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를 선택하는 이들의 직업적 스펙트럼은 넓고 깊다. 선택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방송대를 졸업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데 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배운 것을 활용해 새로운 항로를 걸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뭔가 거창하고 세상에 막 드러나는 일이기만 할까? 방송대를 졸업하고 다시 생활로 돌아가 묵묵히 삶을 개척하는 모습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마침 권수열 강원지역대학장(보건환경학과)이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동문을 소개했다. 2003년 교육과에 입학해 2008년에 졸업한 엄마(최윤미 동문)와, 엄마의 권유로 2012년 법학과에 입학해 2019년 졸업한 딸(이현 동문)의 이야기다. 모녀는 어째서 방송대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졸업한 뒤 이들에게 방송대는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최윤미, 이현 동문을 12월 13일 강원도 홍천에서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졸업하고도 10년 동안 학과 후배들을 도왔던 최윤미 동문(왼쪽)과, 엄마의 권유로 법학과에 진학해 졸업한 이현 동문(왼쪽).
딸애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웠죠.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느날인가 공부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어, 엄마, 공부하는 것 같아.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그 한마디에 진짜 안심이 됐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빠, 엄마가 모두 방송대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방송대가 낯설지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엄마가 학교 행사에 적극적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방송대 행사에 따라다녔어요. 지역대학, 학습관 이런 곳을 자주 갔었죠.”
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경제학과, 전업주부인 엄마는 교육과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사업 문제로 완주하지 못했고, 외향적 성격에 활동적인 엄마만 교육과를 졸업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처럼 일반 대학에 진학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배우는 것도 많지 않아 보이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회의가 들었다. 1학년을 마치고 엄마의 권유로 바로 방송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일반 대학 자퇴하고 법학과 입학한 딸
스무 살의 이현 동문이 법학과를 선택한 데는 고등학교 시절 「법과 사회」라는 과목에서 느꼈던 흥미가 작용했다. 어렵더라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 뒤 ‘방송대에서 공부해서 학위를 하면 어떻겠냐?’는 엄마의 제안을 듣고 그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했기에 돈을 벌면서 공부해야 했어요. 방송대는 매일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게 메리트가 컸죠. 저희는 중·고등학교 시절 EBS 방송강의를 경험했잖아요. 방송대의 원격교육도 그런 연장선 같은 느낌이어서 어렵거나 힘든 건 없었어요.”
이쯤에서 최윤미 동문이 거들었다. 엄마는 어째서 딸에게 방송대를 권유했을까?
“현이에게 방송대를 권한 건 딸애가 어떻게든 좀더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죠. 그리고 20대에 많은 걸 경험하기를 기대한 마음도 컸어요. 현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반값 등록금이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시기였는데, 제가 만나본 그 대학 교수님이나 학생들은 도무지 자신과 직결된 이 문제와 관련해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더군요. 자신과 밀접한 문제들에 관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시기인데, 그렇지 못한 걸 보고 안타까웠죠. 현이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해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죠.”
이현 동문이 방송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최윤미 동문은 속으로 걱정을 계속했다. 막상 입학해 보니 그렇게 좋지도 않고, 괜히 입학했다고 후회한다면 그게 자신의 권유 때문에 빚어진 후회일 것 같아 ‘방송대 생활은 어때?’라고 제대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저의 방송대 경험이 좋았다고 해서 딸아이에게 그걸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아,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웠죠. 그래도 확인을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어느날인가 공부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어, 엄마, 공부하는 것 같아.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그 한마디에 진짜 안심이 됐어요.”
