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동문(행정)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 인생은 60세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한 사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90세까지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요즘 사람들의 생애 주기를 보면 대략 트리플(triple) 30이다. 태어나서 교육받고 자라는 퍼스트 에이지(first age) 30년, 현역으로 활동하는 세컨드 에이지(second age) 30년, 은퇴 후의 서드 에이지(third age) 30년으로 인생이 나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서드 에이지 30년은 예전에 없던 개념이다. 이전 세대들은 은퇴기라는 것 없이 대체로 60년의 인생을 살았는데, 근래에 와서 수명이 크게 연장되고 정년과 연금이라는 사회제도가 생겨나면서 30년이나 되는 은퇴기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새롭게 부여된 은퇴기 30년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퇴직하면 어때, 잘살면 되지”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은 절대로 만만치 않다.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우리는 진짜로 원하는 삶을 위해 미리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성공적 인생 2막의 비결은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데에 달렸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은퇴 준비를 위한 자가 진단이다. 이 진단은 은퇴 준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균형 있는 은퇴 준비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국민연금공단 등 공적 기관의 진단 서비스를 이용해 볼 수 있고, 민간 보험회사나 자산 운용기관의 진단 서비스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은퇴 준비 분야는 과거에는 주로 재무적 영역만을 다루었으나 비재무적 영역도 중요하다. 국민연금의 경우 체계적인 노후 준비와 건강한 노후 생활을 위해 재무, 건강, 여가, 대인 관계 등 4대 영역에 대해 진단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주거와 일도 은퇴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이므로 건강관리, 대인 관계, 주거, 여가 활동, 일, 재무관리 등 6대 영역에 대해 짚어보는 게 바람직하다.
건강관리
은퇴기는 노화를 수반하는 인생 단계이므로 건강한 100세 삶을 위하여 현재의 건강관리 상태를 진단하고 건강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건강한 식생활, 규칙적인 운동, 흡연이나 술 마시는 횟수, 수면 상태, 적절한 휴식에 관해 점검해 보자. 질병 관리를 위해 정기적 건강검진, 중증질병 및 치료, 만성질환 및 치료에 대하여 잘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정신 건강에 대하여 우울감이나 좌절감,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느낌이 있는지 점검해 보고, 스트레스 관리도 잘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대인 관계
은퇴하면 대인 관계가 축소되고 가족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 변화가 크므로 심리적, 사회적 적응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외출, 여행, 대화 등 기분 좋은 시간 갖기를 잘하고 있는지, 갈등의 원만한 해결 방법이 있는지 점검해 보자. 자녀와의 관계에서 대화 및 다정한 시간 갖기를 잘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사회적 관계에서 친지나 지인들과의 소통 및 정서적 교류 상태도 점검해 보자.
주거 계획
은퇴 후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쾌적하고 안락한 주거 공간이 필요하고, 자녀의 출가 등으로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있으므로 새로운 주거 대책이 필요하다. 은퇴 후 어디서 누구와 생활할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자. 은퇴 후 주택의 안정성, 쾌적성, 접근성, 유지관리 용이성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주택규모와 주택연금 활용 등에 대해서도 계획이 필요하다.
여가 활동
은퇴 후에는 여유시간이 늘어나 자칫 무료한 일상이 될 수 있으므로 적절히 여가를 활용할 거리를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노는 거라고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여가에는 노는 것은 물론, 봉사활동이나 종교활동 등도 포함된다. 은퇴 후에도 연결될 수 있는 여가 활동을 미리 준비하고, 여가 비용과 동반자 만들기도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일
인간은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다. 은퇴 이후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과 존중의 원천이 되는 일이 없어지면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은퇴 후의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것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은퇴 후 일에 대한 비전이나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가. 그 일을 위하여 역량 개발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으며, 경험 쌓기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재무관리
비어 있을 때 가장 무거운 건 ‘빈 지갑’이다. 노년을 위한 재무관리는 은퇴 준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항목이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소득과 지출을 계획성 있게 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자산 부채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빚이 있다면 소득이 있는 시기에 다 갚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은퇴 후에는 많은 재산을 준비하는 것보다 매월 일정액의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은퇴를 희망으로 만드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행복한 노후를 위한 조건인 6대 영역에 대해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이 준비해야 한다. 우리에게 안 바쁘고, 안 힘들고, 걱정 없는 때는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3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이라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지금’이 아닐까. 마흔 버릇 아흔 가는 법이니 은퇴 준비는 결코 미뤄선 안 된다.
최재식 전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동문(행정)