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수 DMC 개발본부장
중국 절강성 지역의 찻잎으로 만든 녹차가 백색 찻잔을 비취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싱그러운 향이 올라오는 연녹색의 따뜻한 차(茶) 한 잔은 어지러운 생각으로 가득 찬 마음을 비워 주리라.
#1,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해에 조선 사기장(沙器匠) 이삼평은 계룡산 근처 금강 부근에서 일본 아리타 지역의 영주인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잡혀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리타 지역에는 ‘도조 이삼평 비’가 세워져 있다.
#2, 1773년 12월 16일 영국 식민지인 북아메리카 보스턴 시민들이 아메리카 토착민으로 위장해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에 올라 300여 개의 홍차 상자를 바다로 던져 버렸다. 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은 미국독립 전쟁의 방아쇠가 됐다.
#3, 1842년 8월 29일 난징의 장강에 정박 중이던 영국 해군의 콘월리스 호에서 청나라 전권대신 기영과 이리포는 영국의 전권대사 헨리 포틴저와 난징 조약에 조인했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위의 세 사건은 지구상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음료인 차(茶)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첫 번째 장면인 1582년, 당시 일본의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차를 즐기는 다도(茶道)가 유행했다. 다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다완(茶碗)인데, 다완은 너무 화려하지 않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했다. 이런 미의식에 잘 어울리는 최상의 다완은 조선의 찻사발 즉 이도다완(조선 막사발이 일본으로 넘어가 찻그릇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 다완은 일본에서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지만 이를 소유하려는 권력자들은 늘어났다. 임진왜란 중 수많은 조선 사기장이 일본으로 끌려간 이유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1773년 영국은 차 사건으로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식민지의 자치 기능을 완전히 박탈하는 강경책을 선택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인은 영국의 차 세법으로 차를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경제적 이익보다 차 세법 결정을 식민지의 대표 없이 정했기 때문에 영국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북아메리카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택했다.
수질이 좋지 않은 영국에서는 물 대신 맥주나 진 등 알코올 음료를 소비했고 이는 술 중독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주운동과 차문화를 확산시켰다. 이러한 영국은 청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찻잎을 수입해야 했으며 한 해 청나라에 지불하는 은이 한때 2만8천톤에 달했다.
약 100년 가까이 영국의 은만 청나라로 들어가는 가는 심각한 무역적자 상황이었다. 영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편을 청에 수출하기에 이르렀고 중국은 아편 중독으로 나라가 흔들릴 지경이 된다. 청나라는 아편 수입을 금지하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가 결국 영국과 아편전쟁을 하지만, 1842년 8월 난징 함락 직전까지 갔다. 청나라는 패배를 인정하고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홍콩을 빼앗았던 영국은 1997년에서야 중국에 반환했다.
위의 사건들은 차로 인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돈과 탐욕, 폭력으로 이뤄지는 격렬한 무역전쟁이기도 했다. 2019년 9월 현재 홍콩 시민은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와 첨단 기술로 갈등을 빚고 있으며 일본은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수출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무역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찬물 먹고 정신 차려야겠다.
#1,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해에 조선 사기장(沙器匠) 이삼평은 계룡산 근처 금강 부근에서 일본 아리타 지역의 영주인 나베시마 나오시게에게 잡혀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리타 지역에는 ‘도조 이삼평 비’가 세워져 있다.
#2, 1773년 12월 16일 영국 식민지인 북아메리카 보스턴 시민들이 아메리카 토착민으로 위장해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에 올라 300여 개의 홍차 상자를 바다로 던져 버렸다. 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은 미국독립 전쟁의 방아쇠가 됐다.
#3, 1842년 8월 29일 난징의 장강에 정박 중이던 영국 해군의 콘월리스 호에서 청나라 전권대신 기영과 이리포는 영국의 전권대사 헨리 포틴저와 난징 조약에 조인했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위의 세 사건은 지구상에서 물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음료인 차(茶)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다. 첫 번째 장면인 1582년, 당시 일본의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차를 즐기는 다도(茶道)가 유행했다. 다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다완(茶碗)인데, 다완은 너무 화려하지 않고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했다. 이런 미의식에 잘 어울리는 최상의 다완은 조선의 찻사발 즉 이도다완(조선 막사발이 일본으로 넘어가 찻그릇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 다완은 일본에서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지만 이를 소유하려는 권력자들은 늘어났다. 임진왜란 중 수많은 조선 사기장이 일본으로 끌려간 이유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으로 부르기도 한다.
1773년 영국은 차 사건으로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식민지의 자치 기능을 완전히 박탈하는 강경책을 선택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인은 영국의 차 세법으로 차를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경제적 이익보다 차 세법 결정을 식민지의 대표 없이 정했기 때문에 영국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결국 북아메리카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택했다.
수질이 좋지 않은 영국에서는 물 대신 맥주나 진 등 알코올 음료를 소비했고 이는 술 중독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주운동과 차문화를 확산시켰다. 이러한 영국은 청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찻잎을 수입해야 했으며 한 해 청나라에 지불하는 은이 한때 2만8천톤에 달했다.
약 100년 가까이 영국의 은만 청나라로 들어가는 가는 심각한 무역적자 상황이었다. 영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편을 청에 수출하기에 이르렀고 중국은 아편 중독으로 나라가 흔들릴 지경이 된다. 청나라는 아편 수입을 금지하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가 결국 영국과 아편전쟁을 하지만, 1842년 8월 난징 함락 직전까지 갔다. 청나라는 패배를 인정하고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홍콩을 빼앗았던 영국은 1997년에서야 중국에 반환했다.
위의 사건들은 차로 인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돈과 탐욕, 폭력으로 이뤄지는 격렬한 무역전쟁이기도 했다. 2019년 9월 현재 홍콩 시민은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관세와 첨단 기술로 갈등을 빚고 있으며 일본은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수출을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무역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찬물 먹고 정신 차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