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청소년 교육 전문가의 학교 사랑

청소년교육과 초대 학과장으로 신생 학과의 토대를 다지고, 전국을 누비며 학생회를 조직해 청소년교육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김영인 교수를 정년 퇴임이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 만났다. 학생처장부터 부총장까지 주요 보직도 두루 거쳤던 그를 두고 하혜숙 학과장은 “교수로서도 존경할 분이지만, 행정가로서도 큰일을 한 전문가”라고 표현했다. 보직을 수행하며  “오로지 학교발전과 학생 친화적인 제도와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하는 김영인 교수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소개한다. 청소년교육과 학생, 동문이라면 물론 타 학과 학생, 교수진, 보직진에까지도 놓쳐서는 안 될 보물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정년 퇴임하는 김영인 방송대 교수(청소년교육과)


정년퇴임까지 며칠 안 남았는데, 요즘 기분은 어떠세요
좋습니다.(웃음) 한 직장에서 큰 대과 없이 정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건 기쁘면서도 영광스러운 일이죠. 동료, 학생들이 음으로 양으로 지원한 것들이 큰 힘이 됐습니다.

 

방송대 부임 첫날 기억나세요
오래돼서 가물가물 합니다만.(웃음) 그때만 해도 방송대 캠퍼스가 낡았어요. 정문 옆 목조건물과 본관 건물을 보고는, ‘젊음의 거리 대학로에 이렇게 ‘올드’한 건물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현대적이고 문화적인 대학로에 그로테스크하게 뭔가 잘 안 맞아떨어지면서도 대학의 오래된 연륜이 느껴지는, 외관은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전통이 복합적으로 느껴졌어요. 교문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큰 느티나무도 인상적이었지요. 다른 대학과 달리 캠퍼스에 학생이 없는 것도 생소했죠.(웃음)

 

2004년 1월 1일자로 발령이 나셨어요
그때만 해도 발령을 좀 일찍 냈죠. 방송대는 원격교육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고등교육기관이라 일반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사를 운영하고, 강의하며 학생을 지도합니다. 교수들은 강의 녹화도 해야 하고, 전국으로 출석 수업을 다녀야 하죠. 일반대와 달리 학과의 한 학년에 수천 명이 있다는, 이런 방송대만의 특성을 고려해서 신임 교수 임용 시기를 학기 시작하기 전으로 정했던 거죠. 미리 학교를 알아가는 기간을 사전에 두어 학기에 바로 적응할 수 있도록요. 최근에는 3월 1일자 등 학기 초로 발령내는데 신임 교수 입장에서는 방송대 시스템을 파악하기도 전에 바로 출석 수업을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격강의를 하게 됩니다. 방송대의 독특한 학사운영 특성과는 잘 안 맞는다고 봐요. 첫 학기를 허둥대고 보내면 신임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좋지 않으니, 학기 시작 최소 한두 달 전에라도 발령을 내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봅니다.

 

2008년에 교육과 학과장으로 청소년교육과와 교육학과의 학과 설립과정의 실무를 맡았고 2009에는 청소년교육과 초대 학과장으로 일하셨죠. 새로 학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청소년교육과가 탄생하기까지의 스토리와 학과 계보를 좀 알아야 하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청소년교육과는 ‘초등교육과→교육과→교육과 전공분리(청소년교육전공, 교육학전공)→교육과 폐지→청소년교육과와 교육학과 설립’의 계보를 가집니다. 제가 청소년교육과와 교육학과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초등교육과가 방송대에 먼저 개설됩니다.

 

당시 2년제이던 교대가 1980년대 접어들며 4년제로 바뀌면서, 현직 교사가 준 학사 출신이고, 신규 임용되는 교사는 4년제 학사 학위 출신이 되는 문제가 발생했어요. 정부에서 이를 해결하려 방송대에 초등교육과를 만들도록 한 거죠. 초등교육과 개설 이후 10여 년의 교육을 통해 초등현장교사의 준학사 학위문제가 대부분 해결되면서, 초등교육과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감해 초등교육과는 문을 닫고 교육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게 됩니다. 청소년교육과의 계보 상 교육과는 아버지라 할 수 있지요.

