하수영은 품격, 품위를 잃지 않는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죠. 초반에는 경찰이면서도 술집 마담 같은 느낌인데, 후반에서 수영은 잃어버린 품위를 찾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거 형사 시절을 찍을 때 전도연 배우와 캐릭터에 대해 많이 대화했습니다. 지금 수영은 경찰 내부보다는 강남의 클럽, 어마어마하게 큰 기업 같은 장소에 나와 있는 사람이고, 그들 만나며 화장도 진하게 하고요. 어찌 보면 염치마저 잃어버린 타락한 사람이죠. 이미 무뎌진 상태다 보니, 경찰서에 와서도 화장을 짙게 하는 거죠. 그게 한순간에 끝나고 교도소를 가게 됩니다.

 

저는 품격 다른 게 아니라고 봐요. 그렇게 살던 사람이 죄를 짓고 교도소를 가고, 그 안에서 대단히 많은 일을 겪으면서 변하는 거죠. 클럽에서는 예전의 자신과는 다르게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투명 인간이 된 겁니다. 그때부터 하수영은 차근차근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리볼버를 처음에는 거부하는 하수영의 모습에서도 뭔가 그런 점이 느껴집니다.
자신만의 벽, 기준을 지키려는 거죠. 죽어도 자신은 이 총을 쓰지 않겠다는 다짐이랄까요? 그렇다고 버리지는 못하죠. 그래서 저는 그 다음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리볼버를 받기로 결심하자마자, “이거 이제 안 쓰죠?”라며 삼단봉을 가져갑니다. 총 대신 삼단봉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거죠. 총을 쓴다는 건, 지옥으로 빠지는 건데 그걸 끝까지 안 쓰려고 노력한 건 수영이 가지고 있는 품격을 유지하려고 한 행동이라고 봐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하수영이 그레이스(전혜진)와 앤디(지창욱)를 대하는 태도가 있어요. 그 태도에서 하수영이 품위, 격을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전도연 배우가 너무 잘 이해하고 표현해줬죠.

 

삼단봉 이야기가 나와서요. 하수영의 주특기로 검도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경찰이 주인공이니 액션 씬도 필요하잖아요. 우리나라 경찰을 보면 유도도 있고, 검도도 있는데요. 유도는 제가 액션을 만들 자신이 없었어요. 대신 검도를 한다면 뭔가 재밌는 게 나올 것 같더라고요. 검객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면, 청렴결백하다거나 대나무처럼 꼿꼿한 느낌이 있잖아요. 여기에 상대 역인 앤디나 정 마담의 괴팍함이랑 부딪혔을 때 느껴지는 지점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삼단봉은 제가 「킬리만자로」 때부터 매료된 부분이 있죠. 유튜브에서 검도하는 분들이 삼단봉 사용하는 영상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전도연 배우가 삼단봉을 휘두르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엔딩 장면의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처음 시나리오 쓸 때부터 이 영화는 하수영이라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투명 인간 같은 인물을 다뤄보자고 생각했어요. 돈도 없고 집도 없으니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죠. 그랬던 사람이 끝까지 직진하고 맨 마지막에 “이게 나야, 하수영이야”하는 그 얼굴 하나를 바라보고 가는 영화였습니다. 전도연 배우가 시나리오를 읽어 보더니, “다 읽고 나면 술 한 잔 생각나는 영화네요. 꽁치에 소주 먹고 싶어지는”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이거다 싶었어요. 카메라를 갖다 대면 그런 연기를 할 거로 믿었죠. 촬영을 했는데 그냥 그 얼굴이 툭 나왔어요. 너무 복 받은 감독이죠.

 

다른 배우들 이야기도 들어봐야죠. 앤디 역할의 지창욱 배우의 연기는 어떠셨나요?
지창욱 배우가 합류하면서 영화 제작에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캐릭터 고민을 함께 많이 해습니다. 앤디는 강남 클럽이나 회사 회의실에서는 어마어마한 사람이겠죠. 그런데 이 사람이 권력을 잃어요. 돈도 없어요. 그래서 자기 돈도 아니고 타서 쓰거나, 공갈을 쳐서 돈을 융통하죠. 신뢰를 잃고 돈이 없어지면서 앤디 역시 수영처럼 투명 인간 비슷하게 된 겁니다. 뭔가를 계속 하려고는 하는데 잘못된 길로만 가요. 자승자박이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깡패를 쓰지도 못하고, 강남 뒷골목에서 싸움이나 좀 했던 애들을 섭외하는 거겠죠. 정작 싸워야 할 때 게임 하느라 폰 배터리가 다 돼서 어둠의 숲속을 헤매는 장면도 재밌었고요.

