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에 넘어온 작품들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고민을 한 번 더 깊게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는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내는 호흡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시의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어느 부분을 감추고 어느 부분을 드러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남다른 자기만의 언어가 탄생합니다. 그래서 진심을 담은 만큼 시의 언어가 가진 여러 가지 다양한 표현들을 습득하고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마련이지요.
가끔 남의 호흡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익숙한 것이 때로는 본인의 생각 같기도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기존의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의 언어를 안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시를 쓰는 사람들의 숙명이자 시를 쓰는 일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금화의 「몰랐다」 등은 솔직한 심정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좋았습니다. 감정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우회적으로 다중적 의미를 포함한다면 더 좋을 듯합니다.
안수민의 「아침 건넨 바다」 등은 삶에 대한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간혹 보이는 블랙 유머도 흥미로웠습니다. 익숙한 이미지들을 조금 더 벗어난다면 매력적인 작품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이은희의 「핑계를 재다」 등은 삶에 관한 관조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시적 화자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스토리가 드러난다면 훨씬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한천우의 「씁쓸한 슬픔」 등은 시적 화자의 쓸쓸함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었습니다. 시적 화자의 감상과 낭만적 태도가 조금 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점들을 보여준다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될 듯합니다.
최용석의 「비의 이름」 등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긴장감 있는 에너지가 돋보였습니다. 화려한 수사와 감각들도 개성 있는 시인으로서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합니다. 약간의 거친 감각들이 작품 안에서 조금 더 잘 어우러진다면 훨씬 더 훌륭한 작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최진호의 「본문 밖의 표정」 등은 시적 화자의 성찰과 원형적인 그리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단단한 의지와 시선이 깊이 있는 사유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익숙한 부분들에서 조금 더 나아가 시적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면 좋은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이 더욱 넓어지리라 여겨집니다. 두 분의 시적 활동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면서 두 작품을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정희의 「흩날리는 박수」는 안정적인 시의 감수성을 드러내면서도 시인만의 감각을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삶의 지난함을 견디고 긍정적인 힘으로 시적 화자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리라 여겨집니다. 삶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른 이들까지 끌어안는 힘을 가진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았습니다.
시는 쓰는 일은 삶을 경작하는 일과 같다고 합니다. 시를 쓰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아름다운 작업을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이영주 시인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등을 냈다. 영문시선집 cold candis, 산문집 『백 일의 밤 백 편의 시』 등이 있다. 2022년 미국 루시엔 스트릭상을 수상했다. 방송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외부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