 

교육과는 우리가 친숙하고 접하고 있는 교육학과와 매우 유사한 명칭상 동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교육학과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 당시 방송대의 교육과는 그 전신인 초등교육과 내의 교과교육계열과 교육학계열이 합해진 것으로 오늘날 학문적으로 교육학계열 중심인 교육학과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오늘날 교원양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사범대와 교대가 학문적으로 교과교육계열과 교육학계열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요. 방송대의 교육과라는 명칭은 전국에서 유일한 이름의 학과였죠.

 

그러다가 지금은 은퇴한 송대영 교수님이 교원양성을 지향점으로 하지 않는 방송대 교육과의 모호성을 극복하고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외연을 확대하고자 청소년교육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차근차근 준비해 2004년에 교육과 내에 ‘교육학 전공’과 ‘청소년교육 전공’을 분리했습니다. 교육학전공은 평생교육, 성인교육, 청소년교육전공은 성장세대인 청소년교육을 주 지향점을 각각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사회적으로나 방송대에나 새로운 분야인 청소년교육 영역을 개척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교육과에 새로운 쌍둥이 자녀 청소년교육전공과 교육학전공이 탄생한 것이지요. 이후 이들이 성장하여 각각 학과로 분가하는 과정에서 여러 고비와 진통이 있었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2008년에 청소년교육전공과 교육학전공의 확대 분과에 대한 학과와, 학교 전체의 의사결정이 진행됐고 2009년 3월 1일자로 교육과를 폐지하고 청소년교육과와 교육학과를 설립했죠. 분과를 할 때 제가 교육과 학과장이었는데요. 먼저 학과 교수진 의사 합의를 끌어내야 했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다음으로는 학교 전체의 의사결정을 할 때 많은 교수님들의 ‘도대체 청소년교육과는 뭐냐, 앞으로 잘 될 수 있냐’라는 회의적인 질문에 답을 하고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당시로서는 학문적으로나 대학현장의 실제적인 입장에서나 청소년교육과는 생소한 점이 있었으니 어느 정도 이런 반응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이 분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힘들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지요.

 

청소년 관련 전공으로서는 전공도 처음, 학과 개설도 처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대에 청소년지도학과, 청소년학과, 청소년복지학과 등이 일부 극히 소수가 있었지만, 청소년을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과였고, 방송대처럼 교육을 전문영역으로 특화한 학과는 처음이었죠. 방송대 교수진들 역시 도대체 청소년교육과가 뭐고, 사회적인 어떤 요구나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어요.

 

그런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공식, 비공식적으로 교수진들을 설득하러 많이도 다녔습니다. 한 번은 김종진 당시 사회과학대학 학장님께서 사회과학대학 학과장 회의에서 직접 브리핑을 한 번 해달라고 요청하셔서, 길게 설명드린 적도 있어요. 돌아가신 김기원 당시 경제학과 학과장께서 “이제 충분히 이해됐다”고 말씀하시며 격려해주셨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교수진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는요
교수회의에서도 교육학과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편이었지만 청소년교육과 설립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들이 있어서 표결까지 갔습니다. 국립대는 특히나 학과를 새로 설립하면 없애기 힘드니 교수진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요. 학교가 학과 설립은 학교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교육과 당시 5천 명이었던 정원을 1천 명 증원해 총 6천 명으로 늘려 교육학과 3천 명, 청소년교육과 3천 명으로 하고 특히 청소년교육과는 전망이 불투명하니 3년 동안 교수를 현원으로 동결해-그 당시 청소년교육과에 소속을 둘 수 있는 교수는 3명- 운영하고 학생 입학생 지원현황을 보아 교수를 충원해주겠다는 조건을 걸었지요. 이를 받아들이면 학과 설립을 진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고 학과에 통보해 왔지요.

 

정원 증원은 이해도 됐고 개인적으로 충원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지만 교수 정원을 3년 동안 동결한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지요. ‘이렇게까지 하면서 분과와 학과 설립을 추진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국립대 교수로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하는 억울한 생각도 있었지만, 그동안 들인 노력과 대의를 생각해 전폭적으로 받아들였지요.이렇게 해서 대학 본부는 설득했지만 전체 교수회의에서는 격론이 있었고 표결까지 갔던 것이지요.

