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독자 기고

지리산을 넘어가던 석양은 천왕봉에 걸려 더욱 붉게 타오른다. 매일 넘어가던 산이건만 오늘은 유난히 힘들어 벌겋게 달아오른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낭만과 여유로운 생활을 애써 즐기며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3년 넘게 그렇게 시골 생활이 무르익어가는데 가슴 한구석은 왜 이리 허한지…. 뭔지 모를 갑갑함이 가슴을 조여오고 있었다. 문득 나는 어디론가 향하고 싶었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갱년기에 오는 방황인가?’ ‘사춘기보다 더 가슴 뜨거운 노춘기가 다가온 것일까?’ ‘매너리즘에 젖은 시골 생활에서 오는 권태기인가?’ 등 별별 잡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고요함, 평화로움. 처음에는 이런 생활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또 삶의 공허함은 끝이 없는 갑갑함으로 다가왔다. ‘허하다’라는 그 짧은 단어로 부족할 만큼 마음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빈 곳을 채우면 채울수록 내면은 더 큰 공간이 생기는 듯했다.

 

살면서 늘 물음표투성이였지만,

방송대 생활은 내 삶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는 지금도 그 ‘물음표’를 인문학을 통해서

 느낌표로 채워나가고 있다.

지식에 대한 느낌표는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도 확장이 된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허한 마음의 공간이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고 느껴졌다. 그러던 중 생각나는 이름, 오빠. 오빠가 1992년 방송대 경제학과를 졸업하면서 나에게도 공부를 권했는데, 그때는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 말을 흘려버렸다.


그러던 중 2009년 나는 드디어 방송대에 입학했다. 그것이 첫 번째 방송대 도전이었다. 그러나 공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변의 말에 그만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지레 겁에 질려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 변한 뒤에 2020년 재입학을 했다. 두 번째 도전이었다. 이번에는 과제물을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다가 또다시 물러서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쉬웠다.


인생 삼세판이라 했던가! 또다시 도전. 이제는 물러서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방송대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내 심장에 ‘쿵’ 하고 와 닿는 문구에 홀렸다. “나이를 묻지 말라!” “출신을 묻지 말라!” “성적을 묻지 말라!” 이 말에 다시 한번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지인들은 “나이 들어 그 힘든 공부는 왜 하냐?”라고 걱정과 관심 어린 격려를 해주었지만, 나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방송대 3차 도전기가 시작됐다. 출석수업을 할 때마다 설레면서도 잘하고 싶어서 긴장됐다. 출석수업을 하면서 배움에 대한 반짝거리는 눈빛은 나를 더 자극했다. 그 자극은 온라인 수업보다 출석수업에서의 집중도를 더 높였다.


그러던 중 일이 생기고 말았다. 출석수업을 듣고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미리 과제를 해두었다.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갑자기 장염으로 1주일간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퇴원 후 이미 마감 기일을 하루 넘겨서인지 과제 제출이 되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 상황이 너무 황당하고 얼마나 속상했던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속이 쓰리다.


기말시험 날짜도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 급한 마음에 기출 문제를 달달 외워 시험장에 입성했다. 하지만 시험문제는 나의 예상과는 확연히 빗나갔다. 교재를 꼼꼼하게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기출문제는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특별한 기억은 시험뿐만이 아니다. 방송대는 전국 선후배 재학생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문화축제, 학술제, 가요제가 있다. 특히 문화축제 행사는 평소 숨어있던 끼와 장기를 펼치는 자리인데, 나도 그 열기에 흥분이 되곤 했다.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가요제에 참가했다. 조금 떨리기도 했지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나는 자칭 방송대 홍보대사다. 지인들을 만나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24개 학과 이름을 달달 외워가면서 입학을 권하고 있다. 나의 경험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정말 열심히 권한다. 또한 학보 〈KNOU위클리〉에서 공부할 힘을 얻고 열정을 느꼈던, 배움에 대한 글들을 사진을 찍어 공유하기도 하고, 행사 사진을 전달하기도 한다. 덕분에 4명의 지인이 나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학우가 됐다.


살면서 늘 물음표투성이였지만, 방송대 생활은 내 삶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나는 지금도 그 ‘물음표’를 인문학을 통해서 느낌표로 채워나가고 있다. 지식에 대한 느낌표는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도 확장이 된다. 특히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방송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소통하면서 인간을 더 알아가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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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c47***
    참 잘하셨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졸업 반이 되셨군요. 저도 비슷합니다.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법과를 공부하다 중단했었습니다. 출석 수업일이나 시험을 주일 날에 시행하다 보니 예배 인도에 차질이 생겨 중도에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은퇴후 다시 용기를 내어 등록을 감행했습니다. 이번에 완주 하려 합니다.
    2024-08-26 06:44:35
  • kore***
    2024-08-14 07:22:56
  • kore***
    2024-08-14 07:22:50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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