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마을 혹은 동네라는 공간은
적어도 지식의 차원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중요한 영역이다
‘지식’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혼돈’ 그 자체다.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던 지식들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하게 됐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를 가리켜 누군가는 ‘대중화’ 혹은 ‘민주화’ 등의 이름을 붙인다. 지식이 특정 계층의 소유로 기능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 ‘지식’과 ‘권력’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이 일종의 동일한 ‘판’ 위에 놓이게 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혼돈 가운데 꾸준하게 자신이 갈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있다. 예컨대 ‘기술 발달’과 같은 영역이다.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보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기술은 겉으로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식 환경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무엇보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기술의 발달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식과 지식인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의 필요와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으며, 실제로 개인들은 지식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과거 지식인은 타인에게 가르침과 훈계를 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지식인은 ‘너나 잘하세요’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지식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않게 됐다. 이처럼 자신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타인의 문제나 사회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지식’이 더 이상 필요나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지식은 대중들과 더 친숙해지면서 전문가의 권위로만 전달되던 것들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 혼돈의 시대에 지식은 스스로 자신의 설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가까운 미래에는 지식의 대중화라는 층위를 넘어 전혀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다양한 개인이 필요와 욕구에 따라 전문 지식을 자신의 역량에 맞춰 가공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것이다.
‘새로운 지식’은 그 내용이 아니라 지식의 생산, 유통, 소비의 과정이라는 전체 형식의 새로움에서 기인한다. 기억할 것은 새로운 지식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이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우리가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마을 혹은 동네라는 공간은, 적어도 지식의 차원에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중요한 영역이다.
지극히 단일하게 보이는 이 사회에서 가장 복잡하고 섬세한 지형을 갖고 있는 곳이 바로 지역의 마을이자 동네다. 그것은 ‘작은도서관’이거나 ‘동네책방’이거나 ‘북카페’, ‘생활문화센터’ 혹은 ‘주민센터’일 수도 있다. 이제 지식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장소에서 유통되고 소비된다. 그렇게 유통되는 지식은 다시 확산되고,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거나 창조한다. ‘동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곳에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진짜 지식인들’이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