 

청소년교육과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던 걸까요
청소년교육과 초대 학과장으로서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학과가 뿌리를 내리도록 하려고 “청소년교육, 청소년교육전문가에 대한 비전, 여러분은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계를 우리가 10년 내에 바꿀 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청소년교육과의 발전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지닌 보직진과 교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청소년교육과 정원 3천 명을 10년 동안은 채울 수 있다. 그 이후는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지요. 과학적 근거는 없었지만 직관에 입각한 자신감은 충만했습니다.(웃음)

 

실제로 10년 가까이 1,2,3학년 신·편입생 정원을 다 채웠어요. 초창기에는 3학년 편입생 경쟁률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세 자리 수였을 정도로 높았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소년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잖아요. 또 한국은 청소년 자녀에 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국가적 특징이 있는 나라이기도 했고요. 시대가 변하면서 입시 외에 청소년 자녀의 행복이나 역량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봤어요.

 

물론 학교에 누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말해놓고 저는 힘들었죠. 제 말에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요. 저를 포함해 김진호, 송대영 교수 이렇게 3명이 전국을 뛰어다니며 학생회 조직을 만들고 활성화하기 위해 고생했습니다. 학생들을 만나면 “여러분을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교육계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전국적으로 시스템을 갖춘 방송대와 전문 교육을 받고 열정 있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청소년교육과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죠. 그런데 정말 말대로 되려는지 10년 정도는 늘 100%를 초과모집 했어요. 초창기 3학년 편입에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로 학점이 4.45인데도 못 들어오는 상황이 생길 정도로요.(웃음)

 

‘부흥’을 끌어내셨군요.(웃음) 그런데 요즘 청소년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잖아요.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도 힘들어하고, 개인주의도 강해졌습니다. 돌파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학생도, 부모도, 교사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아요. 너무 광의의 질문이긴 하지만, 어떤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죠. 청소년이 일탈이나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굉장히 많아요. 구조적, 문화적 인식의 문제도 있다 보니, 하나로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원인을 한 마디로 하면 ‘단절’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친구와의 단절, 어른과의 단절, 선배?후배와의 단절 그러다가 자기 스스로와의 단절까지요. 그러니까 모든 게 혼자 고립된, 인간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미래의 나를 꿈꾸는 것들이 없는 상황, 자기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버리게 되는 상황이 되는 지경에 이른다고 할까요? 그 속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순간적 일탈도 하고, 비행도 저지르고, 병들어가면서 극단적 선택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여러 대안이 있겠죠. 저는 ‘청소년 스스로는 물론 청소년을 보는 부모나 지도자, 어른 등이 청소년을 청소년이 지닌 강점에 주목해 긍정적 관점을 가져라’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못나고 일탈해도 100% 잘못하는 아이는 없어요. 무언가 하는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1%의 강점이 있다면, 그걸 칭찬하고 발현시켜주면서 그 강점이 점점 더 커지게 해줘야 합니다. 그 강점이 성장하면 단점은 점점 작아지고 없어지게 되면서 강점이 잠재적 강점을 더 발현시켜 가는 선순환 구조가 됩니다. 이렇게 부모나 지도자는 만들어가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단점이 더 드러나니까 단점 중심으로 아이를 봐요. 그러면 아이는 위축되고 자꾸 스스로를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침몰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을 행복하게 성장시킬 수 없어요. 아이들이 가진 강점을 찾아내고 그걸 응원하고 지원하고 붇돋워 주는 책임과 관점, 역량을 가지는 것이 부모로서, 청소년지도사로서 가장 근본인 거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라도 아이의 강점을 중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시군요
실수 안 하면서 크는 아이 어디 있나요? 저도 그랬어요. 실수하면서 크는 건데, 실수의 이면에 숨겨진 긍정적 측면을 드러내서, 강점 중심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봐야죠. 이건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이론이기도 합니다. 부모, 어른, 지도자 등이 아이를 그런 방식으로 대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렇게 하려면 아이에 대한 사랑과 응원해야겠다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요.

