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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중국사

며칠 전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나는 1941년생이니까 40년이나 세대 차이가 난다. 지영이는 무엇 때문에 산후 우울증이 생겼을까? 나는 아이 셋을 낳아 젖 먹여 키웠다. 생활은 쪼들렸어도 아이들은 이쁘기만 했고, 마음은 늘 꿈으로 가득했다. 물론 시대적 차이와 세대 차이가 있으니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자기를 찾고 바로 세우기 위한 자기 일의 문제였다. 결국 그녀도 국문과 출신의 재능을 살려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싣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똑바로 세우고 살아갈 의욕을 되찾는 모습으로 클로즈업 된다.
가만히 지나간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나는 늘 공부해야 한다는 열망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았던 것 같다. 석사과정만 마치고 25세에 결혼해 연달아 애를 낳았으나 매일 저녁 애들을 재워놓고 발치에다 작은 상을 놓고 앉아 논문 쓴다고 헤매었다. 결국 2년여의 세월이 지나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5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나는 학위도 받으면서 내가 전공한 중국사라는 학문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은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논문 업적 쌓기도 중요했다. 가르치고, 논문 쓰고, 번역하고, 강연 다니고 늘 바쁘기만 했다. 어쩌다 쉬면서 TV를 보면서도 ‘내가 이런 여유가 있나?’를 몇 번이나 자문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6년 65세에 정년퇴임을 했다. 몇 년 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에게서 모든 것이 떠나간 것이다. 애들은 이미 다 결혼해 떠났고, 남편도, 직장도 다 떠났다. 그러나 나는 공부까지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다시 나를 붙들고,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계획표를 짜고 새삼 배우러 다니고, 번역하고 책을 쓰고 하기를 계속했다.
기회란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또한 가슴에 별을 간직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늙는다는 것은 겉모습이나 피부가 늙을 뿐 공부하는 능력이나 이해력까지도 늙는 것은 아니었다. 늙어도 공부는 할 수 있었고 강연도 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 처녀 때의 로망이었던 문학에도 나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부산대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과 수필을 몇 학기씩 수강하며 공부한 결과 서툴지만 시도 수필도 등단하는 기쁨을 누렸다.
곱게 잘 늙어 장수하는 데는 네 가지 요건을 갖춘 분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장수 연구학자의 말을 기억한다. 첫째, 모두가 자신의 일은 자신이 다 한다. 둘째, 모두가 남을 도우는 일에 열심이었다. 셋째, 모두가 배우는 일에 손을 놓지 않았다. 넷째, 모두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자, 주자, 배우자, 맺자’ 이 네 가지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나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며, 다른 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며, 논어도 주역도 시도 수필도 배우며,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활기차고 즐겁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려고 늘 애쓰며 산다. 삶이란 나이가 들어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곱게 물들어 가는 것임을 느낀다. 인생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니고 이상의 결핍으로 늙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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