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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경제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는 부농의 부모님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좋은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친은 항상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고 힘들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주변의 아픔을 위로하며 늘 언행에 조심하라고 자식들을 가르치셨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지금껏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중학교에 입학 후 부친의 가르침으로 한문을 접하면서 서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3년여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 후 평소 관심도 가졌고, 재능도 조금 있었던 한문과 기획 디자인 분야에서 첫 직장을 구했다.


이후 장충동에 있는 한 호텔의 사진식자기 광고부로 옮겨 근무하다가 퇴사한 뒤 충무로에 오언기획이라는 간판으로 기획사무실을 오픈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디자인프린팅으로 상호를 변경해 주로 관공서 일을 하고 있다.


1997~1998년의 IMF가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듯이, 필자 역시 IMF를 지나면서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됐다. 당시 LG, 현대산업개발 등 대기업과 거래하던 때라 주야로 직원 13명이 업무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았다. IMF 시기임에도 필자의 사업은 번창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일반거래처에서 결제받은 가계수표가 휴지가 되고 만 것이다. 워낙 큰 금액이어서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인간은 누구나 방향을 설정하고 목적지로 전진할 때, 수많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없다. 필자는 망설임 없이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방송대 신·편입생 모집 광고를 접하고 곧바로 1998년 법학과에 입학했다.


법학과 입학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회 임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회 임원에 지원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우들을 위해 금전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학생회의 자문위원직에 지원했는데 뜻밖에도 1학년 대표로 임명됐다. 방송대에 입학한 데 이어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방송대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필자는 서울지역 법학과 학생회장과 법학과 전국연합회장을 맡게 됐다. 13개 지역 법학과 학생회와 학습 정보를 공유하며 미력하나마 법학과 지역 학생회 학습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4년의 재학 기간 내내 새벽까지 생업과 학생회 활동,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학과 교수님의 적극적인 지원과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의 학교생활에서 가장 값진 순간을 꼽으라면 학생회 활동과 함께 훌륭한 교수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공부하던 때였다고 자부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필자는 ‘뼛속까지 방송대인’이 됐다.


졸업 후 전국총동문회와 서울총동문회 임원과 전국총동문회산악회 감사로 봉사활동을 했으며, 지금은 서울총동문회 감사직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뜻한 목표가 있어 방송대를 선택한 후배 학우님들도 포기하지 말고 본인의 꿈에 도전하시길 응원한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으로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언제든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고뇌하고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한다. 100세 시대로 보자면 인생 3막을 맞는 지금, 필자는 어릴 때부터 닦아온 서예와 문필가로서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앞장서는 작은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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