 

이게 없으면 청소년은 부모나 지도자와 멀어지게 됩니다. 작은 실수가 자꾸 커지면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는 것처럼요. 그걸 극복하게 만드는 건 긍정적 관점과 강점 중심으로 아이를 존중하고 격려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굴해는 겁니다. 일탈이나 실수에서도 긍정적 측면을 찾아내는 게 중요해요. 그 안에서 강점, 장점을 찾아내서 아이에게 제시해주는 게 어른의 역할 아닐까요? 아이들은 자기가 가진 보석을 못 보니까요.

 

좋은 말씀입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책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요
출판문화원에서 아로리 총서로 냈던 『청소년의 뇌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청소년들의 성장에 있어서, 두뇌 성장에 있어서 뇌가 하는 기능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왜 이렇게 아이들이 그렇게나 정신없는 행동들을 하는지에 대해서요.(웃음)

 

학과를 벗어나 보겠습니다. 청소년교육과 초대 학과장만 맡으신 건 아니더라고요. 학생처장을 시작으로 프라임칼리지 학장, 서울지역대학장, 대학원장을 거쳐 부총장까지 10년 정도 주요 보직을 두루 맡으셨습니다
학생처장 때는 ‘공부하는 학생회, 봉사하는 학생회, 화합하는 학생회, 애교하는 학생회’의 앞 글자만 따서 ‘공봉화애’를 학생들에게 강조했어요. 행사에 가서 제가 “공봉!”이라고 외치면 학생들이 “화애!”라고 답했죠. 잘하면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역학습관 활성화를 위해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프라임칼리지에 특히 의미를 부여하셨다고요
저는 프라임칼리지에 도입 초부터 상당한 가치와 가능성 부여했습니다. 방송대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방송대 학부 강의는 수천 명의 학생에게 영상 강의를 찍어 매체로 전달하는 시스템입니다. 산업화 시대에 지식 전달에 굉장히 효율적인 모델이어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기여한 바가 많습니다. 많은 인재를 재교육했고, 새로운 교육도 제공했으니까요.

 

하지만, 디지털 혁명 시대, 정보혁명 시대에 오면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체제가 무너졌습니다. 교육 역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 교육, 일방적 지식 전달 중심 고등교육은 시대 흐름에 민감하고 유연하게 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게 됐습니다.

 

방송대 역시 마땅히 이에 대응할 교육 플랫폼을 찾아야 했죠. 당시 MB 정부 말기에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실용주의적 교육을 강조했고, 사회 분위기 역시 먼저 직업을 갖고 필요하면 언제든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호응했지요. 비록 선취업 후진학 정책이 정권적 차원에서 추진된 측면이 있었고, 이 정책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서 방송대에 제안한 측면이 있었지만, 학교는 이를 적극적으로 학교발전을 위해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처장으로서 저는 지식의 생명주기가 짧아지면서 늘어나는 직장인의 재교육 수요를 담기 위한 또 하나의 교육플랫폼으로 13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프라임칼리지 플랫폼의 도입을 적극 찬성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고등교육의 유연성, 다양성, 실용성을 담아내면서 기존의 전통적 학부체제를 보완하면서 방송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송대는 앞으로 프라임칼리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프라임칼리지는 학부와 달리 적은 수의 인원을 밀착해서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학부 등록금이 10년 넘게 30만 원 중반인데, 프라임칼리지는 정부에 사이버대학 만큼 등록금을 받을 수 있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양질의 고등교육을 소수 학생에게 제공할 수 있는 등록금 시스템을 갖추게 된 거죠. 새로운 교육방식을 굉장히 탄력적으로 활용할 교육 플랫폼 교두보를 확보한 겁니다. 정부가 필요해서 방송대에 제안한 것이지만, 방송대가 적극적으로 도입해 활용한 사례죠.

