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 시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의 볼로냐와 살레르노, 영국의 옥스퍼드대 등이 그렇다.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크, 라이프치히, 예나 등이 14~16세기부터 대학의 모습을 갖췄다. 그렇지만 오늘날 근대 대학의 효시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곳은 이런 오랜 전통을 지닌 대학들이 아니라 올해 개교 214주년을 맞은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대였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독일사)는 “베를린대 개교를 높이 평가하는 더 큰 이유는, 그것이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대학을 지향했고 이후 대학의 모델이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근대 대학의 효시’ 베를린대 아십니까?」,〈주간동아〉, 753호, 2010.9.6.).
그가 말하는 대학의 모델이란, 학문 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란 뜻이다. 이제 대학은 장래 직업 활동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지적·정신적 계발을 위해 학문을 닦는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학문 연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됐으며, 완성된 지식을 전달하거나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탐구를 통해 스스로 배우는 곳으로 재정의됐다. 특히 교육과 연구를 결합하려 한 베를린대 이념은 오늘날 세계 유명 대학들이 지향하는 ‘연구중심 대학’의 기원이 됐다. 여기까지는 근대 대학의 전사(前史)다.
대변동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은 대변동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대학, 정부 그리고 평생교육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냉정하게 일러 준다.
산업혁명의 산물인 낡은 대학 모델
4년 혹은 2년, 연간 2학기, 학기당 15주, 과목당 3학점, 학점당 50분 수업….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이 채택하고 있는 획일화된 강의 운영 방식은 산업혁명 당시 만들어졌다. 1906년 미국의 카네기 재단은 강의 이수 시간을 기준으로 ‘카네기 유닛’이라는 단위를 만들어 대학 입학과 졸업의 공통 기준을 제시했다. 이로써 산업화 시대의 상징인 공장의 조립라인처럼 대학의 강의, 학점, 학위도 ‘시간’을 기준으로 표준화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100년 넘게 이어 온 대학의 표준 모델은 지식경제 시대를 맞이해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학 대변동: 산업화시대에서 지식경제의 시대로』(아서 런빈·스콧 반 펠트 지음, 박혜원 옮김, 지식의날개)는 고등교육의 모든 기준이 ‘강의 시간(학점)’에서 ‘학습 성과(역량)’로 전환될 것으로 내다보며, 이로 인해 공급자 중심의 대학 모델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솔깃한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잠깐, 책의 저자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2024년 11월 1일자로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명문 사립 연구대학 브랜다이스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한 공동저자 아서 러빈(Arthur Levine)은 컬럼비아대 교육대학원장,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육경영연구소 석좌교수, 우드로 윌슨 재단 회장, 브래드퍼드대 총장, 뉴욕대 스타인하트 고등교육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카네기 재단 선임연구원 등을 역임한 고등교육 행정가다. 13권의 책을 썼고, 250개 이상의 대학에 컨설팅을 제공했다. 고등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6개의 명예학위 및 카네기, 풀브라이트, 구겐하임, 록펠러 재단 등에서 여러 차례 펠로십을 수상했다.
고등교육 행정가인 스콧 반 펠트(Scott Van Pelt)는 교육 테크놀로지, 교수 지원, 교육과정 설계, 학업 상담에 관련된 다양한 행정 및 교육 직책을 역임했다.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교육대학원에서 연구 및 교수 지원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변화하는 고등교육 환경을 주제로 강의에도 자주 나서고 있다.
미국 고등교육의 역사는 거의 400년으로, 현재 4천여 개의 대학이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토록 많은 대학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의구심을 품는다.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대학이 아닌, 지식경제 시대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형식의 ‘중등과정 이후 교육기관’들의 출현을 목격한 이후부터다.
