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eekly 시네마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였던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가 8월 28일 관객을 만난다. 도발적인 제목의 영화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해 영화로 탄생했다. 2009년 장편 데뷔작 「회오리 바람」으로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 페사로국제영화제 뉴시네마 대상 등을 수상했고, 「잠 못 드는 밤」(2013),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2023) 등에서 일상의 사소한 순간을 포착해 섬세하게 묘사하는 장건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원작 소설이 나온 때는 2015년이다. 장건재 감독은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들른 서점에서 책을 발견했고,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었다. 이듬해 영화 판권을 확보했지만, 캐스팅, 투자에 난항을 겪으며 영화는 근 10년 후인 2024년 개봉하게 됐다. 그 사이 영화에도, 장 감독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장 감독은 “「한국이 싫어서」는 나의 안팎의 목소리가 섞여서 만들어진 작업”이라고 평한다.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은 ‘헬조선’이고, 뉴질랜드는 ‘파라다이스’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소설은 2015년에 나왔고, 영화는 2024년에 개봉하는 시대적 간극에 있어서도 한국이 싫어서 떠난 계나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장 감독은 “2015년의 한국과 2024년의 한국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영화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포착하려고 했던 건 단지 시의성이 아니라, 한 개인의 여정을 통해 변화하는 감각과 인식이었다. 시대가 달라도 영화의 대상은 청년이고, 이 영화는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각자가 저마다의 지옥을 품고 사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모두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변화된 질문이다”라고 말한다. 장건재 감독을 삼청동에서 만났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고아성 배우에게 건내준 시나리오에 ‘35고’라고 적혀 있었다고요. 원작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서른다섯 번이나 고쳐 썼나요?(웃음)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웃음) 일단 소설은 그대로 영화화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였어요. 제가 느꼈던 감정, 감각들을 이식하는 작업이 필요했죠. 그게 각색에서 가장 큰 과제였어요. 처음부터 작은 영화로 출발한 작업이기도 했으니 제작적인 관점에서 선택, 축약할 부분도 있었습니다.

 

원작이 나온 게 2015년이고, 영화 판권을 2016년에 확보했는데요. 초고 작업은 2017년에 끝냈어요.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몇 개 도시로 취재를 떠났죠. 이민을 준비하는 분들, 이민자들을 만나며 현재 목소리를 영화에 이식하다 보니 시나리오가 계속 수정됐습니다.

 

여기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공공기관 지원, 투자, 캐스팅 등을 진행했어요. 말씀드렸듯이 처음에는 컴팩트한 사이즈의 독립영화로 기획했는데, 투자받으려다 보니 엔터테인적인 요소를 가미하게 되기도 했죠. 그러던 중에 코로나19가 터졌고, 촬영지였던 뉴질랜드가 초기 방역의 벽이 굉장히 높았던 까닭에 로케이션 수정도 계속 필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아성 배우가 합류하면서, ‘계나’가 그의 육신을 통해 발화되겠다고 하는 게 느껴졌고 그렇게 시나리오 방향을 잡게 됐습니다. 그때쯤 시나리오가 35고 정도였어요.

 

최종이 몇고인가요?
의미 없을 정도로 많이 고쳤어요. 컴퓨터에 무지막지한 버전의 파일 많습니다.(웃음) 지금 영화가 제가 의도한 바가 고스란히 담긴 버전이에요. 2015년에 출발한 이야기지만, 2024년에 서른을 맞이한 계나처럼 고아성 배우도 서른이 됐고, 한국 사회도 바뀌었어요. 저 역시 개인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영화가 동시대성의 감각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가 지금 제게는 화두에요. 이 영화가 올해만 상영되고 마는 영화가 아니었으면, 시간이 지났을 때도 낡은 메시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죠.

많은 소설이 있었는데 굳이 『한국이 싫어서』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평소에도 한국 소설들을 꽤 흥미롭게 읽는 편이에요. 동시대 한국 사회를 가장 빠르게 포착하는 매체가 소설, 특히 단편 소설 같거든요. 영화는 대중에게 가 닿기까지 물리적인 프로덕션 시간이 필요한데, 소설은 기민하게 한국 사회의 변화를 포착해내니까요. 그렇게 보면,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소설이 제게 왔다’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당시 저는 한국 사회가 가진 고통과 피로감 그리고 생존하는 자로서의 불안함과 막연함을 느꼈던 거 같아요. 물론 저는 40대 후반의 성별 확정 이성애자 남자라는, 어떤 면에서는 기득권, 권력의 위치에 있지만, 한편으로 제가 가진 소수자성도 있는 거잖아요? 각자의 위치에서 이 영화의 다양한 인물들과 접속하면서 자신의 감정이입이라 할까, 동질감이라 할까요. 그게 시간이 지나도, 경향이 변해도 느낄 수 있다면 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각색 작업 중에 장강명 작가를 만난 적은 있나요?
한두 번 뵀어요. 감독으로서 영화의 방향성을 말씀드렸고, 조언을 구했죠. 그때마다 장 작가님은 “소설과 영화는 철저하게 다르다. 감독의 비전이 중요하다”라고 항상 말씀해주셨어요. 소설은 본인이 해낸 작업이고 영화작업은 감독의 작업이란 걸 인식한 거 같아요. 내적인 이야기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으셨고요. 제가 그렇게 봤다면 그런 거라고요. 그게 감독의 업무라고.