 

원래 시나리오보다 더 큰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이야기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예를 들어 주신다면요?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존재감이 약할 수 있었는데, 지창욱 배우가 앤디 역을 맡으면서 확 커졌어요. 얼굴, 몸짓이 눈에 들어오니 원래 시나리오 비중을 뛰어 넘어버리더라고요. 그랬더니 다른 배우들 연기까지 좋아졌고요. 영화 후반부에서 산속으로 들어오는 씬을 찍을 때 살짝씩 움직이는 장면이나, 수영의 삼단봉을 다리에 맞고 활처럼 휘어지는 장면도 너무 좋았어요. 후시 녹음을 할 때도 활처럼 휘어지는 소리가 나도록 해달라고 했는데, 그마저도 기똥차게 해주더라고요. 앤디의 전모가 드러날 때의 그 웃음에는 마치 병들어 있는 황제 같은 복합적인 캐릭터를 잘 표현했죠. 놀라웠고 고맙다는 말을 항상 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았어요. ‘산에서부터 속초 앞바다까지 업고 가겠다’라고 말할 정도로요. 지창욱 배우가 들어오면서 「리볼버」의 살집이 더 좋아졌어요.

극찬이네요. 정윤선 마담 역을 맡은 임지연 배우는 어땠나요?
지창욱 배우가 「리볼버」라는 배를 띄울 수 있는 역할을 했다면 임지연은 큰바람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줬어요. 이미 「글로리」 때부터 눈여겨봤어요. 처음 만나서 정 마담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 “배트맨과 로빈에서 로빈의 역할”이라고 설명했어요. 로빈은 배트맨의 단순 조력자가 아니라, 배트맨에게 중요한 의식을 심어주는 캐릭터죠. 주종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라고 설명하니 너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출소한 수영을 만나러 가는 첫 장면에서 차문 열고 나오는데, 하늘이 도우셨는지 바람이 불어서 머릿결이 확 날리더라고요. 아, 됐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정 마담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가면이 털썩 하고 떨어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난 딱 요만큼만 언니 편이에요”라는 그 표정과 연기는 전적으로 임지연 배우에게 맡겼는데,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너무 잘 소화했습니다.

 

이정재 배우가 임 과장을 특별출연하면서 영화가 중심을 잡는 것 같더라고요.
이 영화가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배우입니다. 이정재 배우와는 너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사이죠. 예전에는 “형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어?”라고 질문하던 배우였는데, 감독으로 데뷔도 했잖아요. 이제는 감독으로서 고충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거죠.

이정재 배우와 첫 만남은 기억나세요?
「킬리만자로」가 대종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거든요. 시상식에서 처음 봤죠. 그때 이정재 배우가 “아, 이건 (박)신양이 형이 받아야 하는데”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참, 그 전에 「이재수의 난」에서 본 적이 있네요. 저는 이정재 배우에게 팬이라고 말을 건넸고요. 늘 좋았어요. 이제는 이정재 감독이 만든 영화 팬이 됐으니,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웃음)

 

전도연 배우를 비롯해 모든 배우의 색깔이 확실하고, 호흡도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배우들이 시나리오의 가장 근사치 혹은 그 캐릭터일지도 모르는 연기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하죠. 사실 「무뢰한」 첫 촬영에서 전도연 배우에게 느꼈던 게 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머릿속 환상 같은 뿌연 그럼이잖아요. 실제 화면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모르는데, 전도연 배우가 현장에서 새벽에 출근하면서 연립주택 단지를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이걸 시나리오에 썼구나’ 하는 게 느껴져 소름이 돋았죠.

 

그런데 그건 「8월의 크리스마스」 때 한석규 배우에게도 느꼈던 거예요. 건조하게 시나리오를 썼는데 한석규 배우가 마치 피를 토하듯 연기하니 소름이 돋는다고 고(故) 유영길 촬영 감독님께 말씀드렸던 웃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리볼버」에서도 그런 기억들이 많아요.