익히 알려진 무크(MOOC)의 선두주자 ‘코세라’에는 세계적 명문대학이 제공하는 강의는 물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IT 자격증 프로그램, 골드만삭스가 제공하는 금융 프로그램,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제공하는 미술 교양 프로그램 등이 포함돼 있다.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이들이 제공하는 교육 콘텐츠는 무엇보다 품질 면에서 기존 대학들의 그것과 비교 불가한 수준이다. 약간의 추가 비용을 내면 대학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아예 자체적으로 대학원을 보유해 생물학 박사과정을 운영 중이다.
테크놀로지 혁명과 고등교육의 변화
저자들은 대변동기였던 산업혁명 당시 미국 대학들이 겪었던 선례를 돌아보고, 인구 구조 변화, 지식경제 출현, 테크놀로지 혁명이 고등교육에 가져올 영향을 짚고, 또 다른 지식산업, 즉 음악·영화·신문 산업이 유사한 상황에서 어떻게 붕괴됐는지 살폈다.
산업혁명 당시 대학들은 그리스어와 윤리학 대신 현대어와 과학을 가르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 예일대는 일명 ‘예일 리포트’를 발표하며 완강히 거부했고, 코넬대는 전통 커리큘럼과 현대적 과목들을 결합해 선택과목제를 도입했으며, 존스홉킨스대는 연구대학의 틀을, MIT는 공과대학의 틀을 창조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버드대가 이들 대학의 선례에서 영감을 얻고 개혁에 뛰어들자 주류 대학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저자들은 이 시기의 변화를 ‘비판-거부-개선 모델-대체 모델-주류로 확산-표준화-통합 및 확대’의 7단계로 설명하며, 눈앞에 온 대변동도 이러한 단계를 거칠 것으로 예측했다.
아마도 독자들에게는 비교적 최근 대변동을 겪은 음악·영화·신문 산업의 이야기가 더 쉽게 와닿을 것이다. 고등교육처럼 지식을 생성하고 보존하고 배포하는 영역에 있는 이들 세 산업은 대학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으나 비영리가 아닌 영리기업이라는 이유로 더 빨리 대변동을 겪어야 했다. 이들은 고등교육과 마찬가지로 산업혁명 시기에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했으나 경제 변화, 인구 변화에도 혁신을 거부하다 테크놀로지 발전으로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넘어가자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새로운 비전과 해법을 내놓은 것은 산업 내부가 아닌 외부였다. 그러니 대학은 서둘러 ‘우리는 어떤 분야의 사업에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대학은 학점 사업이 아닌 교육 사업을 하는 곳임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주류 대학의 산물’인 저자들은, 지금의 대학 모델이 일시적으로 붕괴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산업혁명 때 그랬던 것처럼 변화의 7단계를 거치며 결국 성공적으로 적응해 갈 것으로 낙관한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 변화의 속도다. 산업혁명 당시의 대학 대변동은 100년 넘게 느리게 진행됐지만, 우리 앞에 닥친 대변동은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저자들은 예측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의 경험과 인구 구조의 변화,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변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저자들은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을 누가 읽어야 할 것인지를 말했다. 대학 관리자, 교수진과 이사, 고등교육 정책 입안자, 대학 졸업자, 미디어, 정부, 대학생과 그들의 가족이 이 책을 읽길 기대하면서 “그들은 고등교육의 미래가 무엇일지에 대해 정확한 그림과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을 인지해야 한다”라고 썼다.
저자들이 염두에 둔 다른 독자도 있다. 일반 독자들과 대학이 아닌 박물관, 도서관, 교향악단 같은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읽기를 희망했다. 대학이 겪고 있는 문제는 그들이 직면한 어려움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학위 수여’라는 권력을 지닌 대학들이 결코 호락호락하게 바뀌진 않을 테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 인구 구조의 변화, 대학보다 영리한 거대 영리기업들의 교육산업 진출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의 경험으로 대변동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책은 대변동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대학, 정부 그리고 평생교육 시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냉정하게 일러 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대학 묵시록이 아니라 대학 생존전략서로 읽힌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