 

완성된 영화를 장 작가가 봤나요? 반응이 궁금하네요.
아직 못 보셨습니다.

영화화를 결심하고 소설의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담고 싶었는지 궁금하네요.
소설의 어떤 장면이나 대사라기보다는 소설을 읽으면 느껴지는 이국의 냄새 같은 게 있어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데요, 영화화하면서도 그게 가장 어려웠어요. 어떤 묘사는 글이 더 수월할 수 있거든요. ‘계나’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일상과 삶을 환기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에도 그런 지점들이 있습니다. 묘사하지는 않았지만요. 어찌 보면 제 한계일 수도 있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찾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각색 과정에서 제목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물론 있었죠. 제목이 가진 힘이 아주 크기 때문에, 원작 제목이 오히려 관객이 영화로 들어가는 관문에 선입견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장강명 작가님도 좋은 제목 있으면 바꾸라고 하셨기에 여지가 없던 건 아닙니다. 득과 실 측면을 따져보면, ‘한국에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어’하는 고통의 토로가 되길 바랐던 건 아니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이 에센스를 피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에 제목으로 그대로 가져갔어요. 피디 역시 제목의 결을 살려서 영어 제목에서 ‘싫어서’를 ‘don’t like’가 아니라 ‘hate’라는 강렬한 워딩으로 가자고 했고요.

원작이 나온 건 2015년인데, 이듬해 판권을 구입하고도 투자와 캐스팅에 난항을 겪은 이유가 있나요? 또 어떤 일을 계기로 영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고아성 배우 합류가 이 영화가 계속갈 수 있게 해준 동력이 됐죠. 물론 고아성 배우가 합류하고 나서도 2년이 걸렸으니 오래 기다려준 거죠.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기금 지원 받은 게 시드가 됐고요. 패키지로 좀 더 투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죠.(웃음) 2023년 2월 1일 촬영한 공항 장면이 크랭크업이었어요. 이후 후반작업 해서 부산국제영화제로 간 거죠.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 접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당시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대행이 “영화가 가진 동시대성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어요. 저도 당연히 영화를 그런 지점에 놓고 싶었는데, 그렇게 읽어내셨다니 뭔가 링크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이 싫어서」는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APM(Asian Project Market)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부산에서 영화를 처음 튼다는 게 좋은 귀결이었다고 봐요.

 

부산국제영화제 버전과 개봉 버전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편집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가장 수정을 많이 한 부분은 음악이에요. 음악감독님과 몇 곡을 더 작업했고요, 수정된 부분에 사운드 작업도 다시 했습니다.

계나라는 평범한 인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평범하지만 가시화된 존재죠.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처럼요. 2024년에 서른을 맞이한 직장 여성. 그 뜻은 10년 전 또래 고등학교 친구가 수학여행 가다가 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고요. 이듬해 강남역에서 여성이 살해당한 일을 목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할로윈축제 때 많은 동료들이 이태원에서 죽은 걸 본 친구들도 있었을 그런 여성입니다. 계나는 말하자면 굉장히 평범한 여성이지만, 살아남은 여성이기도 합니다. 운이 좋게 생존한 여성이요. 그래서 계나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세월의 추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세상 물정 모르는 여성의 얼굴이 아니라, 그런 질감을 갖는 게 중요하고, 그 질감의 상상력을 갖도록 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죠.

 

최근 나오는 여성 서사 영화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차별적인가를 이야기하는데, 이 영화는 평범한 여성 계나의 삶의 여정을 통해서 다른 지점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고통을 전시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고요. 영화 전체가 하나의 메타포가 되면 좋겠습니다.

 

고아성 배우가 좋은 감독과 영화 찍을 때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고아성 ‘대선배님’께서 저한테 좋은 감독과 찍어서 행복하다 해서 감사하죠.(웃음) 살면서 시나리오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시나리오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게는 그 말이 영화를 찍는 데 큰 힘이 됐어요. 열심히 해야겠다는 용기에 불어 넣어준 배우라 감사하죠.

