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에 방송대 일본학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당시에 나는 거래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들 사이에서 ‘서구권의 자포니즘을 연구하는 번역가’로 알려져 있었다. 자포니즘은 고흐, 마네,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했던 19세기에 서구권에서 불었던 ‘일본 문화 붐’이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넷플릭스의 미국 애니메이션「푸른 눈의 사무라이」와 디즈니 플러스의 미일 공동제작 드라마「쇼군」은 ‘21세기에 부활한 자포니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서양산 일본풍 콘텐츠와 알파벳을 편식하던 나는 방송대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모두 마친 후에 비로소 조금씩 키가 자라게 됐다. 일본의 언어와 문화, 정치, 경제, 사회, 문학이라는 6대 영양소로 이뤄진 영양제를 섭취하며 편식 습관을 고쳐나간 덕분이다.
여기에 3대 성장촉진제까지 복용했다. 이경수 교수님과 강상규 교수님이 2021년부터 기획출판으로 펴내고 계신 공저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 강상규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무사히 써서 졸업하게 된 석사학위 논문「시부사와 에이이치의 미일인형교류에 관한 연구」, 2024년 8월에 번역 출간한 프랑스 소설『할복』이다.『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에 참여해 ‘번역도 하고 글도 쓰는 자포니즘 연구가’로 성장했다. 논문을 쓰면서 ‘세계사와 일본의 인형외교사까지 아는 일본 인형 덕후’로 성장했다. 일본 문화와 한국전쟁을 주제로 삼은 프랑스 소설『할복』을 번역하면서 ‘동서양이 만들어가는 복잡한 세계사 안에서 한반도와 일본을 연결해 생각하는 역사 매니아’로 성장했다.
성장은 새로운 만남이다.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만남이란 ‘과거와의 이별’이 아니다. ‘과거’를 다시 불러내 건강한 시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연장’이다. 일본풍이 강하면 ‘왜색’이라며 배척되던 1990년대 초의 한국을 떠올렸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아버지가 수집하던 서구권의 영화와 음악 자료 속에서 우연히 19세기 배경의 서양산 일본풍 콘텐츠를 발견해 빠져들었다. 근대 일본의 성장에 서양 서적 번역이 지렛대였다면, 서양산 일본풍 콘텐츠의 안락함에 머물 뻔했던 나에게 방송대 일본학과는 성장의 도르래였다.
방송대 일본학과를 졸업한 후에 중학생 때의 나를 일본풍이라는 세계로 이끌어준 오페라「나비부인」과 미국 영화「바바리언과 게이샤」를 다시 감상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다양한 코드가 눈에 들어왔다.
출판번역가로 자리잡기 시작한 2006년에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원제: Lost In Translation)」에 나오는 신주쿠와 시부야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첫 일본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2021년부터 출간된『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시리즈 덕분에 NHK 국제라디오 한국어 방송「하나카페」와 영어 방송 「Friends Around The World」의 스튜디오와 인연을 맺으면서 시부야를 다시 찾았는데, 시부야를 보는 눈도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이경수 교수님의 강의에서 배운 일본의 문화사, 그리고 강상규 교수님의 강의와 저서『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에서 알게 된 동서양의 정치학이라는 새로운 시력 영양제를 복용한 덕분이다.
필자는 방송대에서 얻은 일본학과 졸업장과 석사학위 논문 덕분에 ‘알파벳뿐만 아니라 한자에도 눈을 뜨며 동서양을 오가는 번역가’로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첫 일본도서를 번역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방송대 일본학과에서 7년간 섭취한 영양제와 성장촉진제는 그 효과가 꽤 오래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