 

프라임칼리지는 실용적 교육을 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학문체계에 기반한 공부는 주로 기존 학부 체제로, 시대 변화에 빠르게 변하는 직업 역량 교육, 재교육은 프라임 칼리지로요. 그렇게 두 수레바퀴가 균형을 맞춰나간다면, 방송대가 지속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라임칼리지 학장을 하면서 주력한 부분입니다. 앞으로도 총장 이하 보직진들이 프라임칼리지를 적극 활용하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시스템을 갖춘다면 방송대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부총장 시절에는 기말시험 방식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내셨습니다
방송대 부임하고 선배 교수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기말시험 때문에 학생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는 거예요. 학사 운영이 경직됐다는 소리였는데, 동일 학년은 같은 날 전국적으로 일제히 오프라인에서 시험을 봅니다. 학과가 다르면 장소가 다르죠. 그러니까 타 학과 수업을 듣고 싶어도, 기말시험을 못 보니 그럴 수 없어요. 경직된 거죠. 또 한나절 와서 6과목 시험을 치릅니다. 그날 컨디션이 안 좋은 학생은 한 학기 공부한 게 한나절에 날아가요. 수능이랑 똑같이요. 기말시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논의는 많았어요. 시험은 평가하는 건데, 그 평가 방식이 우리 학사 운영 전체에 족쇄를 지우는 격이랄까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처럼요.

 

부총장이 되면서 온라인 시험을 적극 검토했습니다. 집에서도 온라인 시험을 볼 수 있을 정도까지 나가려고 했지만,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고 일부에서는 급진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생각했지만,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 점진적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문제은행 출제시스템은 기존에 연구해 둔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기존 연구는 주로 교수들의 문제관리와 출제에 중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로는 학교의 가장 큰 과제이자 고민인 학사 운영의 유연성, 학생들의 학습 편의성, 중도탈락률의 저감 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일환으로 태블릿 PC 기반 온라인 시험으로 바꾸는 정책을 입안했고 그 실현을 교무가 담당하도록 했지요. 그렇게 시스템을 바꾸면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니 중도탈락률이 낮아질 거고, 학교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학습자 친화적이고 중심적인 시스템과 제도, 학사운영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이디어를 낼 때도, 제도를 만들 때도, 정책을 시행할 때도 모든 건 학습자인 학생을 중심에 둬야 합니다. 학습자가 많아야 대학이 살죠.

 

여러 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느낀 점이 있으실 텐데요. 보직자가 마음에 우선으로 둬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학생처장으로 보직을 시작할 때부터 저의 가장 큰 지향점 중 하나는 ‘재학생의 졸업률을 높이는 것과 사회의 잠재적 학습자의 입학률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 재학생의 졸업률을 높이는 것은 다른 말로는 중도탈락률을 낮추는 거죠. 어렵게, 적지 않은 나이에 방송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꿈과 초심이 방송대에서 성취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수의 책무요, 직원의 책임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학습자 친화적인 시스템을 학교가 갖춰야 해요. 모든 것에 학생을 중심에 놓게 되면, 학습자 만족도도 높아지고 졸업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학생이 있기에 교수와 직원이 존재합니다. 또 사회의 잠재적 학습자들을 우리 학교의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잠재적 학습자의 요구와 시대 흐름에 민감해야 하고 학교는 이를 교육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반영할 수 있도록 혁신적 자세와 실천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교육조직의 핵심인 교수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보직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긴 했겠지만 늘 이 마음으로 보직을 수행했습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방송대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복안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까 말했던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재학생의 학교에서의 학업 만족도, 학업의 유익성, 편의성을 제고하는 데 주력해야 해요. 그 초점이 행정이든, 교육이든, 학사 운영이든 초점은 늘 재학생에게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재학생이야말로 방송대의 홍보대사 아닙니까? 실제 통계도 그렇죠. 재학생의 입소문이 가장 강력한 입학 홍보 경로라고요. 그리고 시대 변화와 요구에 민감함을 가지고 항상 탐구하고 이를 학교 정책과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혁신의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요.