 

이정재 배우도 특별출연이지만, 정재영, 전혜진 배우도 특별출연이에요. 어떻게 캐스팅하셨어요?
선뜻 하겠다고 해주셨어요.(웃음) 전혜진 배우는 제가 여균동 감독 연출부 때 만났던 인연이 있죠. 선풍기 바람이 부는데 치마가 살랑이는 장면을 보면서 ‘헉, 어마어마한 배우가 나타났다!’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름의 격이 있는 배우죠.

영화 후반부 절 장면에서요, 파쇄석에 그레이스의 하이힐이 박혀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걸 피디가 발견했어요. “저 구두 좀 보세요!”라고 하는데, 전혜진 배우의 하이힐이 파쇄석에 박혀 들어가서 다 찢어진 거예요. 하이힐 클로즈업 장면 보고 편집 감독이 소름 돋았다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레이스라는 여자가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고 늘 그랬듯 하이힐 신고 절에 온 그 상황이 웃기잖아요. 그레이스의 모든 것이 파쇄석 하나로 박살이 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철저히 계산하신 건가요?
그렇다기보다 이렇게 심각한데 웃어야 하나 고민하는 게 좋아요. 「리볼버」에서는 어느 부분부터는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요. 코미디를 하려는 게 아니었고요. 깡패도 아닌 아마추어들이 모이고, 휠체어 한 번 밀어보지 않은 사람이 파쇄석에서 밀어야 하고, 맨날 강남 클럽을 돌아다니던 사람이 휠체어 하나의 의지해 산 깊숙이 들어와 있고…. 이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람들도 불안감을 느끼고, 우쭐해 하는 행동거지에서도 웃음이 터지고 황당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무뢰한」에 비해 좀 가벼운 톤으로 바뀐 거 같아요.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마지막은 하수영의 트라이엄프(triumph, 승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단지 한 뼘의 누울 방과 받기로 했던 돈을 쟁취하는 이야기잖아요. 여기까지 오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쟁취할 때의 허무함이야 물론 있겠지만, 꼭 쟁취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번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이든가요?
영화판 분들은 대체로 ‘영화 같은 영화 만든 것 같다’, ‘오승욱표 만든 것 같다’라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감사했고요.

 

‘오승욱표 영화’를 감독님은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이야기하기 저도 난감한데요. 아무래도 「무뢰한」 보시면서 느끼셨던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장르나 인물들을 표현할 때 조금 더 비틀어서 표현한다고 할까요? 박자를 반 박자 늦게 또는 빠르게 하는 것도 그렇고, 예상하지 못했던 대사를 내뱉는 것도 그런 것 중 하나겠죠.

 

「리볼버」에서 예를 들어 주신다면요?
영화에서 하수영이 앤디를 패러 들어갔다가 나오는 장면이요. 처음 앤디가 있는 술집을 들어갈 때도 하수영 얼굴은 실루엣으로만 보여요. 사운드는 정 마담 통화 소리로 채워지죠. 내려서 앤디가 있는 술집에 들어갈 때도 하수영은 등만 보여요. 앤디 얼굴이 크게 잡힌 다음 컷에서야 “약속한 돈 주세요”하는 하수영 얼굴이 처음으로 나옵니다.

 

앤디를 패고 나오는 장면도 마찬가지예요. 하수영 얼굴은 포커스가 다 나가 있는데, 피 묻은 손바닥은 훨씬 선명하게 나와요. 한참을 가다가 차가 멈추고 정 마담이 “술이나 한잔 해요”라고 하니 그제야 하수영 얼굴이 나옵니다. 편집에서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런 컷들이 ‘오승욱적’이 아닌가 싶어요. 저 역시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리볼버」 관전 포인트를 소개해 주시죠.
배우들이 가진 미세한 떨림의 연기들을 큰 화면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걸 발견하는 기쁨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리볼버」는 얼굴을 특화해 찍은 ‘얼굴의 영화’입니다. 그들이 가진 숨기고 싶은 것 또는 드러내고 싶은 것, 이런 것들에 대한 얼굴들의 버라이어티한 쇼, 그런 얼굴들의 향연으로 보시면 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을 겁니다. 또 반 박자 늦추거나 앞으로 당기는 엇박자의 묘미를 녹여낸 작품이에요. 뒤틀리고 비트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기대하고 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영화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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