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 동문 재입학 캠페인 ‘다시 뛰는 방송대인’

대부분의 방송대인이 그러하듯 필자 또한 자랑스러운 우리 방송대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간절함’이었다.


1948년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필자는 정곡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한 가설 교실에서 중학 과정을 마쳤다. 당시 문교부 허가가 없는 곳이다 보니 졸업장 대신 수료증을 받았다. 그 후 취업을 알아보다가 운 좋게 지인의 도움으로 삼성 계열사인 제일모직에 입사하게 됐다.


제일모직에서 일하면서 다시 한번 배움의 가치를 크게 깨달았다. 막상 현장에 배치받아 근무를 시작하니 모든 기계가 외국 기계였고 설명서도 영어로 된 것뿐이었다. 가설 교실에서의 짧은 배움으로는 읽기 힘들어 밤새워 가며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 후 별정직인 기숙사 사감으로 12년간 근무하면서 중졸부터 대졸까지 400명 이상의 사생을 만나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러움과 갈등이 생기면서 만학도로라도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 66세의 나이에 방송통신중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거쳐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를 당당하게 졸업했다. 물론 헤맸던 때도 있었다. 컴퓨터 사용이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고 양쪽 눈 모두 백내장 수술을 받아 시력도 좋지 않아 2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했다.


그렇지만 법학과 동기였던 이정아 학우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컴퓨터 사용법이나 한글 워드 사용법, 과제 작성 노하우까지 알려주고 응원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은 동기들 덕분에 졸업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재학시절 학생회, MT, 변론대회, 임원진 스터디 등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을 하며 2024년 2월, 76세의 나이에 법학학사 학위를 받았다. 무엇보다 방송대에서 열과 성을 다해 공부했던 시간을 잊고 싶지 않아 4년간의 과제물을 모음집으로 엮어 책을 만들어 지나온 발자취에 의미를 더했다.


이 과제물 모음집을 2024년 1월 대구·경북총학생회에서 실시한 ‘오르樂 내리樂’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이관용 학장님에게서 최우수상을 받아 더욱 뜻깊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결과물을 손에 쥔 필자 자신이 참으로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법학과를 졸업하면서 바로 대구·경북총동문회 기획부국장으로 추대받아 활동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한 활동으로 젊은 동문들과 함께 소통하고 많이 배우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열심히 활동한 결과 2024년 12월 정기총회에서 우선하 대구·경북총동문회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단순히 배움이 고프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한 11년의 대장정이었다. 졸업하고 나면 홀가분할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2024년 2월 졸업 후에 소속감이 없어지고 상실감에 공허함마저 들어서 2025년 3월부터 문화교양학과에서 다시 공부하기로 했다. 다시 새내기가 된다고 생각하니 지금부터 기대로 설렌다.


끝으로 사람들은 종종 ‘죽어서 들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이뤄낸 삶과 개개인의 꿈은 영원히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뤄준 방송대 교수님들 그리고 울고 웃고 함께한 학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구·경북총동문회 기획부국장으로 활동했다. 올 3월부터는 편입한 문화교양학과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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