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창봉 법학과 3학년
기왕에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한다면, ‘남보다 발전적이고 아깝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을 맴돌던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결단이 필요했다. ‘평생 책과 함께 살자!’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방송대의 문을 노크했다. 참으로 운이 좋게도 나는 5년제 대학을 졸업(국문학과 6회)한 1%대의 행운아였다.
초창기는 교육 환경이 열악해 바닥에 멍석 같은 걸 깔고 앉아 강의를 들었다.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강의 내내 선 채로 청강하기 일쑤였다. 비 오는 어느 날 강의를 들으려고 갔더니 강의실이 축축하고 비좁아 할 말을 잊은 적도 있었다.
나는 오래전 시인으로 등단했음에도 문학이론엔 문외한이었다. 비어 있는 문학이론 두뇌를 채우기 위해서는 국문학과의 공부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절실하게 채워 넣었다. 국문학과를 다니면서 한국문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국문학사의 자격을 갖고 문학을 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딘가 항상 허출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한국문학 못지않게 영미문학에도 부족함을 느낄 즈음, 그 어렵다는 영문학과에 도전했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한시(漢詩)에만 운율(rhyme)이 있는 게 아니라, 영미시에도 운율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은 더욱 깊어졌지만 영시를 쓰면서 ‘라임’을 맞추려니 어휘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나의 부족한 빈 곳은 늘 새롭게 나타나 입을 벌어지게 했다. 빈 곳을 채우느라, 또 그 꿈을 알차게 가꾸고 이론 무장을 완성하기 위해 영문학과(2018년 졸)도 보람차게 마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방송대인에게만 허락된 공부 과정인가! 아직도 배가 고파 딱딱한 법학과에 편입해 고전하고 있지만 또 빈 머리를 새로운 지식으로 채워낼 것이다.
초창기는 교육 환경이 열악해 바닥에 멍석 같은 걸 깔고 앉아 강의를 들었다.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강의 내내 선 채로 청강하기 일쑤였다. 비 오는 어느 날 강의를 들으려고 갔더니 강의실이 축축하고 비좁아 할 말을 잊은 적도 있었다.
나는 오래전 시인으로 등단했음에도 문학이론엔 문외한이었다. 비어 있는 문학이론 두뇌를 채우기 위해서는 국문학과의 공부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절실하게 채워 넣었다. 국문학과를 다니면서 한국문학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국문학사의 자격을 갖고 문학을 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딘가 항상 허출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한국문학 못지않게 영미문학에도 부족함을 느낄 즈음, 그 어렵다는 영문학과에 도전했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한시(漢詩)에만 운율(rhyme)이 있는 게 아니라, 영미시에도 운율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은 더욱 깊어졌지만 영시를 쓰면서 ‘라임’을 맞추려니 어휘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나의 부족한 빈 곳은 늘 새롭게 나타나 입을 벌어지게 했다. 빈 곳을 채우느라, 또 그 꿈을 알차게 가꾸고 이론 무장을 완성하기 위해 영문학과(2018년 졸)도 보람차게 마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방송대인에게만 허락된 공부 과정인가! 아직도 배가 고파 딱딱한 법학과에 편입해 고전하고 있지만 또 빈 머리를 새로운 지식으로 채워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