「2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에서 김주령 배우를 두고는 “장면의 감정선을 정밀타격하는 배우”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는데요. 이번 영화에서 고아성 배우는 어떤 배우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아성 배우는 이 영화의 하나의 프로덕션 디자인입니다. 이 영화의 미술적, 미학적 감각을 만들어내는 결정적 인물이죠. 그녀가 가진 여러 표정, 변화들이 이 영화의 질감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존재합니다. 하나의 캐릭터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랄까요? 「한국이 싫어서」가 어떤 풍경을 담고 있는가는, 계나의 얼굴과 감정을 통해서 표현됩니다. 영화의 모든 풍경을 담고 있는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헬조선 담론’을 떼어놓고 이야기하긴 어렵겠죠.
영화 속 인물들뿐 아니라 한국 사회는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지옥을 품고 살아가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 역시 그런 마음이 있었고요. 물론 계나와는 다른 처지죠. 사십대 남성에 기혼자고 아이도 키우고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 사회는 살기 팍팍합니다. 그런데 여성이나 소수자, 장애인에게는 훨씬 더 어려운 곳이 한국 사회에요. 물론 이 영화가 그런 담론을 다 끌어안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시화된 존재라고 봅니다. 청년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감독으로서 바람입니다.

 

‘우리 사회가 저마다의 지옥에 살고 있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이 생각하는 40대 남성의 지옥은 뭔가요? 한국을 벗어나면 그런 지옥이 없으려나요?
저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느끼는 고통스러운 삶의 질료와 질감을 창작으로 승화하고 싶은 사람이죠. 제가 살고 있는 지옥을 고백하는 게 상당히 난감합니다. 거기에 공명하셨다면 저하고 접속되는 부분도 있는 거겠죠. 그럼에도 제 고충을 말하자면, 이 사회가 가진 어떤 정상성에 대한 강요랄까요? 이런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20대 청년들도 그런 것들에 고통받는데, 40대 중반이 돼도 적응을 못 하니 마찬가지죠.

「한국이 싫어서」는 계나라는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그런데 감독님은 말씀하셨듯이 40대 남성, 흔히 말하는 주류로 담론을 이끌어가는 위치잖아요. 조금만 버티면 될 텐데, 이 시기만 넘기면 안정된 시간이 찾아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요?
말씀하신 당사자성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이유로 배우들에게 의지를 더 많이 했고요. 배우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이 청년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 배우라는 필터를 통해 찾아가기 위해서였죠. 굉장히 아이코닉한 고아성이라는 배우에게서 기대하는 불확실성이 있었습니다. 외로움, 쓸쓸함의 이미지라든가, 뭔가를 정의하지 않고 계속 찾아가려는 느낌들이 고아성이라는 육신을 통해 표현된 거 같아요.

 

유학생 ‘제인’ 역의 주종혁 배우는 뉴질랜드 생활을 실제 했던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고, 남자친구 ‘지명’ 역의 김우겸 배우는 신뢰감을 주는 건강함이 있었어요. 이런 요소들이 배우들의 육신을 통해 표현되면 충분히 납득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갖지 못한 당사자성, 그러니까 40대 중반 아저씨라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배우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죠.

소설과 결말이 다릅니다.
소설에서는 계나가 이민에 성공해서 호주 시민권자가 됩니다. 한국 국적을 버린다는 의미죠. 원작 소설이 나왔던 시점에는 젊은 층에게 통쾌한 결말일 수도 있었다고 봐요.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한국을 탈출하려는 호소력 짙은 이야기였던 거죠.

 

