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드라 법학과 3학년
나는 법학과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우리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나를 소개할 기회가 되면 자랑스럽게 ‘방송대 법학과 학생’으로 소개해 왔다.
몇 년 전,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입학을 준비하던 중 집안 사정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적응하기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새로운 취미생활을 갖기도 하는 등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법대를 졸업하신 아버지가 정년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방송대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편입 소식은 나에게 자극을 줬다. 늦은 나이에도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동생도 방송대에 적을 두고 있다보니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방송대 법학과 선택에는 이런 개인적 사정이 컸다.
열심히 법학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 큰 시련이 찾아 왔다. 우리 대학 법학과를 졸업(2018년 2월)하신 아버지께서 4시간 30분의 대수술을 받으신 것이다. 입원해계신 아버지를 곁에서 돌봐드려야 했기에, 2018학년도 2학기 학점을 많이 놓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제는 아버지께서도 건강 상태가 좋아지셔서, 나는 별다른 걱정 없이 법학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의 꿈은 법학 공부에 매진해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뒤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버지가 걸어온 법학도의 발자취와 꿈을 이어서 ‘자랑스러운 방송대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실력 있는 법학도로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 내게 법학 공부의 길을 열어준 방송대에 감사드린다.
몇 년 전,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입학을 준비하던 중 집안 사정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적응하기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새로운 취미생활을 갖기도 하는 등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중 1970년대에 법대를 졸업하신 아버지가 정년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방송대 법학과 3학년에 편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편입 소식은 나에게 자극을 줬다. 늦은 나이에도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동생도 방송대에 적을 두고 있다보니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방송대 법학과 선택에는 이런 개인적 사정이 컸다.
열심히 법학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때 큰 시련이 찾아 왔다. 우리 대학 법학과를 졸업(2018년 2월)하신 아버지께서 4시간 30분의 대수술을 받으신 것이다. 입원해계신 아버지를 곁에서 돌봐드려야 했기에, 2018학년도 2학기 학점을 많이 놓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제는 아버지께서도 건강 상태가 좋아지셔서, 나는 별다른 걱정 없이 법학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나의 꿈은 법학 공부에 매진해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뒤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버지가 걸어온 법학도의 발자취와 꿈을 이어서 ‘자랑스러운 방송대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실력 있는 법학도로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다. 내게 법학 공부의 길을 열어준 방송대에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