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서 올해 여름을 떠올려보면 커다란 봉투를 들고 우체국 문 앞에 선 제 모습이 먼저 생각납니다(나이가 들어 시작한 공부가 길어지자, 여기저기 아픈 곳이 함께 늘어난 탓에 종종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요. 그날도 병원 외래가 잡혀있던 날이었습니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 봉투를 손에 들고도 한동안 망설이다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부족한 시를 보내도 될지 걱정이 앞선 탓이지요. 그다음 주가 응모 마지막 주였기에, 다시금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도전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니까!’
그렇게 작은 방 책상 위에 머물던 시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봉투에 고이 담은 시는 가벼웠지만, 시를 쓰는 과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쓰고, 지우고, 소리내어 읽어 보고, 몇 번이고 고쳐 쓰기를 하는 과정마다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시를 쓰던 어느 봄날, 활짝 핀 벚꽃 나무 아래를 지나며 그 자리에서 묵묵히 견뎌냈을 나무의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 문득 내 인생의 봄을 깨닫습니다.
“엄마의 봄은 지금이겠네요!”
드디어 4학년이 됐다는 말에 딸아이가 한 말입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겨울처럼 매서운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던 산업화 시기였고, 가정에서는 가부장적 질서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늦깎이로 시작한 지금의 공부는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었지요. 그저 시작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꿈이었는데 어느새 졸업반이 됐습니다.
당선 연락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부족한 시를 정성스럽게 읽어주시고, 따스한 눈길로 바라봐주신 방송대문학상 관계자분들과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회의 장을 만들어주신 방송대출판문화원에도 감사드립니다.
나이가 들고, 글을 쓰는 것의 장점 중 하나는 치열했던 지난 시간을 감정의 격앙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누적된 시간이 주는 힘으로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희 국어국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