하지만 영화에서는 달라요. 뉴질랜드로 가는 동기는 비슷하지만, 자신의 삶을 계속 가능성에 둔다, 모험에 둔다는 것이 다릅니다. 뭔가 결론을 내린다거나, 또 다른 방식의 안주를 말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이동하는 인물로 두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사실 두 번째 떠날 때의 목적지는 뉴질랜드는 아니에요. 어딘지 저도 몰라요. 다만 긴 여행인 것처럼 보입니다. 계나가 어디로 가는가보다 왜 다시 가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정이랑 배우가 깜짝 출연해서 놀랐습니다.(웃음) 뮤지션 김뜻돌도 그렇고요.
정이랑 배우는 언젠간 한번 해보고 싶은 배우였어요. 사람을 설득하고 호소하는 역할로요. 거칠게 표현하면 ‘행복 담론의 약장수’ 캐릭터로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난데없는 장면에 등장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선뜻 오케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김뜻돌 배우 같은 경우는, 기존 배우 말고 다른 분야 예술가와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요. 계나 여동생은 좀 다른 질감을 가진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조감독이랑 음악씬에 있는 배우를 찾다 보니 김뜻돌 배우가 있더라고요. 상징성 있는 음악가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실제로 김뜻돌 배우는 굉장히 부지런한 뮤지션이라 계나 동생 민아 캐릭터와는 상반되기는 합니다만, 애인도 나오고 그런 연기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감독님에 대해 질문을 좀 드릴게요. 독립영화계에서 오래 작업하셨고, 작품들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간담회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판이 좀 커졌다’고 하셨죠. 「한국이 싫어서」는 감독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지점을 점유하는 영화일까요? 스스로 느끼기에 예전과 좀 달라진 또는 앞으로 달라질 부분이 있을까요?
사실 이 영화가 아주 큰 자본의 엔터네이닝한 영화는 아니죠. 독립영화 사이즈고요. 그런데 해외 로케이션도 있고, 아주 상징적인 스타 배우가 주연을 맡았잖아요. 영화 출발은 소박했는데 원작 소설은 베스트셀러였던 것도 있고요. 원래 규모의 미학으로 시작한 영화가 아니라 인물과 인물에 주목한 영화인데, 팬데믹을 거치면서 저희 프로덕션에도 변화가 생긴 겁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로케를 떠나고, 제법 큰 시나리오로 재탄생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판이 흘러간 거죠. 꼭 규모뿐만이 아니라요.

 

독립영화만 했다기보다는, 그 사이에 「괴이」 같은 사이즈가 큰 시리즈도 하긴 했죠. 말씀하신 규모적인 부분에 대한 변화도 있지만, 그보다는 동시대 한국 사회와 링크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제목이나 소재부터요. 그런 점에서는 개인적으로 작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감독이었는데, 이제는 좀 더 대중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말 걸기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고아성 배우나 주종혁 배우가 가지는 영화산업계에서의 포션이 있기에 그걸 통해 좀 더 영화가 확장성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후 감독님의 영화 세계에도 변화가 있을까요?
네. 뭐 사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제겐 상업이라고 하는 어떤 형식, 포맷, 필드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어떤 포맷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작고 개인적인 영화는 작은 사이즈로, 재난 영화는 큰 사이즈로’가 아니에요. 반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소수자 이야기를 메인스트림에서 한다거나, 시도해보지 못한 작은 이야기를 SF에서 하는 것처럼요. 벽과 벽을 깨보고 싶은 작업도 좀 더 해보고 싶네요.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어요.

고아성 배우의 스타성도 있고, 원작 베스트셀러의 후광도 있지만, 극장가가 어려운 상황에 흥행 부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이른바 판돈이 걸린 상업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통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관객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번 영화로 혼종된 시도를 했습니다. 독립 영화 사이즈인데 해외 로케도 했고요, 스타 배우도 출연합니다. 손해만 보지 않아도 유의미하다고 봐요. 혼종된 시도로 개봉하는 이 영화가 실패하지만 않는다면, 뒤에 다른 분들도 이 정도 사이즈 영화에 스타 배우와 원작 소설을 가지고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성공은 다른 분이 하셔도 되고, 저는 그 정도 디딤돌 역할만 해도 좋겠습니다.

 

차기작은 뭐로 준비하고 계시나요?
지금 공식화된 차기작은 「너의 뒤에서」라는 일본 작가가 쓴 원작 만화인데요. 대본 작업 중입니다.

원작 소설을 아는 관객도 있을 테고, 제목에 이끌려 극장으로 올 관객도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한국을 떠나면 파라다이스가 존재하는가, 혹은 뉴질랜드가 한국 사회보다 진일보된 곳인가 하는 이분법적 메시지를 담으려고 만든 영화는 당연히 아닙니다. 계나는 살갑고 건강한 애인도 있고 계층적으로도 풍족하진 않지만 좋은 가족이 있어요. 정규직 직장인이고요. 그런데도 갖고 있는 갑갑함이라는 것은 이전에 없던 감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피로감이 엄청났단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계나의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한국 사회의 고통을 세세하게 묘사하거나 뉴질랜드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계나가 삶의 기반을 바꾸면서까지 시도하려고 했던 의지가 뭔지, 찾은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뭔지 찾아보려고 한 거죠. 감독으로서 계나에게 하는 주문은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 있으라 이것이 제가 계나에게 하는 메시지입니다.

 

또 하나,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다 저마다의 다른 세계를 갖고 있긴 하지만, 거짓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세계의 충돌일 뿐이죠. 다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인물들은 아닌 거죠. 이 인물들, 특히 여기 나오는 청년들을 우리가 응원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응원만요. 항상 기성세대들이 뭘 하려고 하면 방해가 되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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