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1962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87달러. 당시는 유엔이 하루 세 끼를 해결하려면 국민총소득이 365달러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였다. 하루 1달러가 세 끼 해결하는 데 필요했지만 0.23달러에 불과한 경제력으론 턱 없이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인사말이 ‘식사하셨습니까?’. 이런 질문형 인사말에 거개의 사람이 ‘아~ 네!’라고 답했다. 개중 식사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굶은 사람들이다. ‘보릿고개’는 당시의 식량 사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고독과 자유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나를 개혁하고,
나를 혁신하려면 일정 기간 고독한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1971년 개발한 통일벼(IR676) 덕분에 1979년 쌀 총 수확량은 1960년대 말에 비해 30% 이상 급증했다. 양적으로는 식량 자급이 이뤄졌지만, 사실 이 쌀밥은 맛이 없었다. 공무원에게 급여 중 일부를 통일벼 쌀로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했지만, 이걸 일반미로 바꿔 먹었다. 이때 공무원을 지칭하는 ‘정부미’란 말이 나왔다. 웃픈 이야기다. 1960년대 평균수명은 52.4세였는데, 2023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6세로 OECD 평균보다 3년 길다. 건강은 확실히 먹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 적용을 시작으로 1989년 7월 전 국민에게 확대 시행됐다.『OECD 보건 통계 2023』에 따르면, 한국은 ‘회피가능사망률(Avoidable Mortality)’은 10만 명당 142명이다. 회피가능사망률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통해 회피할 수 있는 사망률을 의미한다. OECD 평균(239.1명)보다 상당 부분 낮다. 하지만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실시된 이후 평균수명이 늘었고, 회피가능사망률이 높아졌으며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는 데 기여한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100세 시대라고 흔히 말하는 것도 이런 데 기인한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나이는 먹기 싫어한다. 아이러니다. 구글의 레이 커즈와일은 150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가 2005년에 펴낸『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TY IS NEAR)』에 이어 최근 THE SINGULARTY IS NEARER(2024)에서도 인간수명 연장에 관해 설파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게 축복인 것만은 아니다. 노년을 괴롭히는 것 중에 가장 큰 게 ‘고독’이다. 오죽하면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하고 2021년 2월엔 일본 정부가 내각관방에 ‘고독, 고립 대책 담당실’을 설치했을까 싶다.


베를린대학교의 개혁자 훔볼트가 말한 ‘고독과 자유(Einsamkeit und Freiheit)’는 나폴레옹 침략 뒤 프로이센의 대학 교육 개혁을 담당한 그의 두 가지 교육 이념이다. 고독과 자유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나를 개혁하고 나를 혁신하려면 일정 기간 고독한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이 말은 노년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혼자 있는 시간에 ‘자기 자신을 잘 데리고 노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독과 자유의 균형적인 삶은 노년 생활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


어떻게 고독을 즐거움이나 자유로 승화할 것인가? 최근 이에 대한 해답을 잘 알려주는 책이 출간됐다.『고독사를 준비 중입니다』(2024. 사진)의 저자 최철주는 올해 82세로 유력 중앙일간지의 편집국장과 방송사 대표이사를 역임한 언론계의 구루(guru)다. 그는 딸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 슬픔에 빠진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서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예비 신부들 틈에서 청일점으로 한식, 중식, 양식 코스를 속성으로 배웠다. 얼마 후 아내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밥은 먹었느냐’고 물어보지 않는 온전히 홀로인 일상에서 자신을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가 독거노인의 생존능력이며 보이지 않는 권력이며 자신감의 표현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는 요리를 가리켜 ‘혼자 사는 이의 치유법’이라고 말한다.


이제 ‘식사하셨습니까?’라는 말은 예전과 다른 상황에서 하는 인사말로 변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부의 화두가 됐다.


튀르키예 서남부 데니즐리주, 히에라폴리스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에는 이런 비명이 있다고 한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 여기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인 빌립보의 무덤도 있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죽는다. 어떻게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죽음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도 말했다. “고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천해지지는 마라. 그러면 당신은 사막 어디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다. 가장 고독한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혼자 잘 살면 된다.”


최철주의 책은 고독과 자유를 향한 죽음학 강의다. 혼자라는 고독과 불안 속에서 스스로 자유의 삶을 향한 여정을 인도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분의 권유로 필자도 1년 남짓의 요리학원을 수료했다. 일독을 권한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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