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을사년 새해 지킴이 띠동물은 뱀이다. 뱀[巳]은 12지의 여섯 번째로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청색)·정사(丁巳-적색)·기사(己巳-황색)·신사(辛巳-백색)·계사(癸巳-흑색) 등 5번 순행한다. 뱀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시,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 4월에 해당한다.
‘뱀’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기다란 몸뚱이, 소리 없이 발밑을 스슥하고 스쳐 지나가는 듯한 촉감, 미끈하고 축축할 것 같은 피부, 무서운 독을 품은 채 허공을 날름거리는 기다란 혀, 사람을 노려보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 게다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 교활함의 대명사가 돼 버린 뱀은 분명 우리 인간에게 그리 반가운 동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지나친 혐오감 뒤에는 또 다른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겨울잠을 자는 뱀은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재생(再生)·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로 인식했다.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 가복(家福)의 신을 상징한다.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뱀은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겨울잠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것은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로 인식됐다. 뱀의 신성(神聖)은 이처럼 불사(不死)의 존재라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겨울잠을 자다가 다시 살아나는 곰이 웅녀(熊女)로 변해 단군을 낳았듯이 겨울에 죽었다가 봄에 다시 살아나는 뱀의 재생 능력은 고구려 벽화고분이나, 신라 토우, 『삼국유사』의「박혁거세」,「경문왕」,「가로국 김수로왕」 등에서 무덤[冥府]의 수호신(守護神)이 되고, 죽은 이의 환생(還生)과 영생(永生)을 기원하는 매개물로 형상화됐다.
뱀은 어떻게 사랑할까? 서로의 몸을 휘감고 머리를 마주한다. 그 사랑하는 모습은 고구려 삼실총의「교사도(交蛇圖)」, 중국의 「복희여와도(伏羲女渦圖)」와 너무 닮아있다. 삼실총의 교사도는 두 개의 S자가 서로 마주 보고 얽혀있는 모양을 한 두 마리의 뱀이 그려져 있다. 이 두 마리의 뱀은 서로 꼬리를 휘감되 배 부분이 서로 떨어졌고, 다시 가슴 부분에 얽혀서는 머리가 서로 맞보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모습은 천지개벽, 생명 탄생, 문화창조 등의 위업을 수행한 복희, 여와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다.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업신(業神)으로서 뱀은 ‘업’, ‘지킴이’, 또는 ‘집구렁이’라 하여 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면서 집을 지키는 신격(神格)이다. 흔히 집안 살림은 업신의 덕이나 복으로 늘어가는 것으로 믿고 소중히 여겨진다. 보통 집안에서 업신이 사람의 눈에 띄거나 밖으로 나가면 가정의 운수와 가옥의 수명이 다 된 것으로 슬퍼한다. 집안의 재물을 지키는 업신인 뱀은 집안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를 주로 잡아먹는다. 업신이 집 안에 있으니 쥐가 없어지고, 재물이 지켜진다. 그런데 업신이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업신인 뱀의 입장에선 먹거리인 쥐가 없다는 것이고, 집안에 쥐가 없다는 것은 쥐의 먹거리인 곡식이나 식량이 없다는 것이다. 그 집안이 가난해졌다는 의미다. 사람과 쥐는 먹이사슬의 경쟁자이고, 사람과 업신은 먹이사슬의 경쟁자가 아니다. 업신은 쥐를 잡아주어 사람들과 먹이사슬의 경쟁자인 쥐를 퇴치하는 이로운 존재이다. 그래서 집안에 서린 업은 재물을 지키는 신으로 대접을 받는다.

혀 날름거림 때문에 뱀은 유혹의 사탄, 이간질, 수다의 대명사다. 뱀도 물론 시각, 청각, 후각이 있지만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 뱀은 콧구멍 외에도 입속에 냄새 맡는 중심기관인 야콥슨기관이 있다. 뱀은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혀를 입 밖으로 뻗쳐 날름거려 혀끝에 묻어온 냄새를 바로 알아낸다. 사람들은 혀를 통해 말을 한다. ‘세치 혀’로 수다를 떨고, 유혹하고, 이간질하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세치 혀를 날름거려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항상 입조심, 말조심, 혀조심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뱀을 유혹의 사탄, 이간질, 수다의 대명사로 문화적 오해를 했다. 뱀의 입장에선 쉬지 않고 혀를 날름거리는 이유는 단지 냄새를 맡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뱀은 지혜롭고 상황판단을 잘하는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뱀은 지혜의 신, 아테네의 상징물이며, 후일 논리학의 상징이 됐다. 성경 「마태오복음」에 “뱀처럼 슬기롭게”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뱀은 지혜와 예언력의 상징이 됐다.
또한 뱀은 치료의 신이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醫術)의 신’이다. 이 의신(醫神)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문장이나 군의관의 배지도 뱀이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紋章)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인 ‘뱀’이다.
뱀은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그저 앞만 보고 전진할 뿐이다. 뱀처럼 허물을 벗고 자기 혁신을 통해 발전하는 을사년 새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