 

방송대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시대 흐름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통상 국립대는 변화가 느리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렇지만 요즘은 국립대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비교하면 방송대는 여전히 변화의 바람이 적게 부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여전히 무풍지대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유연성, 다양성, 실용성을 담아 갈 수 있는 플랫폼으로 100여만 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프라임칼리지를 지금보다 더 주목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기존 학부체제가 한 날개라면, 프라임칼리지가 또 다른 날개입니다. 두 날개로 미래를 향해 비상해 가면 사회적으로 기여하면서 학교도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대변화에 따른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혁신은 아시다시피 어렵습니다. 고통스럽고요. 하지만 어렵다고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학교는 어려워지겠지요. 교수들이 혁신의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송대와 함께 한 20여 년, 아쉬웠던 점들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학과 교수님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요. 말씀하셨듯이 제가 학교 일을 많이 했습니다. 새 학과를 만들기도 했고요. 돌이켜 보니, 저는 사람을 굉장히 중요시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때로는 사람에 대한 그것보다 좀 컸던 거 같기도 합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때로 열정이 너무 강해서 그리고 부족해서 직원이나 교수 등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나, 더 나아가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반성을 합니다. 저랑 일해봤던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웃음) 이 자리를 빌려 혹 그런 분이 계셨다면 널리 용서를 구합니다. 또 학과나 학교 일을 하느라, 그리고 역량의 부족으로 제 전공인 시민교육 분야를 심화하지 못한 게, 시민교육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 못한 게 좀 아쉽습니다.

김영인 교수가 서울지역대학장 시절 체육대회에서 바지 위에 흰 팬티를 입고 훌라우프를 돌리고 있다.

기억에 남는 학생도 너무 많을 것 같고,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있지요. 일일이 다 열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 여기에서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섭섭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지면 관계상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지 소홀히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교육과의 첫 학생회장이었던 김현옥 학생이 먼저 떠오르네요. 지금 세종특별자치시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입생이었는데,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저랑 서울에만 스무 개 남짓한 스터디 모임에 밤에 다 방문해 격려했어요. 10대 자녀가 있어서 그렇게 다니는 게 항상 미안하고 고마웠었는데, 그렇게나 열정을 보였던 게 기억이 납니다. 

 

또 학생들에게 늘 “교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살아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살아 있는 공부의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사회 공헌 활동이다. 그걸 통해서 자신이 더 인간적으로 성장하고, 풍성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어요. 많은 학생이 이 말을 들었을 터인데 이를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실천한 학생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 강숙례 학생이 그 말을 귀담아 듣고 2019년에 ‘싱크마리봉사단’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후배들하고 사회공헌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적지 않은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에피소드라고 하면, 학생처장 하면서 서울지역대학장 겸임을 했어요. 서울총학생회가 주최한 체육대회에서 ‘팬티 입고 릴레이 달리기’에서 바지 위에 하얀 팬티를 입고 열심히 훌라후프를 돌렸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예전 <방송대신문>에 큼지막하게 실리기도 했죠.(우측 작은 사진 참고)

 

퇴임 후에는 어떤 일을 할 생각이세요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퇴임이라고 해서 삶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달라진다면 조직에 매인 것에서 벗어난다는 정도겠지요. 기회가 된다면 사회적 봉사를 하고 싶어요.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봉사단체가 있는데요.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데, 얼마 전 만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간 하고 싶었던 전공 외 공부도 할 거고요, 장기 여행도 다니고 싶네요. 그동안 매여서 못했던 일들과 제 삶의 의미를 정리하는 공부를 하면서 남아 있는 시간을 잘 보내고 싶습니다.

 

청소년교육과가 3월 1일자로 학과명을 ‘청소년교육복지상담학과’로 바꿉니다. 후배 교수, 학생들에게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청소년교육과가 시대 변화에 따라 확대,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후배 교수들이 새롭게 바뀐 명칭의 학과 공동체 안에서 더 화합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 당부한다면, 학과명에 걸맞은 교육내용들을 잘 담을 수 있도록 질적인 변화의 노력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교육조직의 주체는 교수입니다. 학습자 친화적이고 중심적인 환경을 만들어가는 그 주체가 교수라는 말입니다. 교수들이 학과명에 걸맞은 내용들을 시대에 맞게 풍부하게 채워서, 많은 학생이 청소년교육복지상담학과에서 꿈을 실현하도록 지도해주세요.

 

학생들에게는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우리 학과에 들어올 때의 꿈, 희망, 초심을 잊지 말고 실력과 청소년에 대한 사랑을 키워서 훌륭한 청소년 교육자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그 속에서 행복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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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k64***
    법대라는 말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각함
    2025-02-17 10:58:45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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