‘교육과’를 선택한 전업주부의 각오
지인의 권유로 방송대를 선택한 최윤미 동문은 처음부터 다른 접근을 했다. 입학을 결정한 뒤 학교 홈페이지에서 학과별 전공과목을 살펴본 후 학령기 자녀를 둔 엄마로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과로 ‘교육과’를 선택한 것이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교육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주변의 ‘걸림돌’을 모두 제거했다. 개인적인 모임을 끊었고, TV 방송강의 시간에 맞춰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강의 시청에 집중했다. 학생회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교육과 일일 호프, 학과 한마음 축제, 총장배가요제, 지역 봉사 등 그의 손이 안 미친 데가 없을 정도였다.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무엇보다 ‘현재에 충실하고 즐기자’가 저의 인생 모토이다 보니, 교육과뿐만 아니라 타 학과 학우들과의 교류에도 진심이었죠. 즐거웠으니까요. 방송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생각보다 넓고 다양했기에 완주가 가능했어요. 홍천과 춘천을 오가면서 스터디도 2개나 가입해 공부했죠. (웃음) 방송대 생활은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평생교육사를 거쳐 상담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윤미 동문은 2008년 졸업 이후 10년 동안 학과 튜터, 평생교육실습지도교수로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2018년, 졸업한 지 10년이 될 즈음 당시 조화태 교수에게 ‘후배들에게 더 좋은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이 많으니, 이제 활동을 그만두겠다’라고 의사를 밝히고, 활동을 접었다. 활동을 접었어도 그의 ‘방송대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저는 그게 되게 강하죠. 방송대는 저의 삶을 확장해 준 곳이니까요. 남들이 말하듯 ‘터닝 포인트’였어요. 특히 좋은 엄마가 되도록 길을 안내해 준 곳이죠. 제가 살면서 잘한 선택 중의 하나입니다. 방송대를 졸업했기에 어떤 자리에 가서든 방송대 경험을 꺼내놓게 돼요. 그 자부심 때문에 주변 분들에게 방송대를 권유하기도 하고요. 입학원서를 사 가지고 막 나눠주기도 했죠.”
그런 자부심 속에서 최 동문은 지금도 교육과 입학 동기들과 독서토론 모임을 매달 이어가고 있다.
이현 동문은 방송대 지역대학이 있는
춘천, 원주, 서울, 대구, 제주 등지를 돌면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했다. 전국 곳곳을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는데,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는 방송대의 특징을 잘 활용한 셈이다.
얻은 것, 확신한 것 그리고 당부
이현 동문은 어떨까? 그 역시 엄마랑 비슷하다고 말했다. 주변의 또래 친구들에게 본인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방송대를 권유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했지만,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거든요. 아무래도 딱 서른 초반이니까 뭔가 더 확실한 걸 정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제가 2012년에 법학과에 입학했으니 12년 전이거든요. 지금은 사회도 방송대도 그때보다 더 많이 변화했으니, 새로운 공부를 해 볼만 하지 않냐고 말해요.”
그는 재학 시절 소속은 강원지역대학이었지만 서울, 대구, 제주 등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송대 공부를 이어갔다. 전국 곳곳을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보고 싶은 생각에서였는데,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는 방송대의 특징을 잘 활용한 셈이다.
지금은 부친의 사업을 돕고 있지만, 이현 동문은 언젠가 자신의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방송대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넓어졌고,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 남부학습센터 출석수업에 참여했을 때의 경험을 귀띔했다.
“일반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또래들과 공부하다 보니, 아직도 고등학교에 다니는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방송대에서는 다양한 사회 경력을 지닌 분들이 함께 공부하다 보니, 저에겐 오히려 그게 더 플러스가 됐던 거 같아요. 제 나이에 만나볼 수 없는 풍부한 경험을 공짜로 했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최윤미 동문은 방송대를 통해 변화한 자신과 딸인 이현 동문이 공부하는 모습까지 가까이 지켜보면서 방송대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곳, 인생 역전까지는 아니어도 도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곳,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곳임을 확신했다.
방송대가 수월한 학과 공부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그는 후배들에게는 모교가 될 방송대가 좀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참여하길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모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쭈뼛했다. 방송대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란 게 저 ‘외유내강’의 미소와 같은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